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호 목사 (브라질 새소망교회)
히브리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12:1-3)고 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며 우리를 구원하려고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고통을 참으신 예수를 바라보며 인내로써 경주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성도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목표이며 대상이시다. 또한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보증이 되시며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신다. 때문에 신앙생활을 통해 믿음의 경주를 하는 성도는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그를 따라야 한다.
사람의 지체 가운데 눈의 기능은 일반적으로 보는 일이다. 그런데 눈의 기능이나 그 섬세함은 과학자들도 놀라고 있다. 눈의 종류는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육안(肉眼)이다. 이 눈은 빛을 보고 사물을 보는 눈이다. 눈은 사물과 빛을 보고 분별하는 신비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둘째는 지안(智眼)이다. 사람은 지안으로 세계를 보고 역사를 보고 학문을 본다. 그리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결행한다. 셋째는 영안(靈眼)이다. 시편 119:18에서 히브리 시인은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누가복음 24:13 이하를 보면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두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가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영안이 가리워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24:31을 보면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보더니”라고 했다. 영안이 밝아졌을 때 자기들과 함께 계신 분이 주님이신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페니 크로스비는 맹인이었다. 그러나 그 눈으로 주님을 보고 신령한 나라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찬송을 작시할 수 있었다. 헬렌 켈러 역시 맹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눈으로 지식의 세계를 보았고 영의 세계를 보았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를 바라본다. 주를 똑바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주의 백성인 것이다. 출애굽기 24장 29, 30, 35절을 보면 여러 날 기도 중에 하나님을 만나보고 시내산에서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고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우리가 주를 바라보면 내 얼굴이 주님을 닮게 된다. 부부도 30-35년 날마다 바라보고 살면 닮게 된다. 주를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 주님 편에 서지 않는 사람들은 참 사는 길이 없다. 그러나 주님 편에 서고 주님을 바라보면 참 살고 잘 되고, 흥하고, 구원 받고, 영생 얻고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 주님을 바라보든 바라보지 않든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는 지금 당장 주님을 바라보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이 결정은 반드시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다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자.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바라보는 성도들 되기 바란다. 민6:25-26에 보면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는 축원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늘 기도함으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자. 늘 찬송함으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자. 늘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러면 하나님의 얼굴빛이 우리들에게 비취고 평강의 은혜와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사40:31에 “여호와를 앙망(우러러 바람)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솟아나리라) 독수리가 날개 치며 하늘로 올라가듯 할 것이며 아무리 뛰어도 고단치 않고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