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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들의 언약 신학 (2)

이길호 목사

(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I. 청교도 언약 신학의 역사적 고찰 

 

언약 신학은 개혁 신학의 독특한 성격 가운데 하나가 된다. 언약 신학은 신, 구약 성경의 통일성과 연속성을 (unity and continuity) 전제로 한다. 언약신학은 성경이 신, 구약의 구별된 2개의 성경이 아니라 통일된 메시지를 가진 하나의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16-17세기 청교도들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개인, 교회, 사회를 포함)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언약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청교도들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통해서 인간과 관계하심을 믿는다.

언약 사상이 성경 전체를 통해 명백하게 나타나 있지만, 그러나 고대, 중세 교회 시대는 별로 적극적으로 발전되지 못했다. 그러나 16세기부터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에 의하여 언약 신학이 크게 부흥되고 발전되었다. 

스위스 취리히의 종교개혁가인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는 그의 글에서 언약 개념을 많이 언급했다. 그는 유아 세례 문제에 관하여 재세례파 (Anabaptists)를 반박하기 위해 언약 개념을 사용했다. 역사적으로 츠빙글리 (Zwingli)는 언약 신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츠빙글리 (Zwingli)의 뒤를 이은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 1504-1575)는 <유일하고 영원한 성경 또는 하나님의 언약> (Of the One and Eternal Testament or Covenant of God) 이라는 매우 중요한 책을 저술했다. 불링거는 성경의 다양한 언약들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새 언약은 이전의 모든 언약의 성취임을 주장하였다 (The various covenants of Scripture are organically related, and that the New Covenant was a fulfillment of all the previous covenants). 불링거는 신학 전체를 언약의 개념을 통하여 세웠다. 분명히 언약 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불링거는 츠빙글리나 칼빈보다 언약 신학을 더욱 발전시켰다. 

칼빈은 성경 해석에서 언약 개념을 사용하여 신, 구약 성경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칼빈은 불링거처럼 언약 사상을 자신의 신학을 구성하는 원리 (the organizing principle)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칼빈 (1509-1564)은 언약의 통일성을 가르쳤고, 언약의 관점에서 성례전 교리를 매우 고도로 발전시켰다 (the doctrine of the sacraments in light of the covenant).     

카스파르 올레비아누스(Caspar Olevianus, 1536-1587)는 언약 신학의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또 다른 16세기 종교개혁자이다. 그는 하이델베르크의 신학자였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썼다. 카스파르 올레비아누스(Caspar Olevianus)와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Ursinus)는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의 저자이다. 그들은 은혜언약의 교리를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은혜의 언약은 하나님과 택하신 자들 사이에 맺어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에 맺어진 언약인가? 올레바니우스에 의하면 은혜 언약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에 맺어졌고, 그리스도는 택함 받은 자들의 대표자라고 주장했다 

또한 올레바니우스는 삼위일체적인 구속 언약 (covenant of redemption)과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맺은 행위 언약 (the covenant of works)에 관해서 명시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했다.

17세기 언약 신학의 기본은 구속의 언약, 행위 언약 그리고 은혜 언약이었다. 그리고 언약신학 발전의 다음 주요 인물은 에든버러 대학교의 로버트 롤록 (Robert Rollock, 1555-1598)이다. 그는 행위 언약의 조건은 십계명에 요약된 하나님의 도덕법 (the moral law of God)에 대한 완전한 순종이라고 가르쳤다. 그에 의하면 도덕법은 시내산에서 처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으며 아담의 마음에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20장까지는 돌판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도덕법은 인간 창조가 시작될 때부터 인간의 마음속에 기록되어져 있었다. 이것은 행위 언약 사상의 발전에 있어 롤록의 큰 공헌 중 하나이며, 롤록은 행위언약이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지만, 모세 시대에 더욱 명백해졌다고 주장했다.

 

모세의 언약 (시내산 언약)이 은혜언약인가? 아니면 일종의 행위 언약의 재현인가?

(Is the Mosaic Covenant some sort of a re-manifestation of the Covenant of Works or not?) 이 주제의 논쟁은 지금까지 계속된다. 

존 머리 (John Murray)를 비롯한 많은 현대 개혁 신학자들은 모세의 시내산 언약이 은혜 언약이라고 했다. 그러나 메러디스 클라인(Meredith Kline) 교수는 시내산 언약은 행위 언약의 일종이라고 주장했다. 

17세기 영국의 개혁신학은 특히 언약 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나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와 같은 캠브리지 신학자들은 모두 언약 신학자들이다. 그들의 신학 사상에는 언약 신학이 기초가 되었다. 특히 윌리엄 에임스는 당시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칼빈주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존 프레스턴(John Preston)은 1629년에 쓴 그의 저서 <새 언약> (The New Covenant, or the Saints Portion)에서 언약 개념을 강론했다. 존 프레스턴은 행위 언약의 조건은 십계명에 요약된 하나님의 도덕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이라고 가르쳤다. 프레스턴은 로마서 2장에 기초를 둔 도덕법이 시내산에서 처음으로 주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도덕법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으며 아담의 마음에 기록되었다고 했다. 

또 다른 캠브리지 칼빈주의자인 존 볼(John Ball)은 1645년에 <은혜언약에 관한 논문> (The Treatise on the Covenant of Grace)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것은 언약신학에 대한 또 다른 고전적인 훌륭한 책이었다.

그리고 제네바 종교개혁가 요한 칼빈의 제자요, 칼빈의 뒤를 이어 개혁 신학을 발전시킨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 1519-1605)와 화란 신학자 요한 코케이우스(Johan Cocceius 1603-1669)는 뛰어난 언약 신학자들이다. 

그리고 17세기의 대륙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언약 신학자는 프란시스 튜레틴(Francis Turretin, 1623-1687)이다. 튜레틴은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가르쳤고, 특히 언약 신학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조직신학 교과서 <변증신학강요>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는 프린스턴 신학교의 아치볼드 알렉산더에게 영향을 주었고, 찰스 핫지의 <조직신학>이 나오기까지 개혁주의 조직신학의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튜레틴의 언약 신학은 그의 시대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한 글이다.

당시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활동하고 있던 제임스 어셔 (James Ussher; 1581- 1656) 가 있었는데, 그는 31년간 아일랜드의 대주교로 있었다 (Archbishop Ussher). 어셔 대주교는 아일랜드 성공회의 신앙 고백서인 <아일랜드 신조> (The Irish Articles, 1615년)의 저자였다. 그리고 그는 조직신학 책 <Body of Divinity> 을 지었고, 이러한 그의 책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작성에 신학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7장 전체는 언약 신학을 다루고 있다. 신앙고백서 8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직무에 대한 교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언약 신학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교회론, 성례전 교리, 율법 교리, 기독교 자유 교리 등,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전체에 언약 신학의 영향은 대단하다. 언약 사상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 코케이우스(Johan Cocceius, 1603-1669)에 대해 살펴보자. 그는 독일 브레멘 (Bremen)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의 윌리엄 에임스 (William Ames) 밑에서 공부했고, 라이덴 (Lyden) 에서 가르쳤다. 윌리엄 에임스는 영국의 케임브리지 청교도 학자인데, 많은 시간을 화란에서 보냈고, 그곳에서 벌어진 칼빈주의와 알미니안과의 논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요한 코케이우스는 윌리엄 에임스의 제자로서 1648년 하나님의 언약의 교리에 관한 책을 <The Doctrine of the Covenants and Testaments of God> 썼다.

그리고 요한 코케이우스와 동시대에 활동한 화란의 언약 신학자 헤르만 위치우스(Herman Witsius, 1636-1708)가 있다. 헤르만 위치우스는 화란 사람으로 라틴어로 저술한 자신의 책 <언약의 경륜> (The Economy of the Covenants)이 영어로 번역되었다 

요한 코케이우스의 작품이 라틴어로 기록되었고, 영어로 번역된 적이 없기 때문에, 영어로 번역 출판된 헤르만 위치우스만큼 영국과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 영향을 끼지치는 못했다. 

그리고 뉴 잉글랜드 청교도 사회에서는 존 코튼(John Cotton)과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가 대표적인 칼빈주의 언약 신학자들이다. 

19세기 프린스턴 신학자 찰스 하지(Charles Hodge)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투레틴(Turretin)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 개혁주의 언약 신학의 전통을 계승했다.

KHL0206@gmail.com

09.23.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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