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박사 (생리학, 창조과학선교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란 사실은 한 사람의 가치가 광대한 우주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명백하게 들어내게 된다. 창조자이신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에 관한 이유와 목적도 분명해진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란 존재에 비하면 이 무수한 별들은 지구에 빛을 비추는 별 가치가 없는 장식물들일 뿐이다.
계몽주의 시대와 더불어 1700년대부터 과학계는 성경의 지구 나이를 거부하고 지구가 오래 되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암석의 나이를 측정할 방법도 없었음에도, 지층이 아주 느린 속도로 차곡차곡 쌓인다는 상상이 사실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 측정법이 등장할 때는 이런 비과학적인 상상이 이미 사실로 굳어져 있었다(동위원소 연대측정 방법도 이미 나이를 알고 있는 암석의 나이를 맞추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측정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신뢰를 받고 있다). 이렇게 사실로 증명 되지 않은, 과학을 가장한 거짓 주장에 일반인들은 물론 수많은 과학자와 신학자도 속고 있다. 그 결과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오류가 있는 책으로 여기게 하였고 진화론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도록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경 중에서 가장 많이 읽혀졌던 구절이 창세기 1장 1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가 성경을 읽을 결심을 하면 대부분은 창세기부터 시작하게 되므로 창세기 1장 1절은 반드시 읽게 된다. 교회에 다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 구절만큼은 상당히 익숙한 말씀일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읽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창조물이 없고 창조를 선언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의 첫 번째 창조물이 무엇인지 물어 보면 이구동성으로 ‘빛’이라고 주저 없이 대답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창조하신 것은 빛이 아니라 지구였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heaven and the earth)를 창조하시니라”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바른 답을 못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한국어 성경 번역본들에는 시제가 현재형으로 되어 있다. 또 다음 절에서도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현재형을 사용해서 그 동사의 의미들이 분명한 행동의 결과로 전달되지 않는다. 반면에, 빛을 창조하실 때는 “빛이 있으라 하시니”라는 명령이 있고 “빛이 있었고”라는 확실한 표현이 있어 성경의 독자들이 지구 창조보다는 빛이 먼저 창조되었다고 혼동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창세기 1장 1절과 2절의 시제를 이렇게 현재형으로 번역하게 된 것은 영어나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오래된 지구 나이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믿은 결과들이었을 것이다. 이 잘못된 믿음이 창세기 1장의 동사를 현재형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로 나타났을 것이다. 현재형 동사를 사용함으로써 창세기를 역사 기록이 아니라 시적인 표현으로 만들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3절까지의 동사들을 분석해보면 그 동사들은 시의 언어가 아니라 역사를 기술하고 있음이 99.9% 확실하다.
동사 시제의 잘못된 번역 외에도, 오래된 지구 나이를 받아들인 결과는 단어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2절의 “형체가 없는”(foamless)을 “혼돈”(chaos)이란 단어로, 그냥 “비어 있는”(void)을 “공허”(emptiness)라는 단어로 번역을 했다. 이 역시 오래된 지구의 영향을 받은 타협된 창조이론(간격이론)의 영향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혼돈과 공허는 각각 어지럽게 된 것과 있던 것이 없어져버린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형체가 없고 비어 있는 것은 창조 과정을 설명하는 중립적인 의미이다.
창세기 1장 1절은 창조를 말하고 있는 제목이나 선언 정도로 생각을 하게 되고 별 의미를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첫 번째 창조된 물질이 지구가 아니라 빛이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영어 번역본들은 분명한 단순 과거(created)로 되어 있어 하늘(heaven)과 지구(the earth)의 창조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지구가 먼저 창조되었어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로 시작되는 2절이 의미 있게 연결될 수 있게 된다.
첫 번째 창조된 물질이 지구라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창세기 1장의 창조 과정은 이 지구를 꾸며가는 과정이다. 이 관점에서 보아야 창조의 최종 목표인 사람의 중요성이 명백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이해가 된다. 창조의 중심축이 지구가 아니라면 지구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많은 별들 틈에 지구는 우주에서 먼지로도 표현할 수 없이 작아지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은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게 존재 가치가 없는 미물이 된다. 그러나 창조의 중심이 지구며, 지구는 사람을 위해 창조되었고(사45:18),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란 사실은 한 사람의 가치가 광대한 우주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명백하게 들어내게 된다. 창조자이신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에 관한 이유와 목적도 분명해진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란 존재에 비하면 이 무수한 별들은 지구에 빛을 비추는 별 가치가 없는 장식물들일 뿐이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말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글자만 알면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더 이상 잘 표현하실 수 없게 써 두셨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문장을 수백 번 읽으면서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해 버리는 것일까?
오래된 지구의 나이와 진화론의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그 영향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성경을 자의로 해석해야 되었고 성경은 정확무오한 책에서 오류가 많은 책으로 여기게 되고 말았다. 성경 밖에서 반 성경적인 사상을 들여와 그것을 기독교의 기초에도 활용을 하니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을 해봐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2010년 USA투데이에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95%의 미국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성경의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은 28%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지금은 자녀들에게 ‘너 하나님 믿니?’라고 질문하면 안 되는 때가 되었다. ‘너 성경을 믿니?’라고 물어봐야 한다. 창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창조를 믿습니까?’라는 질문도 무의미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지만 그 중 많은 사람들은 창세기 1장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 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 3, 6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것이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내용 전부이다. 히브리서 11장은 창세기 1장의 창조와 그 창조자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고 있다. 창세기 1장의 창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구원의 길을 혼미케 하는 소위 과학적 사실이라는 거짓에서 벗어나 하나님 말씀에 권위를 인정하는 부흥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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