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예수장로회 총회장, 뉴욕센트럴교회 담임
50년 목회를 해오면서 가장 적절하고 건덕을 세울 수 있는 인간관계의 원리는 불가원 불가근(不可遠 不可近)이라고 말하고 싶다.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도 안 된다는 뜻이다. 목회는 인간관계로 시작하는 것인데… 이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너무 가까우면 객관성을 잃고 존경도가 무너지고, 너무 멀어지면 친밀감이 사라져서 사랑이 없다고 떠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느 목사가 교회를 개척했다. 일 년 이상을 교인 한 사람도 없이 보내야 했다. 목사는 유일한 교인(?)인 아내를 홀로 앉혀놓고 새벽부터 500번 이상의 설교를 해 왔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렇게 일 년이 지난 어느 날에 새 가족 1호가 등록을 했다. 목사는 천군천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있는 친절, 없는 친절로 분신처럼 한 가족보다 더욱 친밀하게 대우했다. 1호 교인 가족들도 목사님 가족들을 친 형제 가족처럼 받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교인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목사는 희망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이제는 제법 교회다운 여건이 갖춰가기 시작했다. 모두 열심을 내어 매시간 참여했는데 이상한 일이 생겨났다. 1호 가정이 틈틈이 빠지기 시작했고, 찬 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오기 시작했다. 2호, 3호 가정들이 1호의 자리를 대신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50여 명의 교인이 거의 100명으로 늘어나면서 이상한 기류들이 감돌기 시작했다. 친교 시간에는 완전히 두 그룹으로 갈려져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그룹은 교회 봉사에 경쟁하듯이… 치열한 열심으로 번져 나갔다. 담임목사는 이편도 저편도 들 수가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제직회만 열리면 두 그룹들이 치고 받고 말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담임목사는 그래도 100명 선을 돌파하길 득심하면서 최선의 목회를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반쪽이 집단 이동을 하고 다시 50명 선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이 본능이 채워지지 않으면 냉정하게 떠나고 만다. 이민교회가 초창기에 수없이 되돌이를 해왔던 가슴 아픈 현장들이었다. 이민교회 교인들은 사회적 욕구 불충족에 대한 깊은 상처들을 안고 있다. 교회에서… 목사로부터라도 그 욕구를 채우고 인정받고 싶은데 빗나갈 때엔 칼보다 예리하게 끊어버리고 떠나는 것을 수없이 경험해 봤다. 이런 목회적 상황에서 목사가 지혜롭게 관계를 대처하지 못하면 결국 한 쪽은 섭섭병에서 자유를 얻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참으로 균형을 잡고 고루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불가원 불가근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지지 않는 인관 관계의 적절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너무 가까워서 객관성을 잃지 않아야 하고, 너무 친밀해서 존경도를 잃지 않아야 한다. 존경과 친밀- 이 두 가지가 목회자의 영적 권위인데… 말처럼 지켜내기가 여간 쉽지 않다. 남편 목사는 그런대로 치우치지 않는다고 해도 사모쪽에서 불가원 불가근을 지키지 못해서 편애와 인간차별 비평이라는 뒷말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불가원 불가근을 유지하려는 목사 부부는 늘 외롭고 힘든 자리이다. ‘우리 목사님은 사랑이 없어! 따뜻하지 않다!’ ‘우리 목사님은 편애가 심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 그래도 불가원 불가근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래도 목회자는 외롭고 쓸쓸한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야 한다. 목사가 인간적으로 외롭다고 따뜻하기 시작하면 오해를 불러온다. 얼음장같이 차갑다고 비난해도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 개인적인 관계에서 보여줄 수가 없어도… 강단에서 말씀 속에서 우리 목사님은 내 편은 아니지만 뜨겁게 우리를 사랑한다는 감동을 갖도록 해야 한다. 참으로 목회가 얼마나 어려운지? 필자는 가끔 이런 농담을 하곤 한다. 예수님도 이민교회 목회를 하라고 하면 하셨을까? 지혜로운 주님은 제자 훈련만 3년하고 부담 없이 떠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인간관계, 목회의 원리를 터득하셨던 분이셨다. 이민 목회에 수고하는 목회자들의 영혼 깊숙이 간직해야 할 세상 처세에 남겨 주신 주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한다. ‘뱀처럼 지혜롭게,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너무 가까이도 말고, 너무 멀지도 않으면서 모두를 만족케 하는 ‘불가원 불가근’으로 새해의 목장들을 힘차게 일궈 가길 축복한다.
jykim47@gmail.com
01.18.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