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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금요일( 聖 金曜日 )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송종록 목사

(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금년 성 금요일은 4/18일이다. 이날은 고난주간 중에서 그 핵심을 이룬다. 누가 어떻게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수 있는가? 오직 주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이다. 이를 위해 2천년 전,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세상에 오셨고 마침내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이 되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절정을 이룬다. 이로써 성 금요일은 1년 365일 중 하루가 아니다. 진정 믿음의 사람이라면 어찌 이 날을 간과할 수 있는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주님의 고통과 아픔을 체휼(體恤)함이 없다면 십자가 보혈의 은혜와 능력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잠시라도 세상 사를 접고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주님과 연합을 시도해야 한다.

 

1. 성 금요일이 “Good Friday”로 불러진 이유

 

사람들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어둡고 암울한 이 날을 왜 “Good Friday”라고 부르는가? 여기에는 몇 가지 신학적, 언어적인 전통에서 비롯된다. 첫째 영어의 고어(Old English)에서는 “Good"이 "Holy" (거룩한)의 의미로도 쓰였다. 즉, "Good Friday"는 원래 "Holy Friday"(성스러운 금요일)를 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의 희생이 인류를 위한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예수의 죽음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진 구원의 사건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비록 고통스럽고 슬픈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인류에게 “좋은 소식”을 가져다준 날이다. 셋째 여러 나라 언어에서 “성스러운 금요일”로 사용되고 있는 보편성 때문이다. 이를테면 독일어: Karfreitag (슬픈 금요일), 스페인어: Viernes Santo (거룩한 금요일), 프랑스어: Vendredi Saint (성스러운 금요일) 등으로 쓰여 지고 있다.

 

2. 최후의 날을 맞이하신 예수

 

성 금요일은 예수 죽음의 날이다 (마26:47-27:61, 막14:43-15:47, 눅22:47-23:56, 요18:1-19:42). 예수님은 이날 새벽 한 시경에 가룟 유다가 앞잡이로 끌고 온 군대와 성전 관리, 제사장의 하속들에게 체포되었다. 주님은 대제사장의 집에서 동이 틀 때까지 대제사장과 공회 앞에서 종교재판을 받으셨다. 사형에 해당하는 자로 정죄 받은 예수님은 총독 빌라도의 관저로 끌려가셨다. 빌라도는 유대 종교지도자와 무리의 압박에 못 이겨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다. 프레토리움 뜰 안에서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씌우며 침을 뱉었다. 이어서 성 밖 골고다의 형장까지 매질하며 갔다. 오전 9시경, 언덕에 십자가 형틀이 세워지고 예수님은 손과 발에 못박힌 채로 사막의 땡볕 아래 6시간 매달려 계셨다. 정오부터 오후3시까지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다. 주님은 오후 3시에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신 뒤 운명하셨다. 이에 지진이 일어나고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

 

3. 십자가상의 칠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모진 고통을 겪으시며 일곱 마디 밖에 말씀을 하지 않았다. 제1언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이것은 용서의 기도였다. 제2언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이것은 파라다이스(낙원)의 약속이었다. 제3언 “어머니 보십시오, 당신의 아들입니다." "보라, 네 어머니다"(요 19:26-27). 이것은 아들로서의 효도였다. 제4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마 27, 46). 이것은 영적인 고민이었다. 제5언 "목 마르다"(요 19:28). 이것은 육신적인 고통이었다. 제6언 "다 이루었다"(요 19:30). 이것은 승리의 선언이었다. 제7언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눅 23:46). 이것은 최후의 신앙고백이었다. 여기 일곱 마디 중 처음 세 마디는 9시부터 12시 사이에 말씀하셨다. 12시부터 3시까지는 온 땅이 어두워졌고 그 3시간 동안 예수님은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후 3시가 되자 주님은 나머지 네 마디 말씀을 연거푸 하시고 운명하셨다.

성 금요일은 예수께서 인간의 대속제물 되심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는 삶은 어떤 평화나 생명력도 기대할 수 없다.

성숙한 신앙인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합일 된 생을 추구하는 자이다.

 

4. 십자가에 대한 존 스토트(John R.W.Stott)목사의 해석 

 

십자가는 기독교의 낡아 버린 전통적 문양이 아니다. 이는 신앙의 본질이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신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담대함의 가교이다. 그것은 신구약을 하나로 묶어주며 기독교의 신앙적 상징뿐 아니라 삶의 지침인 것이다. 십자가는 신약 사상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축인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독점적인 표지이며 기독교 지침의 상징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실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다. 왜 우리의 사죄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지해야 하는가? 왜 하나님은 십자가 없이 우리를 그냥 용서하시지 않는가? 사죄의 문제는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인간의 반항, 하나님의 본성과 우리의 본성 사이의 필연적인 충돌에 의하여 야기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핵심은 하나님의 거룩으로 죄를 폭로하며 하나님의 진노는 죄를 대적하는 것에서 자유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죄인을 위하여 독생자를 대속물로 내 주셨다. 그리스도 십자가가 기독교의 핵심이다.

 

5. 금식을 통한 십자가 고난 묵상

우리 크리스천들이 주님으로부터 한량없는 은혜를 덧입었건만 정작 그 은혜를 모르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속담에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했다. 작은 벼룩조차 낯짝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 염치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아무리 우리 인생이 세상사에 메이고 바쁘다 해도 성 금요일 만큼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베드로는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4:13)고 권면하고 있다. 본시 인간은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그 영도 무디어지기 쉽다. 따라서 한 방편이 있다면 금식을 통해 주께 나아가는 것이다. 금식 자체는 일차적으로는 먹는 걸 금하는 것이지만, 보다 본질적인 의미는 내게 소중한 행위를 중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마트폰, 카톡, 유튜브, 웹툰 등을 절제하는 것도 넓게 보면 금식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금식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집중을 더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금식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 위하여 하는 것이지, 금식이라는 육체적 고행에 따른 대가를 얻어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1년에 한 번 있는 고난주간이요 성 금요일이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때만이라도 1차적이며 가장 절제하기 어려운 욕망을 제어하며 십자가 고난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맺음 말

 

마르틴 루터는 “십자가의 신학은 빛의 신학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십자가 없는 번영 신학과 신앙과 우리 인간을 창조주, 구속주, 심판주로 연결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십자가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4가지를 가리킨다. *보편적인 것이다. 모든 신앙인은 누구나 져야 할 자기 십자가가 있다. *영속적인 것이다. 이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삶 속에서 날마다 져야 한다. * 의지적인 것이다. 우리의 자유의지로 하는 것이다. * 고통스러운 것이다. 자기희생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처절한 본을 보여주셨다. 금번 성 금요일이 또 다가오고 있다. 우리가 진정 크리스천이라면 잠시라도 짬을 내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백성 된 도리요 의무에서라기보다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새롭게 해방되기 위해서이다. 부활의 환희와 능력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십자가 고난에 동참한 만큼 비례해서 나타난다. 헨델의 메시아를 입술로만 찬양한다면 의미가 없지 않는가?

Jrsong007@hanmail.net

04.19.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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