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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후손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줍시다

다니엘은 참으로 불행한 시기에 태어났다. 그의 조국 유다가 멸망하는 즈음에 태어나 그는 유다의 적국인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에서 유다의 멸망을 목도하고 나라 없는 설움을 평생 당하고 살아간 사람이다. 

다니엘 1장 1-2절을 읽어보자. 유다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3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창고에 두었더라. 

이때의 역사적 배경을 한번 살펴보자. 유다왕 19명 중에서 비교적 성군이라 불리는 요시야왕은 철저한 종교개혁을 이끌어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일조를 하게 된다. 사실 유다가 나라다운 체통과 위엄을 지키고 살았던 때는 바로 요시아왕 때까지였다. 그런데 기원전 605년을 기점으로 세계정세는 급변하게 되고 유다는 풍전등화 같은 운명을 맞게 된다. 바로 므깃도 전투에서 이집트 바로느고왕과 원치 않는 전쟁을 하게 되고 이 전쟁에서 요시아왕이 사망을 하게 되면서 유다는 급속도로 쇠망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애굽의 바로느고는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유다를 애굽에 종속시키려 하지만 당시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장하는 바벨론 느브갓네살(느브는 바벨론의 신인데 이말은 느브 신이 그를 보호한다는 말)은 앗수르/이집트 연합군을 가케미시 전투에서 물리치고 이 여세를 몰아 당시 친 애굽정권이었던 유다를 침공하여 당시 많은 사람들을 바벨론 포로로 잡아가고 예루살렘 성전 기물을 빼앗아 그의 나라로 가져가게 되는데 이때 바로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호사가들은 역사를 사람의 시각으로 기록하여 침략자의 용맹과 우수성을 드러내려 하는데 익숙하지만, 성경을 통해 발견되는 하나의 사실은 바로 역사는 하나님의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다니엘 1:2에서도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주께서 유다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다시 말하면 느브갓네살이 스스로 침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유다의 침입을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하박국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 예레미야에게 손수 말씀하신 하나님, 똑같은 말씀이 바로 다시 반복된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겸허하게 들어야 한다. 때로 알 수 없는 많은 어려움과 고통 또는 힘든 순간을 겪게 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허락하심이요, 또 하나님이 어려움을 허락하셨으니 어려움을 물리쳐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때 느부갓네살왕은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학문이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라 명령한다(단1:4). 소년, 즉 청소년기에 있는 아이들 대략 10대 중반,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다니엘이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 갔을 때 대략 그의 나이가 15세쯤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지금으로 계산하면 한 중학생 나이 정도에 다른 나라 포로가 되었다는 것이고 이때부터 그가 죽었던 80대 중반의 나이까지 근 70년간을 그는 조국의 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이방 나라에서 살다가 죽었다. 무슨 말인가? 

다니엘은 그가 뭔가를 잘못해서 남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것이 아니었다. 선조들의 잘못으로 부모세대의 잘못으로 자녀들이 엄청난 고통과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을 우리는 다니엘을 통하여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선조들이 잘못하면 그 벌을 우리의 자녀, 후손들이 받게 된다는 것이다. 

다니엘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사람인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며…(단1:4).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을 보시는 잣대이다. 우리의 자녀 한 명 한 명을 이렇듯 하나님이 귀한 존재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들은 깨달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자녀들을 향해 흠이 없고 아름답게 바라보면 하나님의 역사가 자녀를 통해 일어남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모세의 부모는 그것을 알았다. 모세를 낳을 때 부모님은 그 아이가 매우 아름다웠다고 기록하고 있다(출2:2; 히11:23). 우리의 자녀들이 이렇듯 아름다운 가치를 가지고 태어났고 이러한 가치가 계속 자라나고 발전되도록 성인세대들은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모와 성인세대들의 의무요, 책무이다. 지금 현실을 바라보라. 부모 세대가 믿음을 올바로 지키지 못하고 죄악 속에 살아온 결과 우리 자녀들의 환경은 어둠속에 방치되어버렸다. 

학교에서는 온갖 반기독교적, 행위가 자행되고, 우리의 사회는 기독교의 핍박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자녀들이 고통 받고 살아야 할 지금의 교육, 사회 환경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포로로 끌려갔던 다니엘이었지만 믿음을 잃지 않아

부모의 신앙교육이 가장 중요...다음세대에 희망가져

다니엘도 그랬다. 불행하게도 부모가 잘못해서 선조가 잘못해서 다니엘은 어린 시절에 포로로 끌려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다니엘은 불평/원망하지 않았다. 참으로 귀한 믿음을 보인 소년이었고 이러한 믿음은 평생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놀랍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담대한 믿음의 소유자로 만들었을까? 

앞으로 이에 대해서 많이 나눌 것이지만 핵심은 그가 일생을 통하여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알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그는 어린 나이에 요시아왕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직접 듣고 자라났으며, 그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목소리를 듣고 거기서 유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경건한 유다 귀족 출신이었던 부모님의 믿음의 유산을 잘 전수받은 사람이었다.  

다니엘이라는 이름의 뜻은“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의미이다. 아마도 그의 부모님(성경에는 그들이 누구인지 기록하지 않는다)은 그에게 어릴 때부터 그를 보호하시고 그를 심판하시는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에 대해 끊임없이 교육시켰으리라. 심판자 하나님은 그가 베벨론, 메데, 피르시아를 심판하시고 종국에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을 세우심을 그는 꿈으로 분명히 목도했다. 그런 하나님은 그의 평생에 진리로 각인되었기에 그는 평생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 유다를 심판하셨지만 결국 다시 회복시키신다는 믿음을 그는 한 번도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믿음의 영적 환경을 물려주려는 노력을 쉬지 않고 행하여야 한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자녀의 믿음을 세우고 뿌리내리는 영성 프로젝트가 실시되어야 한다. 

다니엘을 통하여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삶이 어떨지라도,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라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역사하시고 세계를 지배하시고 믿음 있는 자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을 때 유대인들은 체념하고 슬퍼하고 고통스러웠지만 바로 그들이 배운 믿음을 세계 방방곡곡에 뿌리내리게 했다. 70년 후 고국으로 돌아온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달고 하나님께 감격에 겨운 예배를 회복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이 있다. 믿음의 씨를 뿌리고 우리 자녀들을 영성으로 계속 교육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자. 바로 우리 자녀들이 모두 다니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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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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