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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받을 수 없는 사랑

손기성 목사 (은혜장로교회)

요즘 우리 집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결혼하고 처음 접하는 생소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 하나는 집안 벽에 타일식의 액자를 걸어 두는 일이였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며 자주 심방 할 일이 생겨 가정을 방문하는 일이 있습니다. 어느 가정을 가든지 벽면이나 가장 보기 편한 곳에 액자로 가족사진이나 혹은 성구나 그림들이 걸려있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그런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 아내가 원치 않는 듯합니다. 그냥 제 생각으로는 넉넉치 않은 전도사 생활비로 집안을 꾸리다 보니 아마도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사는 게 좋다는 생각으로 산 것이 생활 방식이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암튼 결혼 수십년이 지나도록 집안 벽 어느 곳에도 사진이나 그림 액자를 걸지 않았습니다. 

저희 집을 방문해 본 분들은 ‘무슨 병원에 온 것 같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하도 적적하여 몇 년 전에는 선물로 받은 성구 액자를 하나 힘들게 걸어 두었습니다. 그러던 우리 집에, 그것도 계단 벽면에 사진 액자가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34년 결혼 생활 만에 안사람이 직접 벽에 액자를 거는 것은 처음 봅니다. 그런 변화를 가져온 힘이 뭔 줄 아십니까? 바로 딸아이가 보내준 손주사진과 자신이 유아적에 오빠와 함께 누워 잠자던 모습이 담긴 사진을 크게 타일식으로 액자를 만들어 보내준 것입니다. 처음에는 “뭐 이런 걸 만들어 보내느냐”고 볼멘 소릴 하더니, 아들이 “이거 벽에 걸어야지”라고 하니 “자리를 찾아보라”며 직접 들고 가서 하나씩 걸기 시작합니다. 옆에서 보는 것 만도 너무 재미났습니다. ‘사람이 이렇게도 변하는 구나.’ 그뿐 아닙니다. 아내는 제 앞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매일 매일 안사람의 노래 소리를 들은 때가 있었습니다. 

지난 몇 개월 딸이 아이를 낳고 집에 왔을 때 안사람은 매일 수시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불렀던 걸 또 부르고 안 부른 노래들을 찾아가며 불렀습니다. 찬송가뿐 아닙니다. 어릴 적 어디서 배웠는지 저도 알지 못하는 노래들까지 등장했습니다. 

무엇이 수 십년을 지켜오고 생경하기까지 한 행동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게 만들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손주 아이 때문입니다. 

우리 어른들 말에 사랑은 내리 사랑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철들기 전엔 잘 모릅니다. 입으로만 알 것 같다 해도 사실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느껴지니 이제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들이 이미 나보다 더 잘살고,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이 내리 사랑 때문에 자신의 위치와 자리마저 내려 놓고 이 땅으로 날 찾아오셨습니다. 내리 사랑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리 사랑의 근간은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내리 사랑은 항상 낮은 곳을 향해 흐릅니다. 내리 사랑은 약한 곳을 향해 흐릅니다. 내리 사랑은 반드시 다시 돌려주어야 할 사랑입니다. 내리 사랑을 피해갈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내리 사랑은 내가 받은 사랑 중에 가장 큰 돌려줄 수 없는 사랑입니다.  이 돌려드릴 수 없는 사랑이 날 살게 하고, 살 맛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셨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로 말미암아 살게 하신 것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이니라”(요일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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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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