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현대신학 (Contemporary Theology) 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현대신학을 1919년 칼 바르트 (Karl Barth)의 <로마서 강해>가 출판된 것을 계기로 해서 일어난 신학 사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칼 바르트 이전의 근대신학 (Modern Theology)과 현대신학 (Contemporary Theology)은 외형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러나 두 신학의 기초는 모두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계시를 거절하고 인간의 이성과 인간의 자율성을 근거로 한 계몽주의 (Enlightenment) 사상과 계몽주의 왕자로 불리우는 철학자 칸트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Cornelius Van Til, The Reformed Pastor and Modern Thought, pp. 106-131 참고).
계몽주의 (Enlightenment, 독일어: Aufklärung)의 한자, 계몽(啓蒙)이란 말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칸트는 “인간이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 타인의 지도 없이 (물론 하나님의 계시의 도움없이) 이성적으로 사는 것, 또는 미완성 상태에서 완성태로 나아가는 것”을 계몽이라 했다.
칸트는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Was ist Aufklärung?)의 에세이를 통해 계몽의 정의를 말했다. 칸트의 이 말이 지금까지 계몽주의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이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의 모토는 “당신 자신의 이성적 지성을 과감하게 사용하라” (Dare to use your own understanding), “외부에서 오는 것들과 상관없이 생각하는 자유를 추구하라” (Freedom to think without sanction, without external to man himself), “도그마의 잠에서 깨어나라 (awakening from dogmatic slumber)이다. 계몽주의 사상에는 인간의 자율주의(autonomy)를 포함한다.
현대신학의 기초가 되는 계몽주의 사상은 권위와 진리의 잣대가 인간 외적인 권위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권위를 세우며, 현대신학에서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의 자율성에 근거하고 있다. 자율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최고의 권위로 진리를 평가하게 된다.
칸트는 기독교의 자율적인 계시 개념 (the Christian concept of autonomous), 즉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시는 개념을 왜곡시켜 인간의 자율적인 이성으로 (man’s autonomous reason) 바꾸었다.
다른 말로하면 보편적인 인간의 이성 (universal human reason/ Bewußtsein überhaupt 이 진리를 분별하는 최고의 판단자가 되었다 (이 주제는 Immanuel Kant, Religion within the Limits of Reason Alone 에서 잘 설명한다). 그러므로 “무엇이 진리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이 아니다. 사실상 진리를 판단하기 위해서 계시가 필요하지 아니하며, 인간 이성의 합리성에 근거한다. 이러한 사상이 곧 근대와 현대신학의 기초가 된다.
그런데 칸트는 눈에 보이는 세계를 “현상계”(Phenomena)로 칭했고, 동시에 현상계를 벗어난 본질적인 세계를 “물자체 (noumenal)의 세계”로 분류했다.
현상계를 벗어난 물자체(noumena)의 세계는 1) “물 자체” (Thing in Itself; Ding an sich) 이며, 2) “인간의 영혼,” 그리고 3) “신”의 영역이다. 칸트의 “누미나”의 세계는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와 흡사하다.
그러므로 칸트에 의하면 하나님을 연구하고 인간의 영혼을 연구하는 영역에서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을 기초로한 합리성을 가지고는 신학연구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칸트의 이 개념은 신정통신학에 적용되어져서 “연대기적 역사 (Historie)”와 “해석된 역사 (Geschichte)”로 구분한다. 불트만과 같은 실존주의 신학자는 “역사적인 예수”와 “케리그마적 예수”로 나누어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설명할 수 있는 예수와 동시에 현상계 뒤에 존재하는 의미로서의 예수로 나누게 된다. 또한 신정통주의에 의하면 계시를 설명하면서 물자체 (noumenon) 계시는 역사적인 현상세계에 들어 올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구분하면서 성경의 무오성과 영감설을 부인하게된다. 성경에는 오류가 있는 그 당시 신앙인들이 증언하는 고대 문서로 취급한다. 성경 그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이정표이며, 하나님과의 실존적인 만남을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역사적 사건과 신앙사건을 분리시켰으며, 역사적인 그리스도와 신앙의 그리스도로 분리시켰다. 근대신학과 현대신학의 사상적 기초는 칸트 철학이다.
개혁주의 입장에서 현대신학을 비판하는 이 글은 주로 반틸 (Van Til) 교수의 “The New Modernism,” “The Reformed Pastor and Modern Thought,” “Christianity and Barthianism,” 간하배 (Harvie M. Conn) 교수의 “Contemporary world theology, a layman’s guidebook,” 존 프레임 (John Frame) 교수의 “Cornelius Van Til, An Analysis of His Thought,” 박윤선 박사의 “개혁주의 교의학”의 제 2 부 “현대신학 비판,” 로버트 레이몬드 (Robert L. Reymond) 교수의 “New Systematic Theology,” “Jesus Divine Messiah” 등을 참고하였다.
I. 칼 바르트 (Karl Barth)와 신정통주의 (Neo-orthodoxy)
신정통주의 신학을 초창기에는 위기신학 혹은 변증법 신학으로도 불리워졌다. 신정통주의는 19세기 자유 신학에 대한 반발이라고 할 수 있다. 신정통주의는 1919년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의 출판으로 시작된다. 한 카톨릭 신학자는 “자유주의 신학의 종지부를 찍은 신교 신학의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이라고 했으며, 또 다른 신학자는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이라고 칭했다 (C. Van Til, The New Modernism).
스코틀랜드의 토렌스 (T. F. Torrance)는 “칼 바르트는 슐라이러마허 이후에 가장 위대한 신학자”라고 칭송했다. 다른 많은 신학자들도 칼 바르트를 높이 평가했다.
바르트의 스승인 자유주의 신학자 하르낙 (A. Harnack)은 예수는 유일한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단순히 사랑과 인본주의적인 이상들이 살아있는 구현 (simply the living embodiment of love and humanistic ideals)” 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스승인 자유주의 신학자 헤르만 (W. Herrmann)은 “성경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일반책과 같이 오류가 있는 책이기 때문에 많은 비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진리의 잣대는 체험과 느낌이라고 했다. 바르트를 포함한 이러한 사람들의 신학은 깊은 경건주의의 특성인 실생활의 기독교 경험을 강조하는 이상주의이다.
바르트은 로마서 주석에서 이전 학자들이 추구한 하나님의 초월성을 부정하고 세상에 내재한 하나님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면서 “전적 타자 (totaliter aliter/ the Wholly Other)” 로서의 하나님만을 강조했다.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초월성보다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했다. 바르트의 “타자”로서의 하나님은 반틸의 [The New Modernism] 에서 잘 분석, 비판되어져 있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속성을 ‘절대타자’로 규정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접촉점’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어느 것과도 동일시할 수 없으며, 성경의 말씀과도 동일시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바르트는 그의 주석, [로마서]에서, “하나님은 원과 접촉하지만 실제로는 접촉하지 않는 접선처럼 인간에게 오신다” (God comes to man, just as the tangent which touches the circle, but does not really touch it) 했다.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실 때에도 역설적으로 숨겨져 있을 것이며, 인간의 이성, 언어, 경험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자신의 방식으로만 자신을 드러내실 것이다. (That is, God would paradoxically be hidden even when he is revealed and would reveal himself only on his own terms, far beyond the reach of human reason, language, or experience).
19세기의 자유주의는 인간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바르트는 이러한 자유주의를 반대하면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하고 인간으로 만들지 말라”고 주장했다 (Let God be God and not man). 자유주의는 윤리의 기초위에 신학을 세웠다, 그러나 바르트는 신학의 기초위에 윤리를 세우고자 했다 (“Liberalism built theology on the foundation of ethics and Barth wanted to build ethics on the foundation of theology,” Harvie M. Conn, Contemporary world theology,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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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7.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