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인예수장로회 총회장, 뉴욕센트럴교회 담임
새가족반에서 황선생을 만났다. 동료 교사가 인도하여 일생 처음으로 교회에 나온 새 교우였다. 그는 고등학교 물리 교사였다. 성격도 물리적으로 아주 반듯했고 매우 딱딱했다. 자신의 선행을 믿고 살았고 세상의 어떤 신도 인정하지 않는 불가지론자였다. 교실에서도 예수 믿는 학생들을 꽤나 골탕을 먹이곤 했다고 했다. 장교 출신으로 예비군 교관을 하면서도 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증명해 주는 사람은 훈련을 제외시켜 주겠다고 큰소리치던 철저한 불가지론자였다. 그러다가도 교회에 한 번 나가볼까 하는 맘이 때때로 있었지만, 비이성적인 분야에 자신의 정체성을 무책임하게 포기한다는 괴변스런 자기 철학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자신의 삶에 결정적인 문제나 사고가 있지는 않았지만, 결혼생활과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내와도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고 매사에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딱히 이것이 문제라고 끄집어낼 만한 것이 없었는데도 황선생은 재미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워낙 성품이 꼬장꼬장해서 술 담배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자신의 수양과 선행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살았는데 재미가 없다고 했다. 무신론을 주장해도 조상으로부터 받아온 유교의 가르침도 전혀 유익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동료 교사로부터 교회에 가보자는 제안을 받고 새 가족 성경 공부반에까지 오게 되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는 성경의 맨 첫 장 첫 구절을 읽는 순간, 황선생은 완전히 굴복하고 말았다. 무슨 이론의 힘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타당한 학설도 아니다. 오직 일방적인 하나님의 당당하게 선포 앞에서 만물의 창조주의 압도하는 선언에 일방적으로 압도당하고 말았다.
태초에 만물의 기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포 앞에서 황선생은 자신이 눈에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듯한 먼지 같은 자신의 무가치함 깨닫게 되었다. 평생 걸어온 자신의 절대 존재 의식조차도 허무맹랑하게 소낙비에 흘러내린 모래성 같이 공허하게 무너져 버렸다. 철저하게 무로 되돌려 놓았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정신 세계와 자아의 가치가 대지진으로 벌어진 끊임없는 심연 속으로 함몰되어 버렸다고 술회했다.
익사 직전의 조난자가 무의식 본능으로 구조원의 옷자락을 초월적인 힘을 다해 붙잡듯이 자신의 손에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인 성경책이 떠나지 않고 한 장 한 장 책갈피를 넘기고 있었다고 한다. 시간 존재조차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순식간에 성경을 읽기 시작했단다. 비이성적인 신비의 초월적인 사건들이 절대 수긍의 사건으로 믿어지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웠다. 자신을 몇 번씩 꼬집어도 보았다고 했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면밀히 감찰도 해봤지만 겉 모습은 변함이 없었는데 자신의 속사람은 새로운 점령군이 새로운 군주로 통치하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했다.
결정적인 변화는 새 가족반에서 예수의 부활은 진실인가? 를 다룰 때였다. 황선생은 마치 의식 없는 석고 인간이 되어 앉아 있었다.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가 살아났다고… 복음의 폭탄에 직격탄을 맞았다. 자신의 전공인 물리 화학의 에너지 보존 법칙을 잊어버리고, 생명의 부활 원리와 연결하지 못한채로 살아왔던 과거가 새롭게 변화되는 현재를 만났다…
인류 최대의 사기극으로 치부해 왔던 예수 부활이라는 무제한급의 생명의 폭탄이 황선생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영혼의 세계를 폭발해 버렸던 것이다. 결정적인 항복은? 자신의 전공인 물리 화학의 에너지 보존 제 1 법칙인 ‘질량의 불변법칙’ 을 떠올리면서 황선생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고 했다.
황선생은 떨리는 입술로 이렇게 고백했다. ‘목사님! 세상에 가장 미련한 놈이 여기 있습니다. 내 전공 내 학문에서 부활을 증거하고 있었는데 여태 그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목사가 잘 알아들 수 없는 물리 화학의 전문 용어들을 줄줄히 속사포로 쏘듯이 얘기하기를 시작했다. 맞습니다! ‘질량의 불변법칙’은 어떤 변형 속에서도 그 물체가 가지고 있는 질과 양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질과 양을 가지고 최적의 상태만 다시 만들면 얼마든지 재생이 가능합니다. 아! 아! 이것이 부활의 근거이군요! 이런 세상에…. 이런 세상에… 왜 내가 여태까지 이걸 모르고 살았을까?…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신명나게 들떠 있었던 황선생의 부활절을 나는 지금까지 40년이 지났는데도 잊지 못한다.
“그는(예수)…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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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