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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의 기준

변명혜 박사 (ITS 교수)
변명혜 교수

(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어린 시절 엄마는 나에게 깔끔을 떤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렇게 깔끔 떨어서 네 마음에 맞는 남자가 어디 있겠니?” 하시던 생각이 난다. 나는 특별히 음식과 연결된 것이 깨끗하지 않은 것을 싫어했던 것 같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챙기던 엄마의 성품 때문인지 우리 집에는 오빠 친구들도 들락날락했고 사촌 오빠도 와 있었다. 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지방에 사는 외가 쪽 친척이 일년 정도 같이 살기도 했다. 나는 우리 가족이 아닌 사람하고 밥을 먹을 때 찌개를 덜어 먹지 않고 냄비에 같이 숟가락을 넣고 먹는 것이 싫었다. 식사 때 쩝쩝 큰 소리를 내는 것도 싫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나무라시며 깔끔 떨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아마도 딱히 갈 곳이 없어서 얹혀사는 사람에게 눈치주지 말라는 마음이셨을 것이다.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 내가 음식에 대해서 까다롭게 굴었던 것은 좀 봐줄 만한 일인 것도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엄마 말처럼 내가 다른 일에도 깔끔을 떨기는 했다. 대여섯 살 되었을 때 언니들이나 엄마에게 혼나거나 서운한 일이 있으면 나는 작은 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왔다. 요즈음 말로 가출을 한 것인데 자존심은 있고 꼬마가 갈 곳이 없으니 집 대문 앞에 앉아서 엄마나 언니들이 찾으러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싸 들고 나온 보따리 안에는 며칠동안 갈아 입을 속옷과 양말이 들어 있어서 언니들은 내가 어릴 적부터 유난을 떨었다고 말한다. 나도 집을 나서기 전에 속옷을 챙기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다른 집 부엌 살림을 보면 저장용기의 패킹부분에 끼인 까만 때, 식기 건조기 밑의 물 때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사람 살림은 못 본 척 하지만 한국에 있는 언니 집에 가면 언니가 무안하지 않을 만큼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해야 마음이 편하다. 막상 우리 집 살림은 그다지 깨끗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주변을 잘 정리하고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도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청결의 기준은 다르다. 어느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주로 음식이나 위생에 연결된 것이 깨끗하지 않은 것을 싫어하지만 어떤 사람은 물건이 정돈되어 있지 않은 것을 못 참기도 한다. 오래전 같은 교회를 섬겼던 목사님은 면봉이 본인의 청소 필수 도구라고 했다. 그 분의 청결의 기준에 기가 질렸었는데 어느 날 그 목사님 가족이 우리 집에 식사를 하러 오시게 되었다. 그 때는 박사과정 학업 중이어서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하면서 공부하느라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목사님의 기준에 맞게 화장실 싱크 주변을 면봉으로 꼼꼼하게 청소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각자가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나의 기준에 맞추어서 다른 사람의 청결의 기준을 판단하거나 비난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우리가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저 마음을 조금 불편하게 할 뿐 우리 삶에 그다지 직접적인 위험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셨다.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마음이 순수하고 생각이 바른 것을 의미한다. 어느 누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이 깨끗하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찬송가 가사처럼 “못된 행실 다 고치고 죄질 생각 다 버려도”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다고 자랑하지는 못 할 것이다. 우리 각자의 마음이 얼마나 부패하고 더러운지를 볼 수 있다면 나의 기준에 맞춘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판단과 비판이 훨씬 줄어들 것 같다. 혼자서 깨끗한 것처럼 마음의 깔끔을 떨 일은 없을 것이다. 새해를 맞아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면서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해서 주님의 아름다운 얼굴을 날마다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linda.pyun@itsla.edu

 

01.1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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