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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땅 (19) - 야곱의 꿈

박성현 박사

 (고든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성경은 꿈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담고 있다. 이 때 꿈의 내용도 그렇지만, 꿈 이후 이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꿈과 그 뒤의 사건들 사이에 종종 계시와 성취의 관계가 관찰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야곱의 꿈을 소개하는 창세기 28장은 꿈과 그 다음 사건, 즉 야곱이 취한 행동 사이의 관계를 언어적으로 정밀하게 연결한 것이 눈에 띄는 본문이다. 물론 이런 언어적 연관성을 관찰하려면 원어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다.

먼저 꿈의 내용을 담은 본문을 보자: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창28:11-13)

그리고 그 다음 이어지는 야곱이 취한 행동에 관한 본문이다: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창 28:16-19)

이제 이 두 본문사이의 언어적 연관성을 여섯 개의 히브리어 표현을 가지고 살펴보도록 하자.

 

곳/거기/여기

 

야곱의 꿈과 그 다음 그가 취한 행동 사이의 관계를 언어적으로 연결하는 첫 히브리어 표현은 māqôm이다. 본문에서 “곳”, “거기”, “여기”로 번역된 이 단어의 사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야곱이 에서를 피해 길을 떠나 이른 한 “곳”(11절), 베개를 삼을 돌을 취한 “곳”(11절), 그리고는 잠이 든 “거기”(11절); 바로 “여기”(16절)에 여호와께서 계심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곳”(17절)은 야곱에게 두려움, 즉, 여호와에 대한 경외심을 깨닫게 해 주었고, 이로 말미암아 야곱은 그 “곳”(19절)을 벧엘이라 이름 짓게 되었다. 막연히 다다른 “한 곳”, 그 “곳”은 “거기”가 되고, 이제 야곱의 삶의 “여기”가 되어 하나님의 임재의 현장이 되어진다.

 

 

두 본문 사이의 관계를 언어적으로 연결하는 두번째 표현의 핵심은 eḇen, 즉 “돌”이다. 앞 본문에서 “돌”은 베고 자려고 취한 “한 돌”에 불과 했다.(11절) 그러나 잠을 깬 야곱은 베고 잔 “돌”을 다시 집는데, 이 때 정관사가 붙어 ‘그’ “돌”이 된다.(18절) 그리고 ‘그’ “돌”은 야곱의 예배의 초석이 된다.

 

베개/꼭대기/위

 

“베개”에도 머리가 있을까? 야곱의 꿈과 그 뒤에 그가 취한 행동 사이의 관계를 언어적으로 연결하는 또 다른 표현들은 ‘머리’의 뜻을 갖는 히브리어의 기본 명사 rōʾš에서 파생된 단어들이다. “베개”, “꼭대기”, “위”가 이해 해당된다. 애당초 야곱이 취했던 돌은 가로로 뉘어 “베개” 구실을 했다(11절). 그러나 꿈에서 그는 “꼭대기”가 하늘에 닿은, 즉 세로로 세워진 사닥다리를 보았고(12절), 꿈에서 깨자 “베개” 삼았던 돌을 일으켜 세로로 세우고 그 ‘머리’, 즉 “위”에 기름을 부었다(18절). 머리를 하늘로 향한 사닥다리는 야곱을 일으켜 하늘을 보게 했고, 그의 손은 “베개” 돌을 일으켜 세워 그 머리에 제사의 기름이 있게 했다.

 

서/서서/기둥

 

세로로 세워진 사닥다리를 가리켜 본문은 “땅 위에 서 있는데”라 묘사한다(12절). 원문에 충실히 번역하자면 ‘땅으로 뻗어 서 있는데’가 될 것이다. 즉, 땅에서 위로 세운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 준 사닥다리라는 의미다. 이 때 “서” 있다라고 번역한 동사의 어근은 nṣb다. 그리고 이 사닥다리에는 그 위에 “서서” 말씀하시는 여호와가 계시는데(13절), “서서” 역시 nṣb를 어근으로 한 동사의 형태다. 그리고 깨어난 야곱이 베개 삼았던 돌을 일으켜 세운 “기둥”(18절) 또한 nṣb에서 유래한 단어다. 이렇게 저자는 같은 어근의 명사와 동사를 함께 사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이들 사이의 연관성을 유추해 볼 수 있게끔 하는데, 이 때 명사 “기둥”은 문법적으로 “서”와 “서서” 두 동사 중 “서” 있음과 연결된다. 즉, 야곱은 사닥다리가 “서” 있듯 “기둥”을 세웠다는 뜻이다. 이렇게 저자는 문법적 기술을 통해 “기둥”이 여호와가 아닌 사닥다리를 가리킴을 분명히 하여 독자로 하여금 야곱의 예배에 우상적 요소가 없음을 분명히 알 수 있게 해 준다.

 

여호와, 하나님

 

꿈은 야곱으로 하여금 그가 만난 분이 “여호와”(YHWH)시며 그가 곧 “하나님”(ʾĕlōhîm)이심을 알게 해주었다.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거느리신 분이 “여호와”이심을 그는 꿈에서 보았던 것이다.(12절)

이 깨달음은 야곱이 잠에서 깨어 외친 고백에 잘 반영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16-17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심을 직접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3-15).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그리고 야곱이 그리도 원했던 장자의 복, 즉 아브라함에서 이삭에게로 이이진 약속의 말씀이 이제 그를 잠에서 깨웠을 때, 야곱은 기둥을 세워 기름을 붓고 서원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28:20-22)

이 서원의 핵심은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21절)에 있다. 하나님이 꿈에서 계시하신 그 언약의 약속을 받드는 삶을 사는 자가 되고자 한다는 서원. 

야곱의 꿈. 그 후에 일어난 사건은 예배였다. “한 곳”이 “여기”가 되고, “한 돌”이 ‘그’ “돌”이 되며,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그 날, 야곱은 꿈의 “베개”를 예배의 “기둥”으로 세워 이스라엘이 되어 가는 여정의 첫 걸음을 내 디뎠다.

spark4@gordonconwell.edu

10.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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