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1장에서 3장까지의 기록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와서 약 3-4년간에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15세 정도에 포로로 잡혀온 뒤 3년간 왕국학교에서 수학한 직후까지, 그러니까 그들이 약 18-19세까지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필자는 그들이 어린 시절에 머나먼 타국으로 잡혀 와서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철저히 박탈당했음에도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비결이 바로 정체성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것은 발달 심리학자인 에릭슨의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프로이드 제자였던 에릭슨(Erik Erikson)은 인간의 발달과정을 나이순으로 8단계로 구분했는데 그중 청소년기에 가장 중요하게 습득해야 할 과업으로 정체성 확립이라고 보았다. 이 시기에 청소년들은 긍정적인 정체성을 수립하지 못하면 평생에 걸쳐 역할 혼미상태에 빠진다고 보았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평생 추구하면서 달성해야 할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등은 바로 정체성과 관한 것이다.
이런 정체성은 어떻게 확립하는가? 마샤(James Marcia)는 바로 정체성 연구에 큰 획을 그은 심리학자인데 그는 정체성은 통상 4단계를 거치면서 확립된다고 보았다. 첫째는 정체성 미확립(Identity diffusion) 단계로 청소년기 아동들은 자기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내용에 대해 무관심하고 이에 대해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는 단계이다.
그러다가 정체성 혼미(Identify foreclosure) 단계를 거치는데 이는 막연히 자신이 추구할 가치와 내용에 대한 관심이 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탐구하지는 않은 상태이다. 이때 그들은 중요한 타자들(부모, 교사, 교회 목회자, 위인들의 삶)의 가치와 그들의 삶의 철학에 대해 동경심을 가지지만 아직 그들의 것으로 체화시키지는 않은 상태이다.
그런 후에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다. 이를 정체성 유예 단계(Identity moratorium)라고 부른다.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거나 다른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하거나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색다른 것을 시도해보기도 한다.
에릭슨은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을 권장했다. 때로는 방황하거나 부모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을 용인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사실 그의 발달이론에서 제일 강조한 것이 바로 청소년기 정체성 확립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청소년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 identity achievement)하게 된다. 정체성 확립을 위하여 이전 3가지 단계를 거치는 것을 용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아직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이전에 그들의 부모와 당시 요시야왕의 개혁정치를 통해, 예레미야 선지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무엇이 중요한 가치인가를 알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느브갓네살왕의 꿈을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갖게 되었고 이는 그들 평생에 흔들리지 않은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렇다. 청소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정체성이다. 그래서 정체성은 사단과의 싸움이다. 사단은 우리에게 참된 정체성을 갖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미혹하고 협박하고 때로는 교화시킨다. 세상 문화에 정체성을 맞추도록 유혹하는가 하면, 진리가 아닌 것으로 회유하기도 한다.
정체성 갖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 널리 알리려
정체성의 핵심: 택하신, 왕같은, 거룩한, 소유된(벧전2:9)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간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 느브갓네살 왕은 바벨론의 사상과 가치, 교육으로 하나님이 규정한 정체성을 파괴하려 했다. 더 나아가 최고의 문화, 의식주등을 제공하면서 바벨론의 가치관을 주입시키려 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이름을 바꾸며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파괴하려 하였다. 다니엘이라는 뜻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의미였지만 바벨론에 끌려가서 다니엘은 벨트사살(바벨론의 신인 벨이 왕을 지킨다는 의미)이라고 바꾸게 된다.
그러나 그런 허위의식이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바꾸지 못했다. 그것이 필자가 다니엘을 존경하는 이유이다. 다니엘서를 읽으면서 필자는 바로 그 정체성의 힘을 늘 깨닫게 된다. 다시 다니엘서 1:8을 보자.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정체성이 있는 사람의 특징은 바로 뜻을 정하는 것이다. 뜻을 정한 사람은 환경과 조건,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다. 바로 정체성의 힘이다. 필자는 우리 청소년들이 바로 그런 정체성으로 무장되기를 기도한다.
물론 정체성 그 자체가 우리 삶의 목적은 아니다. 정체성을 가졌다고 하는 크리스천들도 때로는 나약하고 타협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우리는 누차 봐오지 않았는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보다 그 정체성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성경은 정체성을 하나님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하도록 우리를 권면한다. 내가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우리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한 성경구절이 있다. 바로 베드로전서 2장 9절이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실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많은 사람들이 족속, 제사장, 나라, 백성 같은 단어에 주목하지만 정작 중요한 우리의 정체성은 4가지 단어(‘택하신’ ‘왕같은’ ‘거룩한’ 그리고 ‘소유된’)에 함축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자이며, 왕같이 존귀한 자이며,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자이며, 하나님이 소유하신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의 핵심이다.
왜 이런 정체성이 필요한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정체성이 없는 자들도 문제이지만 그 정체성을 헛된 방향으로 소모하거나 낭비하는 것도 문제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확실한 정체성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 정체성을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지 명확하게 알았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아름답게 쓰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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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