8월 16일.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시길
아이티에서의 사역이 힘든 것이 아니라 오가는 길이 힘듭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다시 짐을 싸고 5시 반에 집에서 출발해서 6시 반에 공항에 도착해서 짐 부치고 커피 한 잔 뽑아서 8시 30분 보딩을 기다립니다.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해서 정시에 도착, 짐 찾는데 40분이 걸렸습니다. 공항에 스티브와 잰나가 차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동안 탁 선교사님께서 직접 나오셨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스티브가 나왔습니다. 여러 가지가 점점 좋아진다고 느껴졌습니다. 공항에서 출발해서 5분 거리의 소나피까지 교통체증으로 1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오후 1시 35분 도착. 제가 너무 좋아하는 생선 매운탕 수제비를 준비해주셔서 점심을 든든하게 먹었습니다. 오늘은 저희 딸 위슬린이 있는 House of Hope만 갑니다. 쌀과 식품들을 싣고 아이를 만날 생각에 들떠서 출발했습니다. 공항 앞을 통과해야 하는데 꼬박 1시간 동안 서 있었습니다. 아이티에서 제일 미인인 위슬린은 여전히 수줍은 듯 웃으며 반겨주었습니다. 함께 쌀도 나르고 새학기 선물을 주었습니다. 백팩, 필기구 세트, 그리고 갖고 싶어 하던 아이팟에 얼굴이 활짝 피었습니다. 선물 받는 아이보다 주는 제가 더 신이 나서 싱글벙글했습니다.
아이는 키가 크고 제법 소녀티가 나는데 여전히 아픈 마음을 가리기가 참 어렵습니다. 활짝 웃는데도 슬픔이 묻어나고 어두운 그림자가 언뜻언뜻 바람처럼 스칩니다. 식량을 보내고, 아이를 만나고 돌아와서 새로 얻은 아파트, <더 코너 아이티 센터>에서 청소하고 점검을 했습니다. 내일은 에어컨도 달아야 하고 전기도 기사를 불러서 다시 설치를 돌아봐야 합니다. 저녁은 탁 선교사님과 로사 선교사님 댁에서 스티브, 잰나와 함께 거하게 월남쌈으로 잔치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지만, 대충 흉내라도 내는 아이티의 삶 속에 기쁨과 감사만 있지는 않습니다. 캄캄한 밤에 돌아왔는데 아직 전기는 들어오지 않고 와이파이는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메일 보내드리려고 준비합니다. 오늘 밤, 인버터로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 아래서 폭염을 견디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이티를 기억하시죠?” 아이티는 별 변화가 없는데 사람들은 잊고 있습니다. 오늘 밤에는 더 기도가 간절합니다. “하나님, 잊지 않고 계신 줄 압니다.......”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8월 17일. 그래도 감사합니다
어젯밤 늦게 전기가 들어와서 컨버터로 만든 220볼트를 연결한 방에 에어컨이 들어왔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일상인 것이 이렇게 특별한 감사가 됩니다. 이른 아침 시티 솔레 베다니 마을에 갔습니다. 지난달에 이어 이 달에도 이철웅 형제가 집을 지었습니다. 앞을 못 보는 스물여섯 된 처녀가 길에서 짐꾼으로 정말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삽니다.
낡고 낡아 보여주기도 어려운 집을 허물고 그 옆에 반듯한 시멘트 집을 짓고 철문을 달았습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얼마나 감사하는지요. 너무 좋아하면서 사진을 찍자니까 옷을 갈아입고 포즈를 취했습니다. 좀 교만한 말이지만, 하나님께서도 고마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탁 목사님께서 베다니 마을에 공동화장실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정말 원초적인 배설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서 온 동네가 더러워지고 오염되고 질병이 떠나지 않습니다. 화장실 공사는 정말 난공사입니다. 진흙창 같은 땅을 깊이 파고, 돌흙을 아주 많이 덮어야 합니다. 탁 선교사님이 자재 전체를 공급하고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동네 사람들이 자원해서 일을 합니다. 나라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시티솔레 주민을 위해서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시티 솔레에서 돌아와 쌀을 싣고 고아원으로 출발합니다. 오늘은 장애아 고아원과 Care for Children, Love고아원 이렇게 세 곳만 방문하려고 합니다. 나머지 고아원은 쌀을 와서 가져갈 것입니다. 풍성하게 사놓은 쌀을 보면서 얼마나 흐뭇한지 모릅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고아원으로 떠났습니다.
장애아 고아원은 10월에 다른 집을 구해 이사해야 합니다. 렌트비도 많이 올랐습니다. 재작년에 8천불이 채 안 되는 돈으로 2년을 계약했는데 집 주인이 재계약을 안 해주어서 다른 곳을 알아보는데 웬만한 집들이 다 2년 계약에 만불을 훨씬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여전히 밝고 반가운 모습으로 저희를 반겨주었습니다. 아이들 상태를 돌아보고 쌀과 식품을 내려놓고 과자도 먹여주고 아이들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도 웃고 즐거운 표정을 지어 보여주고 손이라도 만져보려고 손을 내밀어 허공을 젓는 아이들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힐링되고, 우리가 은혜를 받습니다.
탁 선교사님께서 썸터한미장로교회에서 보내주신 의약품도 전달하시고, 차 사모가 약품 상자를 청소하고 필요한 약 몇 가지를 채웠는데 설사약이 다 떨어졌다고 해서 채워주기로 하고 떠났습니다. 썸터한미장로교회에서 의약품을 보내주어서 각 고아원에 탁 선교사님께서 전달을 하셨습니다. 장애아들을 위해 더 넓고 새로운 장막을 허락하시길 함께 기도하자고 하고 떠났습니다. 일라브아에 있는 Care for Children의 매니저 파비앙은 얼굴이 핼쓱하고 반쪽이 되어 있습니다. 서른 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못해서 큰 아이들이 작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내고 있습니다. 쌀과 식량을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연필과 연필깎기와 칫솔 치약을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 지난달에 공급한 것입니다. 이미 다 떨어졌을 것입니다.
내일 스티브가 공책을 사오면 이곳에 보내줄 것입니다. 6학년을 다녔다는 여자 아이 두 명이 저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학교에 다시 갈 수 있는 날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있습니다. 파비앙은 고아원 안에 학교를 세우기를 원하는데 아직 펀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시설도 깨끗하고, 조금만 손보면 학교를 운영할 장소는 됩니다. 선생님 월급과 교육용품, 학용품, 교과서 등의 공급이 되어야 하고 지속적인 후원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계속 기도하자고 하고, 큰 아이들을 격려하고 돌아서는데 마음이 짠하고 미안했습니다.
일라브아 36가 러브 고아원은 들어가는 진입로가 하수구 공사를 한다고 파놓아서 차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도로 공사한다고 일 년을 땅 파놓고 이러고 있습니다. 루베스가 고아원에 들어가서 어른들을 불러왔습니다. 길에서 식량을 전달하고 약품도 전했습니다. 연필, 크래프트 재료,연필깎기와 학용품을 전하면서 노트도 곧 공급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저희가 떠난 후에 따로 보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애 어른이 모두 쌀, 콩, 옥수수, 설탕 포대를 머리에 이고 씩씩하고 신나는 걸음으로 고아원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라도 감사합니다. 길에서라도 감사하고 무거워도 감사합니다. 공급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공급할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곳곳에 길이 막혀 가나안 쪽으로 빙 돌아 돌아오려는데 탁 선교사님께서 씨벧 교회에 들려보자고 하셨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 씨벧 교회에 들렸습니다. 지난여름 다섯 고아원이 모여 축제를 한 곳입니다. 밥도 먹고 여름 성경학교도 하고 축구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2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스무 명쯤의 고아들도 돌보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법 자리를 잡은 학교여서 솔직히 좀 부러웠습니다. 뉴욕의 작은 교회들이 연합하여 교회도 짓고 기도하며 많이 도운 곳입니다. 아이티 어느 곳이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돕는 고아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서 자립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할 일이 참 많은 나라인데 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은 전기가 제법 일찍 들어왔다가 밤 열시쯤 나갔습니다. 게다가 인버터도 고장이 나서 밤새도록 찜통더위를 견디며 아이티를 맛보고 있습니다. 장애아 고아원 이사문제와 Care for Children의 교육문제를 생각하면 무거운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오락가락합니다. 그래도 감사하기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만큼이라도 허락하시고 이렇게라도 먹이고 가르칠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이, 부족한 저희를 도구로 써주시는 것이 오늘 새삼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아이티에서 조항석 목사 / 핼핑핸즈 미션네트워크 chohenry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