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유다 왕국 시대 인장(왼쪽) 및 봉니(오른쪽: ‘유다왕 히스기야’)
창세기를 묵상하며 2022년을 감사히 보냈다. 성경의 첫 책에서 우리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를 많이 볼 수 있는데, 본 논고에서는 그 중 세 곳을 살펴보고자 한다.
1. 하나님의 형상
바울은 창세기 1장의 아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롬5:14).
이 구절에서 “오실 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기에, 아담은 예수의 모형이었다는 말씀이 된다. “모형(typos)”의 사전적 의미는 인장을 찍었을 때 남는 인영을 뜻한다. 고대에 두루마리로 된 공문서를 보낼 때 이를 봉인하기 위해 묶은 노끈의 이음매에 점토덩어리인 봉니를 붙이고 인장을 눌러 찍었는데, 수취인은 봉니에 찍힌 인영을 보고 발신자와 내용의 완전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금 단순화시켜 적용해 보자면 이런 셈이다: 우리가 창세기라는 공문서를 수신했는데(성령의 감동으로 모세를 통해), 그 문서에 찍힌 인영(아담)을 보니 그 인장(성자 예수)을 찍은 발신자가 성부 하나님이시더라는 말이다.
이처럼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 즉 인영이었다. 비록 보석을 깎아 만든 인장과 점토덩어리인 봉니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지만, 인장의 인영 또는 인문이 봉니에 찍힐 때 그 봉니는 더 이상 단순한 점토덩어리가 아닌, 그 주인의 의도와 권위를 반영하는 증표가 되듯, 아담은 흙을 빚어 예수 그리스도의 인영, 인문을 찍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었다. 이를 가리켜 창세기는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이 때 “사람(hāʾāḏām)”이라 번역한 ‘그 아담(the adam)’은 “남자와 여자” 둘 다를 가리키기에, 이 둘이 같이 예수의 “모형”이 됨을 기억해야 한다.
창세기 1장에서 이미 우리는 아담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다.
2. 하나님의 약속
전문을 기록하고 봉인해 공문서를 발송하지만 수신자가 그 내용을 올바로 수행되지 않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바벨론의 침공에 앞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바룩을 통해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루마리에 담아 유다 백성에게 전한 경우와 같다(렘36:4-8). 안타깝게도 그 두루마리는 당시 유다 왕 여호야김에 의해 칼로 베어지고 화로 불에 던져져 태워지고 말았다(23절). 그리하지 말라고 몇몇 신하들이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25절), 심지어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했다. 다행히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26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받들어야 할 왕에 의해 찢겨 불살라지고, 그 결과로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갈기 갈지 찢겨 그 성과 여호와의 성전이 불 살라진 채 약속의 땅을 떠나 포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와 맥락을 같이 하는 사건을 우리는 창세기 3장에서 본다 – 아담과 하와는 뱀의 말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고 그 결과로 그들은 에덴을 떠나 죄 가운데 광야의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포로로 떠나는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그들을 잡아가는 바벨론이 하나님의 벌을 받아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을 들려주셨었다(렘25:11-12). 이와 같이, 하나님은 에덴을 떠나는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뱀을 두고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듣게 하셨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3:15).
바벨론에게 심판이 임할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뱀에게도 심판을 내리시리라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의 심판이 유다 백성의 포로생활로부터 회복으로 이어지듯, 뱀의 심판은 인간의 죄에 포로된 삶으로부터의 구속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회복의 약속이 유다가 포로로 떠나기전에 주어져 그들과 함께 했듯이 구속의 약속 또한 에덴을 떠나기 전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졌으니, 결국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의 말씀은 창세기의 에덴에서 시작되어 늘 우리와 함께 했던 것이다.
3. 하나님의 규와 지팡이
약속의 말씀은 주어졌을 뿐 아니라 성취되었다.
예레미야를 통해 전달한 두루마리를 여호야김이 찢어 불사른 후에 하나님은 예레미야로 하여금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다시 기록하게 하셨다(렘36:28).
아무리 수신자가 봉니를 뜯어 없애고 두루마리를 찢어 불사른다 할지라도 그 원본이 발신자에게 있고 그 인장 또한 발신자의 손에 들려 있는 한 전달된 내용 자체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하겠는가. 만유의 주이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그가 곧 말씀의 근원이시고 그 인장이 하나님께 있기에 아무도, 아무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폐할 수 없고 그 기록된 뜻을 거스를 수 없다. 하나님은 포로된 유다를 회개케 해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셨고, 그 말씀은 성취되어 주전 516년에 성전을 예루살렘에 다시 짓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보여지듯, 하나님은 에덴을 떠나 죄에 포로된 삶을 사는 인간을 회개케 해 구원하시고자 하는 큰 뜻을 창세기 3:15에 밝히셨고, 이를 위해 하나님의 규와 지팡이를 유다 지파 가운데 두시겠다 말씀하셨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49:10).
이 약속의 말씀은 장차 유다 지파에서 출생할 다윗을 통해 구체적 “모형”이 되고, 그의 후손으로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마2:2).
다윗의 때로부터 천 년이 지나 동방의 박사들이 던전 이 질문은 인영이 가리키는 인장의 실체이신 그 분이 어디 탄생하셨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 – 그 분이 곧 그 실체이시며, 예수님의 나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말씀을 근원이심을 알게 하셨고, 그 약속을 따라 우리 가운데 세우신 왕을 우리는 구주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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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