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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사량도의 외진 곳 외지마을을 섬기며 류동하 목사 (외지교회)

60세에 시작한 섬마을 사역, 모든 주민의 100% 복음화를 꿈꾸다

▲사량도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요? 모든 기존 사역을 뒤로하고, 사량도에서 다시 사역을 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저희의 선교지는 경남 통영시 사량면 외지마을에 있는 

"외지교회"입니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35분 정도 항해하면 사량도에 도착하게 됩니다. 사량도는 두 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어 윗섬, 아랫섬으로 나뉘어 있고, 배로 왕래하다가, 7년 전에 대교가 건설되었고, 이제 하나의 섬으로서 차로 교통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상수도 시설이 진주의 남강으로부터 파이프로 연결되어 공급되고 있으며 하수도 시설이 최신식으로 잘 되어 있습니다. 그 외 모든 시설이 개선되어 낙후된 섬이라기보다는 정착하고 생활함에 부족함이 없는 섬이었습니다. 그러나 개발이 잘 되었고, 관광명소로서도 알려졌지만, 이곳 분들은 여전히 도움이 필요하고, 영적으로 목마름이 많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처음 사량도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2017년에 제가 60세가 넘어서게 되면서 낙도 섬과 같이 외진 곳에 가서 선교하다가 노후를 마무리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셔서 낙도 선교에 대한 꿈을 가지고 기도하던 중 연결되었던 곳이 바로 사량도 외지교회였습니다, 당시 제가 담임목회를 11년 하던 대구수산교회 담임목사를 사임하고, 60대 초반에 사량도 사역을 하기 위하여 섬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그 후 지금까지 5년여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남은 은퇴 전까지의 시간을 보내며 선교사역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부임하기 전에 담임목사님이셨던 정종규 목사님은 늦게 신학을 하시고, 낙도 선교의 비전을 안고 가장 어려운 곳에서 사역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고, 그 기도 응답으로 연결된 곳이 사량도였다고 합니다. 처음 이곳에 도착하셨을 때 교회의 형편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교회 교인들은 거의 다 떠났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 교회 건물만 흉물처럼 남아있는 형편이었답니다. 이러한 교회를 다시 짓고, 흩어졌던 성도들을 모아서 교회의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했던 것이죠. 연세가 총회가 정 만70세가 되셔서 은퇴해야 하는데 마을 분들이 목사님을 통해 받은 영향력이 컸고, 헌신적인 사역을 통해 감동하신 마을 분들이 탄원서를 내서 이 목사님을 우리 마을에 더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마을 분들의 간절한 요청 후 사모님이 신학을 하시며 섬기셨지만, 이제는 사모님도 은퇴할 나이가 되어 후임자를 찾던 중 저희에게 연락이 닿게 된 것입니다. 그런 교회에서 목양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앞에 섬기셨던 목사님 부부의 헌신적인 모습은 저희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60대 후반에 신학을 하시고 낙도 선교를 위해서 헌신하신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도시목회만 하고 있었던 저희로서는 그 섬김과 헌신을 존경하게 되었고 이분들과 같이 이 교회를 더욱 헌신함으로 섬겨야겠다는 결심으로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량도 외지마을에서 사역을 새롭게 시작하시면서 가지신 비전과 목표는 무엇이었나요?

 

사량도 내에서 외지마을은 외지다는 뜻의 지명과 같이 외지고, 작은 마을입니다. 총 305가구 정도 되는 그런 작은 마을인데 믿지 않는 마을주민들이 다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출석을 잘하고 계시는 성도님들을 잘 보살펴서 더욱 믿음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는 바로 모든 마을 분들을 전도해서 예수 믿게 하는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에 최대한 복음을 증거하고, 예수 믿게 하여 섬의 모든 주민들이 100% 예수 믿고 구원받는 섬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리나라의 섬 중에 신안 증도는 100% 예수 믿는 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령도 역시 섬 중에 기독교 인구가 90% 이상 됩니다. 증도와 백령도와 같이 사량도 외지마을도 100% 예수 믿는 섬이 되기를 꿈꾸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연세 드신 분들만 많이 남아서 평균 연령이 83세입니다. 연세는 많은데 육체노동이 많아서 온몸이 쑤시고 아프신 형편임에도 눈만 뜨면 일하는 분들입니다. 주로 밭농사를 하며 특산물로 마늘과 시금치가 유명한 곳입니다. 어부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연세가 많고 힘드셔서 어업을 못하십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시는 마을 주민들 중 아직 교회에 출석하시지 않으시는 분들의 경우 마음이 많이 닫혀서 믿기 힘드신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 마음으로 다가가 삶을 통해 관계를 맺고, 전도해서 예수 믿고 구원받으시기를 바라며 기도와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선교사역을 하시면서 가장 큰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큰 어려운 점은 바로 이 섬에 남아있는 무속신앙들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바다로 배 타고 어업을 나가시는 일들이 많다 보니 바다에 나가기 전 풍랑이 불지 않고, 많은 수확과 함께 무사 귀환하게 해달라고, 무당을 불러서 2박 3일에 걸쳐 고사를 지내기도 하고, 사당에서 빌고, 집에서 빌고 하는 일들이 지배적인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여전히 지금도 그러한 전통과 관습이 남아있습니다. 모든 주민의 정신세계에 이런 부분들이 남아있어서 실제로 복음을 전하여 전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고 영적 싸움이 끊이지 않는 그런 형편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까지 주민들의 삶은 이처럼 무속신앙에 기대온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일하는 시간 외에는 술과 고스톱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는 부분도 교회 생활을 시작하는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또한,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대부분 같은 성씨를 가진 씨족 중심의 사회이기에 교회를 나가는 것에 대하여 눈치 봐야 되는 그러한 점도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또한, 문맹률이 높아 글을 읽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말로 대부분 소통하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교회에 나오게 되면 성경도 읽고, 등록도 하는 과정에서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므로 교회 출석을 꺼리게 되는 경향이 많은 부분도 전도에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지난 5년 간 사역을 통해 맺은 열매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전도하기 쉽지 않은 형편이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마을주민 분들을 위하여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시간 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말로 전할 때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던 분들이었지만 갑자기 몸이 심하게 아파서 사경을 헤매는 상황까지 갔다가 이제 내가 회복되면 꼭 교회에 나가겠다고 하여 출석하게 되신 분이 계셨습니다. 또한, 글을 읽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한글을 배우시고자 하는 분들에게 한글 수업을 하여서 그분들이 기도문을 직접 작성해 대표기도를 하셨다는 소식이 마을주민들에게 알려지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계기로 전도의 문이 열리고, 장벽이 낮아져 가는 것 같습니다. 현재는 전도율이 60%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앞으로 남은 기간에 기도하며 전도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앞으로의 선교사역을 위한 기도 제목을 묻자, △ 교회 존재 이유인 복음전파와 영혼 구원을 위하여 △ 육체적으로 몸이 불편하신 분들의 건강을 위하여 △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 하나님의 강  권적인 역사와 영적 대각성이 일어나도록 △ 외부 강사와 청년 봉사, 선교 등 다양한 경로로 사역의 기회가 제공되기를 위하여 기도를 부탁했다. 

류동하 목사의 외지교회 사역에 관한 자세한 문의는 hahaha@hanmail.net, 055-649-8042로 하면 된다. 

<김재상 기자>

07.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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