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입니다. 주님의 다시 사심을 기억하는 날이지만 아직도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님은 정말 다시 살아나셨을까요? 물론입니다. 부활을 확신하기 위해 두 가지 증거를 기억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로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는 ‘삼위일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그 때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19)
성부와 성자 성령, 그 어느 한 분도 안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셨지만 그래서 반드시 살아나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고전 6:14) 여기 또 하나의 증거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나오고, 말씀을 들으며 믿을 수 있으며,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까닭은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영이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 15:26 )
예수님이 성령을 내 안에 보내셨다는 사실은 그가 지금도 살아 계시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내시는 영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변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 모델입니다. 씨를 땅에 뿌립니다. 뿌려질 때의 씨는 움직이지도 자라지도 못합니다. 마치 죽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썩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싹이 돋고 줄기가 세워지고 열매를 맺습니다. 처음 땅에 뿌려진 씨앗과는 전혀 다른 모양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마음에 품은 사람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어떤 변화입니까?
1. 죽는다.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후에 많은 열매가 되려면 반드시 ‘죽어야’한다고 주님은 가르치십니다.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 주님이 부활하시기 위해 반드시 하셔야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죽으시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영을 가진 사람들도 새 생명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 생명의 역사를 이루기 전에 우리 안에서 먼저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
십자가를 져야 제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예외 없이 모두 죽습니다. 죽어야 제자가,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선언은 다름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살면서 당하는 어려움 정도가 아닙니다. 주님과 상관이 없었던 옛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왜 이래야 합니까? 바울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6)
죄를 짓는데 익숙한 몸이 죽어야 다시는 죄에 종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다시 이렇게 교훈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 4:22)
우리의 못된 옛 습관들과 죄의 성품들을 성령은 벗겨내십니다. 죽이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야 새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옛 사람이 죽고 나서야 부활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하시는 두 번째 일은 우리를 새롭게 살리시는 부활의 사건입니다.
2. 다시 산다.
에베소서의 말씀을 좀 더 읽으면 이렇습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3-24)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구원하신 사람은 의로운 사람, 진리를 따르는 사람, 거룩한 사람으로 다시 삽니다. 오늘 본문은 이 놀라운 변화를 이렇게 그림처럼 설명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땅에 뿌려진 죽은 것 같았던 씨앗에서 싹이 돋아납니다.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의 씨앗이었는데 열매는 100배나 많습니다. 처음 땅에 뿌려질 때의 씨앗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삶으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삶의 목표가 달라졌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달라졌습니다.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의 영이 오셔서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세상에서의 부활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래야 합니다.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는 두려워 도망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니 그 비겁한 모습들은 다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부활합니다. 두려움이 없이 관원들 앞에서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베드로의 말 한 마디에 수천 명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누가 크냐고 다투던 시기심은 죽어버렸습니다. 자기 몸을 드려서라도 다른 사람을 살리려는 열망으로 삽니다. 성도들도 그랬습니다.
자신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원형경기장에 던져져도, 십자가에 달려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직장도 포기하고 집도 버린 채 땅 속에 들어가 평생을 살아도 원망이 없습니다.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활은 육체의 죽음 다음에 경험하는 일만은 아닙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합니다. 사는 것이 힘이 들고 두렵습니다. 하나님께 보이지 않는 곳이라도 있는 것처럼, 세상에 숨어 이런저런 죄를 매일 반복하며 살기도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이 없고 세상에서도 담대하지 못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는 주일에 주님은 다시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내 영을 너희에게 주리라.’ 부활의 영입니다. 다른 인생을 살아가도록 역사하시는 영입니다.
이미 그 성령은 여러분 안에 계시고, 이미 일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내가 그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내 옛 사람은 죽었습니까?
성령께서 날마다 벗겨내시는 옛 사람을 돌아서서 슬그머니 다시 주워 입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까? 성령께서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능력을 아직도 두렵고 어색하고 잘 몰라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내 안에 이미 계신 성령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순종하십시오.상상도 못할 새로운 인생을 사는 부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HYOUK@MSN.COM
04.19.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