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칼럼니스트)
World Share USA 대표
C. S. 루이스의 삶에서 친구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어머니가 일찍 죽었다는 것과 늦은 결혼을 고려하면 루이스에게 친구는 매우 중요했다. 루이스가 가장 오랜 기간 친구 관계를 유지한 사람은 고향 친구 아서 그리브즈(Arthur Greeves)다. 아서 그리브즈는 사실 C. S. 루이스보다 세 살 연상이다. 루이스의 형 워런과 동갑이다. 그는 엄밀히 말하면 루이스의 동네 형이다.
아서 그리브즈는 벨파스트에서 가장 부유한 방직업자 조지프 그리브즈의 막내아들이었다. 그의 집은 루이스가 어린 시절을 보낸 리틀리 맞은편의 큰집에서 살았다. 루이스는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그리브즈를 어린 시절에 만난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알리스터 맥그래스에 의하면 루이스가 1907년 5월에 쓴 편지에 어린 시절에 둘이 만났던 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편지는 9살의 C. S. 루이스가 기숙학교에 있는 형 워런에게 보낸 편지였다. 루이스는 집에 새로운 전화기가 설치되었다는 것을 형에게 전하면서 새 전화기로 그리브즈에게 전화를 했지만, 통화를 못 했다는 대목이 있다는 것이다. 이 편지의 사연에 의하면 아서 그리브즈는 루이스나 그의 형 워런이 잘 아는 사이였던 것이 분명하다.
어린 시절 아서 그리브즈와 CS 루이스의 끈끈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1914년 4월 중순 마지막 학기를 위해 몰번 칼리지로 돌아가려던 루이스는 아서 그리브즈 자신이 병으로 앓아누웠으니 한번 찾아와 달리는 부탁을 받고, 루이스는 아서 그리브즈를 찾아갔다. 그리고 루이스는 그리브즈의 침대 옆에 있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그 때 그리브즈 침대 옆에서 발견한 책이 거버(H. M. A. Guerber)의 <북유럽인의 신화(Myths of the Norsemen)>다. 루이스는 그리브즈에게 ‘신화를 좋아하느냐?’라고 질문했고 두 사람은 이 책을 통해서 신화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때부터 루이스와 그리브즈는 소울 메이트가 되었고 루이스가 죽을 때까지 50여 년간 긴밀하게 편지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데빈 브라운에 의하면 첫 편지는 C.S. 루이스가 몰번 칼리지에서의 마지막 기간을 마쳐갈 때 쓴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편지는 루이스가 캐스턴으로 옮긴 직후에 쓴 편지로 두 사람의 우정이 성숙한 단계로 발전함을 느낄 수 있다. 루이스는 새로운 학교생활에 대한 기대와 다짐을 표현하면서, 아서 그리브즈에게 가능한 한 빨리 편지를 보내라고 요청했다.
그 후로 루이스는 아서 그리브즈와 수시로 편자를 주고받으며 삶과 생각을 나누었다. 데빈 브라운은 <C. S. 루이스의 생애>에서 루이스가 아버지와 형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많은 편지를 보낸 사람이 아서 그리브즈라고 말한다. 단행본 <루이스가 아서 그리브즈에게 보낸 편지들(The Letters of C. S. Lewis to Arthur Greeves)>에 296통의 편지가 담겨 있다.
루이스는 삶의 중요한 문제들을 만날 때마다 아서 그리브즈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는 솔직한 루이스의 마음이 담겨 있어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기숙학교와 군대 생활로 떠난 형 워런의 빈자리를 그리브즈가 차지했다. 마음을 나누고 비밀을 털어놓는 친구가 된 것이다.
일례로, 커크파트릭 선생을 만나면서 루이스는 자신의 불신앙이 깊어지자 자신의 상태를 그리브즈에게 털어놓았다. 1916년 10월 루이스가 보낸 편지에서 ‘기독교도 종교적 신화라고 생각한다’라고 표현했다. 이 편지 후 두 사람은 격렬하게 논쟁하며 적어도 여섯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고 이견(異見)을 도무지 좁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를 인정하게 되었다.
아서 그리브즈와 루이스는 상호 격려를 나누는 친구였다. 성장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은 선한 영향력은 굉장하다. 루이스는 견고한 믿음과 안정된 정서를 가진 아서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루이스는 자신의 편지에서 아서로부터 자애심과 소박함을 배웠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아서 그리브즈도 C. S. 루이스에게 편지를 자주 보냈고, 그의 일기장에서 루이스에 대한 염려를 자주 언급한다. 그리고 루이스의 안위를 걱정하기도 했고, 그의 삶에 루이스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의 일기장에 “친구를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루이스 없이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루이스를 향한 마음을 표현했다.
루이스는 1차 대전 중에 참전했는데 참전 초기에 참호열에 시달려 고생했다. 프랑스 해안에 있는 제10 영국 적십자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아버지에게도 편지를 쓰고 그리브즈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자신의 신상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루이스는 거의 매번 그리브즈에게 편지를 보내 상세한 설명을 했다.
병원에서 그리브즈에게 보낸 편지에서 루이스는 당시 읽던 책, 앞으로 읽을 책을 소개하는 편지를 보냈다. 루이스는 그리브즈에게 종종 이런 편지를 보냈다. 또 루이스는 그리브즈에게 보낸 어느 편지에서 “사는 것이 지긋지긋해지거든 글을 써라! 잉크는 모든 병의 훌륭한 치료제라는 것을 나는 오래전에 발견했네”라고 썼다.
아서는 루이스에게 형과 아버지 다음으로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와 루이스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았다. 루이스는 자신의 마음의 비밀과 인생의 모든 과정을 친구에게 나누었다. 루이스는 자신이 아버지를 방문했을 때 매일 편지를 보내는 무어 부인에게 아서 집 주소를 알려 주어서 편지를 보내게 했다. 아버지가 불편해하는 무어 부인의 편지를 아서 그리브즈가 대신 받게 했다.
루이스는 삶의 중요한 문제들을 나눈 것이다. 루이스는 자신의 영적 방황도 그리브즈에게 알렸다. 그리고 자신이 영적인 회복을 하고 다시 기독교 신앙으로 복귀했던 1931년 10월 1일에도 어김없이 그리브즈에게 편지를 보냈다. 루이스는 아서 그리브즈를 평생 친구로 교제하면서 삶의 고민과 비밀을 나눈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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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0.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