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터성경사역원 LA 지부장
하늘소망교회 담임
말라기 선지자 이후 신약이 시작될 때까지 400년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마치 창세기가 끝나고 출애굽기가 시작되기까지 430년 동안 침묵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400년 동안의 역사를 우리는 ‘신구약 중간사’라고 부릅니다. 40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신실하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계셨습니다. 즉,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하나님의 나라’를 계속해서 세워나가고 계셨습니다.
사실 말라기가 끝나는 지점(말4:5-6)과 신약의 시작(눅1:17)이 꼭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사를 몰라도 성경은 그 자체로 연결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간사를 공부하면 신약이 입체적으로 보여집니다. 신약의 배경이 되는 정치구조, 사회구조, 영적인 상황이 보여집니다. 특별히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신∙구약 중간기 400년을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70년 간 바벨론 땅에 살았습니다. 그 후 구약이 끝날 때는 바사(페르시아)의 통치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바사통치를 받은 총 기간은 약 200년입니다. 그러다가 BC 336년 경 그리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바사를 점령해서 약 30년 간 지배합니다. 그러다가 알렉산더는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던 중에 죽게 되고 알렉산더의 헬라제국은 그의 부하들에 의해서 분할 통치됩니다.
4개 왕조(프톨레미, 셀류코스, 카산드로스, 리시마쿠스)로 분할된 헬라제국의 후예들 중에서 유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왕조는 프톨레미와 셀류코스입니다. 유대는 프톨레미와 셀류코스의 접경지역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프톨레미의 지배를 받다가 후에는 셀류코스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프톨레미는 이집트 지역을 점령하면서 프톨레미 왕조를 세우고 약 100년 정도 유대를 지배합니다. 프톨레미 2세는 히브리어로 되어있던 구약을 약 70명의 유대랍비들을 동원하여 당시 세계 공용어였던 헬라어로 번역을 합니다. 이것을 ‘셉투아진트’ 즉 ‘70인경’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프톨레미의 지배를 받던 유대는 BC 198년에 셀류코스의 왕 안티오쿠스 3세가 점령하게 됩니다.
셀류코스 왕조는 옛 바벨론 제국의 영토였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차지하고 셀류코스 왕조를 세웠습니다. 특히 셀류코스의 안티오쿠스 4세는 자신을 신격화하여 ‘에피파네스’라는 이름을 스스로 부여합니다.
이때 유대인들은 안티오쿠스 4세의 신격화에 강하게 반발하고 엄청난 박해를 받게 됩니다. 안티오쿠스 4세는 매일의 제사를 폐지하고, 성전의 제단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율법서를 불태우고,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할례를 금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단에 돼지의 피를 뿌리며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이러한 핍박 속에서 유대공동체는 더욱 강하게 저항을 하며 하시딤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시딤 운동은 믿음과 신앙을 끝까지 지키며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대각성 운동이었습니다. 이 하시딤 운동을 통제하기 위해서 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했습니다. 유대공동체를 통제하기 위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안티오쿠스 4세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사람을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합니다. 이 때부터 대제사장직의 매매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시딤 운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한 후 전투적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마카비 혁명입니다. 그 혁명을 이끈 사람이 마카비인데, ‘쇠망치’라는 뜻의 맛다디아의 셋째 아들 유다의 별명입니다. 그가 이끄는 혁명군은 안티오쿠스 4세의 정규군과의 투쟁에서 승리합니다. 이 승리로 유대는 독립하게 되었고 마카비의 가문인 하스몬 가문이 약 100년 동안 유대를 다스리게 됩니다. 이 승리로 인하여 발생된 절기가 재건, 봉헌이라는 뜻의 하누카(Hanukkah)라고 부르는 ‘수전절(修殿節)’입니다.
하스몬 왕조는 그 세력을 넓혀 요한 힐카누스 때에는 에돔(이두메)까지 정복을 했고, 이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서 헤롯가문의 안티파스를 총독으로 세우게 됩니다. 이 사람이 누군가하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헤롯(대헤롯)의 할아버지입니다.
이야기가 좀 복잡해지죠?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예수님 당시에 유대를 헤롯이 다스리고 있었고 특히 대헤롯은 예수님 출생 당시에 영아살해 명령을 했던 장본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이렇게 상황이 역전된 것일까요? 이것은 로마제국과 관련이 있습니다.
로마제국은 처음에는 작은 도시국가로 시작하여 원로원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공화정치를 표방한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그 힘이 점점 커져서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때 폼페이우스라는 장군이 헬라의 셀류코스 왕조를 무너뜨리고 다메섹을 정복했습니다. 하스몬 왕조의 영토까지 침략해온 상황입니다. 바로 이 순간 헤롯가문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폼페이우스를 도와서 유대를 공격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로마와 로마를 등에 업은 헤롯 가문이 유대의 통치자가 됩니다.
폼페이우스는 유대 지역의 통치권을 헤롯가문에게 주었을 때, 로마 본국의 상황은 원로원의 부패 때문에 삼두정치가 시작됩니다. 즉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율리어스 시저가 로마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러나 크라스스가 파르티아 원정 전쟁에서 전사하면서 삼두정치의 균형이 깨지고, 폼페이우스와 율리어스 시저의 권력투쟁이 시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폼페이우스는 전사하고 율리어스 시저가 패권을 잡게 되지만, 율리어스 시저는 자신의 부하인 부루터스에 의해 암살당합니다. 시저가 죽은 후 로마의 힘은 시저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와 시저의 신하 안토니우스 두 사람이 나눠 갖습니다. 그러나 그 둘 역시 패권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합니다.
결국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물리치고 로마의 대권을 차지하고 최초의 황제가 됩니다. 이 사람이 눅2:1에 등장하여 천하에 영을 내려 다 호적하라고 명령한 ‘아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옥타비아누스 당시 태어나셨고, 호적 명령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도 고향 베들레헴으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이제 구약이 끝난 후 신약이 시작되기 전에 있었던 400년의 중간사가 신약에 딱 붙여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서에서 느부갓네살의 신상 꿈을 통하여 예언하셨던 것처럼 세계사를 움직이고 계셨던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세계사의 주인이심이 중간사를 통해서도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구약에서는 없었지만 신약에 나타나는 직책들과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헤롯, 유대왕, 분봉왕, 열심당 등 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언제, 또 어떻게 생겼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중간사를 배경으로 생겨난 이 사람들에 대해서 공부하면 신약이 입체적인 3D로 보여지고 읽혀질 것입니다.
08.03.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