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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있는 자녀로 키우자!

다니엘은 그의 나이 15세에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거기서 3년간 느브갓네살이 지정하는 장소에서 교육을 받게 된다. 3년 동안의 훈련기간이 끝나자 다니엘과 세 친구는 느브갓네살왕 앞에 불려나가 시험을 받는데 그 결과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으므로 그들을 왕 앞에 서게 하고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10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단1:19-20).

즉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너무 출중해서 다른 소년들과 비교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무엇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이렇게 똑똑하게 변모시켰을까? 바벨론의 교육제도? 훌륭한 교사들? 최고의 학교 커리큘럼?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아니다. 그 정답이 성경은 정확하게 설명한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단1:17). 

그렇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책을 깨달아 알게 하고 지혜를 주셨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비록 그가 어쩔 수 없는 처지와 환경 때문에 다른 나라에 끌려와 포로가 되어 다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통하여 교육을 받았다 해도 그의 진정한 학문과 학습의 원천은 바로 하나님이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그들의 지혜와 총명이 바벨론의 모든 박수와 술객보다 10배나 나았다고 기록한다. 

필자가 대학에서 교육학을 가르치고 있기에 자녀교육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학부모님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종종 있다. 그런데 그때마다 드는 고민이 바로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 무엇인지 혼동하시는 부모님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느낀다. 교육의 목표가 무엇일까? 자녀가 좋은 학교를 간다고 해서 자녀의 지혜가 좋아진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아이비리그의 대학교에 자녀를 보내려 모든 초점이 맞추어진 학부모들을 볼 때 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믿음으로 무장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녀를 먼저 하나님을 만나게 하자. 똑똑한 아이로 키우기보다는 믿음 있는 아이로 키우기를 권면한다. 성경 잠언 9:10은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라! 

다니엘은 3년간 훈련기간이 끝난 후부터 바벨론의 정부 고위직에 임명되어 80대 중반 페르시아 제국의 고위 공직자로 일하고 은퇴할 때까지 근 65년간을 세 왕조에서 일하게 된다. 다니엘 1:21의 짧은 한 절에서 그의 일생의 삶이 담겨져 있다. “다니엘이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고레스왕 원년이라 함은 기원전 538년, 즉 페르시아 왕조가 등장하여 바벨론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제국을 건설한 때이다. 그때까지 다니엘을 일했다는 것이다. 고레스왕은 기원전 583년 이스라엘 민족이 예루살렘에 귀환해도 좋다는 칙령을 발표하게 되고 이에 따라 1차 유대민족의 귀환은 다음해인 537년에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605년 15세에 포로로 잡혀 와서 3년 후인 602년부터 정부 고위직으로 임명된 후 538년까지 대략 65년간 그의 나이 80중반까지 공직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러니는 오랜 기간 동안 세계는 바뀌고 정권은 바뀌어져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벨사살, 메데의 다리오, 페르시아의 고레스왕까지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 그는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렇다고 그는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부정한 짓을 하거나 세상의 풍조에 동화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바로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필자는 그것이 다니엘의 뚜렷한 정체의식에서 찾고 있다. 그는 그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았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것을 정체성, 아이덴티티라고 한다. 다니엘서를 읽는 동안 우리는 다니엘이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단히 찾으려는 노력을 평생 동안 해왔다는 사실을 보고 감격하게 된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포로로 잡혀온 다음 그는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굳게 마음을 정하였다는 것(단1:8)이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이 그의 정체성(존재 이유)이 되시기 때문이다. 만약 세상의 기준과 문화가 그를 지배하였더라면 그는 고기와 포도주를 먹는 것에 대해 그리 고민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그의 정체성에 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다 라는 결단, 그것이 하나님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원칙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있는 사람은 어떤 외부의 압력이나 문화의 유혹 속에서도 하나님의 가치를 그 속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살아간다. 비록 이름은 바벨론식으로 바뀌어졌고 생활패턴이 바벨론식으로 바뀌어질 수 있지만 그의 내부, 생각과 사상, 마음가짐은 바꾸어져서도 바꿀 수도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정체성이 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정부고위직에 65년간 재직한 다니엘의 학문과 학습 원천은 하나님 

타협하지 않는 삶 지탱하게 하는 정체성 확립시키는 영성교육해야

 

그러한 정체성은 다니엘을 훈련시킨다. 그러한 정체성이 타협하지 않는 삶을 지탱하게 한다. 정체성은 훈련을 통해 습관을 만들고 용기를 발산시킨다. 그것이 평생 그로 하여금 매일 하루 세 번 기도를 하게 된다. 그래서 어느 환경이 와도 그 환경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거기에 합당한 자세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게 한다. 

한 초등학교 어린이가 학교에서 과학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진화론이 반 성경적이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들으면서 참으로 감탄했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학생대표로 졸업소감을 이야기할 때, 한 학생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로 마쳤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그것이 진정한 정체성이요 아름다운 용기이다. 용기는 비록 나에게 불이익이나 손해가 있다 하더라도 내가 믿는 가치와 진리를 지키기 위해 문제제기를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나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늘의 모든 청소년들이 다니엘을 본 받으라 권면하고 싶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흔들리지 않은 정체성이 있었기에 15살의 나이에 담대했고, 또 계속되는 시험에 그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 다니엘은 참으로 우리가 키워야 될 자녀들의 본보기이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초지일관 믿음을 지키며 살아갔던 그는 믿음뿐 아니라 지식과 지혜에 있어서도 단연 으뜸가는 학자요, 선지자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를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은 그의 부모의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교육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우리는 자녀교육에 힘을 다하여야 한다.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영성교육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이다. 

hlee0414@gmail.com

03.0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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