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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 현장 경험, 상담학 강의에 큰 도움

월드미션대학교 김민지 교수

한인 이민의 역사가 120년을 향해 가고 있다. 이민자의 삶은 외로움과 함께하는 삶이며 타인종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 그리고 세대 간의 차이로 인해 많은 수많은 갈등을 만나게 되고 급기야는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도 한다. 이민생활에서 오는 각종 정신적인 어려움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를 위해 한인가정상담소, LA정신건강국, 디디허쉬정신건강서비스 자살예방센터 등의 기관들이 한인들의 정신건강에 대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안하고 다가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인들의 정신건강 문제는 비단 이러한 기관들만의 문제는 아니며 초기이민의 역사와 함께했던 한인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한인 신학교들이 기독교상담학과 혹은 상담심리학과를 개설하고 한인커뮤니티에서 활동하게 되는 상담사를 양성하고 있다.

 

한인기독상담소 운영으로 학업성취도 높아질 것 기대

 

월드미션대학교(WMU)의 기독교상담학과의 김민지 교수는 "미국 내에 가장 필요한 분야중 하나라면 상담이라 생각한다. 한인들과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는 교회의 경우 상담분야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며 특별히 신학교에서의 기독교상담학은 교인들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줄 수 있을 것" 이라 말했다.

지난 1월 본교 기독교상담학과 교수로 부임하고 가을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하게 되는 김민지 교수는 “줌을 통해 학생들과 첫 번째 만남에 자기소개 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처음에는 소개만 하는 걸로 충분한 시간이 될까? 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막상 소개의 시간은 예상을 뛰어넘어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공부했고 사역현장에서 겪었던 이야기들이 학생들에게 매우 흥미롭게 다가가는 것을 느끼게 됐답니다.”

김민지 교수는 WMU에 부임하기 전 장애인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아시안재활서비스(ARS, Asian Rehabilitation Service)에서 근무했다.

“바이올라대학교에서 상담학학사를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하기 전에 상담관련 경험을 하고 싶어서 이력서를 몇 군데 업체에 넣었습니다. 감사하게도 ARS에 취업이 됐어요. ARS는 100% 정부에서 펀드를 받고 있는 비영리단체인데 그곳에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케이스 메니징을 하면서 현장에서의 상담에 대해 많은 배움을 얻었어요.”

현재 10년 넘게 ARS에서 일을 하고 있는 그는 필드에서의 경험이 WMU에서 만나게 되는 학우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칼스테이트LA에서 상담학석사과정을 마치고 준임상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현재 임상상담사(LPCC, Licensed Professional Clinical Counselor) 자격증 취득을 준비 중인 김 교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 그 자체라고 고백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해 UC리버사이드로 ESL을 공부하러 왔었어요. 한학기만에 ESL을 마치고 가을학기부터 바이올라에서 상담학을 배우게 되고 그때부터 석사학위를 취득할 때까지 치열하게 공부했던 거 같아요. 특별히 ARS에서 근무를 하면서 더 많이 바빠졌거든요. 석사과정의 마지막 1년반은 인턴십을 병행해야 했는데 하루 4시간 정도만 잠을 잤을 정도로 바쁘게 지내야 했었습니다. 마치 고3 수험생 같았어요.”

김민지 교수의 삶의 이력 중에는 신체장애를 만난 것이 있다. 17세 고등학생 시절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장애를 입은 김민지 교수는 하루아침에 모든 게 변해버렸지만 다시 건강하게 삶을 살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밝고 낙천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사한 것은 머리를 크게 다쳤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었던 것과 3일간의 기억이 사라진 것 외엔 뇌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자신은 하반신을 사고가 당하기 전처럼 사용할 수 없는 거 외에는 변한 것은 없는데 주변의 시각이 모든 것을 해줘야 하는 어린이로 대해진다는 것이었다.

“당시 사회적 통념이 장애하면 모든 것이 상실된 것으로 여겨졌었죠. 그래서 그런지 그냥 모든 걸 다 해줘야 하는 아이가 되어버렸어요. 뭐랄까 0으로 돌아간 것 같았죠. 제가 학교에서 철봉에 매달리기와 오래달리기를 가장 잘했거든요. 반에서 1등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사고이후 자유롭게 걷는 것도 뛰는 것도 못하게 됐어요. 그것 외에는 다 할 수 있는데 그거마저도 해주려고 하는 것이었어요. 진로도 바꿔야 했고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답니다.”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은 노래하는 것이 좋아서 성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장애를 입은 상태에서 무대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더 이상 노래를 하지 못하게 됐다고. 아마도 지금 같았다면 계속 노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김 교수는 자신의 꿈을 위해 미국유학의 길을 택했고 현재 그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 그가 하고 싶은 또 다른 분야는 심리학 공부였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서점에 가면 심리학 섹션에 가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WMU의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에 대해 김민지 교수는 재미있게 공부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학점신경 쓰느라 캠퍼스에서 즐겁게 공부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사실 직장에서 대학 다닐 때 학점 얼마 나왔는지 알려고 하지 않거든요. 그

그런데 한국 학생들에게는 학점이 B학점 이상이 나와도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게 되지요.”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장애 그리고 유학생활과 ARS라는 현장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풀어나간다면 학생들이 교과서 외 실제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WMU에 한인기독상담소가 운영되는 만큼 기독교상담학과에서의 이론적인 수업과 한인기독상담소를 통해 실제적인 사역들이 어우러지는 만큼 학생들이 학업성취도가 높아질 것이며 그렇게 될 수 있게 그들의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준호 기자>

07.3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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