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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 그후

백승철 목사 (사모하는교회. 시인. 문학평론가)
백승철 목사

(사모하는교회 담임)

2025년 4월 4일 금요일 11시 22분, 문형배 헌법재판관소장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일치 <2024 헌나 8> 탄핵 사건을 인용했다. 비상계엄 선포한 날로 부터 233일, 대통령 취임 후로는 2년 11개월 만이다. 윤석열은 ‘주문’ 낭독 즉시 대통령 직을 상실했다.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탄핵인용의 중심을 잡았다. ‘헌법 수호의 이익’이 선명하게 돌출되었다. 헌재는 114쪽 분량의 결정문에서 ▲비상계엄 선포 요건 및 절차 ▲국회에 대한 군, 경 투입 ▲포고령 발령 ▲선관위 압수수색 ▲법조인 등의 위치 확인 시도 등 다섯 가지 쟁점 모두가 중대한 위헌, 위법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비상계엄이 탄핵인용으로 결정된 것은 명료한 것이다.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행위가 헌법적 절차에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미 이번 비상계엄이 헌법에 부합하지 않으며 상자에 갇힌 편증된 시각으로 대한민국이 결코 무너지지 않을 요지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이 최고조, 정점을 찍을 때 2025년 2월 22일 자 시론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화석>을 썼다. 예상대로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필자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도 <시론>을 읽는 독자가 의외로 많다는 것에 역설적 위안이 되었다. 필자의 이메일로 <시론>에 대한 반박과 충고의 글을 보내온 독자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필자의 <시론>을 영어로 번역 발표 해서 영어권에서도 관심을 받았다. 그만큼 탄핵 정국의 소용돌이가 심각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혹시 필자가 자의식 중심적 개론에 몰입된 것은 아닌지 곱씹게 살피는 기회도 되었다. 

탄핵인용이 발표되는 순간 한남동 관저 앞에 모였던 반대집회에서 정광훈 목사는 헌재  8명 전원일치 인용에 휘청거렸다. 순간 태세 전환이 빛의 속도였다. 4.19정신으로 탄핵인용에 저항할 것을 확실히 했다. 다음 날 5일 집회에서 전광훈 목사는 국민저항권으로 헌법재판소를 해체 시켜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오던 비가 잠시 멈춘 사이 “헌금 시간 되니까 비도 그치잖아. 돈이 젖으니까. 전광훈 목사님 힘내시라고, 우리는 믿음으로 이겼다고, 감사 헌금을 오늘만큼은 더 드려 주셔야 해.” 눈을 의심하고 또 귀를 의심했다. ‘믿음’이라는 단어가 길가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바람에 밀려 사람들에게 밟히고 찢긴 휴지조각이 되었다. “무엇을 믿음으로 이겼다.”는 것인가? ‘헌금’이라는 단어도 구걸하듯 값싸게 느껴 지기는 처음이다. 주일예배 설교에 단 몇분 그 사실을 언급했다가 댓글에 필자는 좌파로 낙인찍혔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후 3시 숨이 멈추기 전, 월요일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했다. 들어서자 마자 예수님의 분노가 폭발했다. 교회는 다름이 있어야 하는데 교회 안으로 세상의 기준이 들어와 ‘강도의 소굴’이 되었기 때문이다. 채찍으로 소, 양을 성전 밖으로 내 몰았으며 매매하는 자들을  쫓아냈다. 환전상들의 상과 의자를 둘러 엎었다. 폭군처럼 보였다. 만약 신고 받고 경찰이 왔다면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을 것이다. 기물 파손은 배상 범위를 훌쩍 넘었다.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막11:17).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기 때문에 소유권은 하나님이다. 그 집(교회)의 특이성은 ‘만민’으로 열쇠를 가진 몇몇 사람들만 교회 문을 열고 닫는 페쇄형이 아니라 동서남북이 열려 있는 공개형 구조이다.  곧 ‘누구든지’ 피부색, 신분, 좌파, 우파, 경상도, 전라도 지역과 관계없이 ‘하나’로  가능한 것은 집의 소유권자인 그리스도 안에서 관계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리스도가 그 집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은 불가능하다.

이후,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누구든지 그 집으로 들어가면 좌파, 우파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되기 때문이다. 교회를 향해 무엇을 기대하는가? 다시 말해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기대할 것이 무엇인가? 당연히 ‘기도’이다. ‘기도’가 없다면 사기다. 마치 ‘원조 설렁탕’ 집에 들어가 보니 ‘설렁탕’은 없고 자장면을 파는 형국이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에서 기도는 아픔, 좌절, 슬픔, 고통, 고난, 환난, 좌파, 우파, 그 어떤 것이라도 품는 항아리다. 그 기도의 통로로 하나님의 위로, 힘, 회복, 구원이 확증된 은혜의 눈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믿음의 행위, 성경적 시선으로 대한민국이 회복되는 길은 오직 하나의 길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가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회귀이다. 그래야 그리스도 마음으로 길을 비추는 세상의 빛이 휘어져 굴절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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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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