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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칼럼

91. 성경의 궁금증들(11) -성경의 수학적 오류 발견?

최우성 박사 (생리학, 창조과학선교회)

“창세기는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혹은 “성경은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란 말을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호주의 유명한 창조과학자인 조다단 사파티 박사는 이런 주장에 대해 이렇게 짧게 대답한다. “교과서는 언제나 많은 오류와 몇 년 지나면 구식이 되어버리는 정보들을 가지고 있지만 성경은 전혀 오류가 없고 언제나 새롭다!”

성경보다 과학을 위에 놓거나 성경과 과학을 대등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특징들 중의 하나는 가능하면 성경의 기록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기회만 되면 성경에서 꼬투리를 잡아서 성경을 액면 그대로 이해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단어 하나하나를 샅샅이 뒤져서라도 성경을 사실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한다. 그 중에 많은 부분이 빅뱅이나 진화론을 사실로 인정하고 이와 다른 성경의 과학적 표현을 틀렸다고 말한다. 그 뿐 아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수학에서도 성경의 오류를 찾았다고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나는 “평범한 크리스천의 과학 끌어안기”라는 주제의 강의 CD를 가지고 있다. 몇 년 전 유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집회에서 한 강연인데 이 강사는 ‘하나님께서 동물로부터 사람이 되게 했다’는, 하나님도 믿고 진화도 믿는 천체 물리학 박사였다. 강연의 요지는 세상 수많은 과학자들이 발표하고 믿고 있는 과정(진화)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믿으면 되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안 믿으면 간단히 해결된다는 것이다. 강연 중에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으면 안 되는 이유로서 수학에 대한 문제도 제기하였는데, 성경은 수학적으로도 사실일 수 없는 기록이란 놀라운(!) 발견을 한 것이다.

그 문제의 구절은 역대하 4:2이다. “또 놋을 부어 바다를 만들었으니 지름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길이의 줄을 두를 만하며” 이 구절은 솔로몬 성전에 물을 받아 두는 그릇(바다)에 대한 설명이다. 이 설명에 의하면 이 둥근 그릇의 지름이 10규빗이고 둘레는 30규빗이라고 했다.

중학교 때 배웠던 수학시간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원의 둘레는 2πr이다. 여기서 r은 원의 반지름이고 π는 3.1415926535…로 나가는 무한히 긴 상수로 알려져 있다. 이 지식은 사실로 여겨진다.

다시 역대하 4:2로 돌아가 보자. 여기서 성전의 바다 지름(=2r)이 10규빗이므로 반지름(r)은 5규빗이다. 따라서 원주(2πr )는 2 x π x 5 = 31.4규빗이어야 한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30규빗이라고 적혀 있다. 그 강연자는 바로 이 부분이 성경의 정확성을 믿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하면서 성경은 과학 교과서도 수학 교과서도 아니므로 성경을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되고 과학자들의 주장을 믿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다음 구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너비만 하고 그 둘레는 잔 둘레와 같이 백합화의 모양으로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삼천 밧을 담겠으며”(역대하4:5). 그 성전의 물을 담는 바다의 두께가 한 손 너비만 하다는 것이다. 즉 그 그릇의 두께가 약 4인치쯤 된다는 것이다.

다시 정확한 모양을 생각해보자. 그릇의 바깥지름이 10규빗(180인치)인데 그릇의 두께가 4인치라면 그 그릇의 안지름(2r)은 172인치가 되고 반지름(r)은 86인치가 된다. 따라서 담을 수 있는 물 부피에 직접 관련이 된 원주의 길이 2πr=2 x 3.14 x 86인치=540.08 인치 즉, 거의 정확하게 30규빗(30x18인치/규빗=540인치)이다.

그러나 역대하 4:2의 기록은 더 정확하다. “주위는 삼십 규빗 길이의 줄을 두를 만하며”라고 정확히 30규빗이 아니라 그 정도라고 빈틈 없이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삼십 규빗은 물의 양을 규정하는데 꼭 필요한 수치다. 성경의 표현은 그릇의 바깥지름과 안지름 둘 다를 담고 있는 가장 간결한 수학적 표현이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꼬투리 잡을 사람들의 수까지 세신 하나님의 무시무시함이 들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필자는 그 강연자가 이 문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문제가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또 다른 이유는 만약 그 사람이 이 문제점을 성경을 읽으면서 스스로 발견했다면 그 다음 구절까지 읽었을 것이고 거기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분은 그 정도의 수학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에 이상한, 그러나 전혀 문제가 없는 한 구절을 통해 세상 사람들 앞에서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린 언행의 근저에는 속임수 아니면 사실에 눈을 감아버리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어떻게든 성경을 해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고서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었을까? 물론 이 문제에 대한 해답도 필자가 한 것이 아니다. 이 문제 제기와 더불어 해답도 이미 오래 전에 나와 있었다. 그러므로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았다면 그 강연자도 이 설명을 몰랐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과학적인 오류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것이란 그들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과학적 주장에 성경이 맞지 않다는 사실만 발견해왔지 성경이 틀렸다고 증명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믿음이 성경과 다른 것이지 사실이 성경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 과장법도 있고 다른 수사법도 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가 아닌 문맥을 읽어야 하는 부분들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역사 부분에 있어서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역사를 기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온 인류의 구원 필요성이 들어 있는 창세기를 액면 그대로 읽지 않고, 과학자들이 증명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믿고 있는 빅뱅이나 아담의 존재 이전에 무수한 죽음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진화론의 토대에서 창세기를 읽으면 아담의 범죄로 인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필요도 없고 교회는 당연히 문을 닫아야 한다. 영국과 유럽이 그렇게 했고 지금 미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의 모국인 한국도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면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뭔가를 더하면 안 된다. 성경에 과학을 더하려는 시도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30:6).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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