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며 삶의 지혜다. 역사는 시대의 산물이며 미래의 발전적 성장을 위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징검다리기도 하다. 그리고 교회사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를 탐구하면서 인간을 위해 무조건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섭리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역사서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사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종교개혁이 500주년을 맞이한다. 루터로부터 촉발된 종교개혁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Back to the Scripture)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는 늘 새롭게 개혁(Reformation)돼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경을 강의하던 루터는 중세 가톨릭의 부패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성찰을 95개의 조항으로 담아 게시했다. 그의 의도는 일개 학자로서 자성을 촉구하는 것에 불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앞선 두 가지 혁명, 즉 구텐베르크로 말미암은 인쇄혁명과 르네상스로 인한 교양혁명으로 인해 그 짧은 팸플릿은 온 유럽에 혁명의 메시지로서 확산됐다. 애초에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돈으로 용서를 사는 면죄부를 질책하던 루터는, 나아가 사제중심에서 만인사제직으로 전환할 것을 선언했다. 종교선택의 자유가 없던 유럽인들로 하여금 스스로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종교적 주체로 거듭날 것을 주장한 것이다. 결국 프로테스탄트 개혁운동은 신자들의 영성생활을 활성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고 말씀을 실천하도록 하는 데 많은 결실을 가져왔다. 따라서 역사학자들은 종교개혁이 중세 카톨릭이 독점하고 있었던 교회사를 온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4가지 차원에서 변화를 줬다고 분석한다(Four Ways the Reformation Changed Church History).]
1. 종교개혁은 가톨릭 엘리트 성직자들이 독점했던 예배를 만인에게 개방했다. 교회역사상 가장 큰 예배의 위기는 중세에 발생했으며, 종교개혁은 이러한 예배를 회복한 운동이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교회개혁이며 예배개혁이었다. 당시 로마가톨릭에서 드려지는 모든 예배는 라틴어로 드려졌기에 예배에 참석하는 신자들 역시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무지할 수밖에 없었고, 다만 사제들이 인도하는 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예배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19세기 초까지 계속 됐으며, 가톨릭 내부의 전례개혁운동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라틴어와 더불어 각 나라 언어 사용을 허용했다.
한마디로, 중세 예배는 라틴어를 모르는 신자들이 늘어나 사제들만이 라틴어로 미사를 드리고 신자들은 관객처럼 돼가고 제단이 높아지고 멀어졌으며 난간이 생겨서 신자들은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런 비극이 몇 백 년이 지나는 동안 제대로 항변하거나 잘못을 아는 자도 없었다. 마틴 루터는 이처럼 기존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폐쇄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성경을 통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접촉과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기 시작했다. 또 라틴어로 돼있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 대중화에 기여했는데, 이러한 개혁 운동은 마틴 루터가 시편과 로마서를 강의하던 중에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재발견함으로써 시작됐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루터가 추구했던 예배 개혁의 모습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독일 미사와 예배 순서’(Deudsche Messe und ordnung Gottisdinsts, 1526)에서 예배 개혁의 5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회중이 구경만 하던 자리에서 적극적 참여자로 자유롭게 해주었다. 둘째, 예배에서 설교를 포기할 수 없는 확고한 구성 요소로 만들었다. 셋째, 예배의 제물로의 제사 행위의 개념은 미사에서 멀리했다. 예수님의 성찬 제정의 말씀만을 원칙으로 삼았다.
전에는 침묵 속에서 기도만 행했으나 이제는 성찬 제정의 말씀을 낭독함으로 성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도록 했다. 넷째, 성찬은 떡과 잔에 의해 이뤄지도록 했다. 다섯째, 예배는 자국어가 사용되도록 했다.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얻고 구원에 이른다고 역설했고 그러한 믿음은 들음으로부터 나온다는 성경의 구절을 강조했다. 따라서 예배에서의 중심은 말씀을 들음으로써 믿음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 됐다.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 되게 했는데, 중세 가톨릭의 미사를 보는 시각적 예배에서 청각적 예배로의 전환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칼빈 역시 1544년 로마제국회의에 제출한 “교회 개혁의 필요성” 제하의 변증서에서 그가 왜 교회개혁에 참여하게 됐는지를 분명히 설명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너무나도 많은 잘못된 의견들에 의해 손상됐고 너무나 많은 불경하고 부정한 미신들로 왜곡됨에 따라, 하나님의 거룩한 위엄이 흉악한 오만무례로 모욕당하고 그의 거룩한 이름이 더럽혀졌으며 그의 영광이 발아래 짓밟히고 있다. 오호라, 모든 기독교 세계는 공개적으로 우상숭배에 의해 오염됐고, 사람들은 그 대신 자기들의 허구를 숭배하고 있다. 수천의 미신들이 지배하고 있다!” 칼빈은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인데, 예배가 타락하고 오염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한다는 단순하고도 명백한 원리에 따라 예배의 회복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 회복에 그의 생명을 걸었다.
2. 만인제사장에 대한 성경적 해석 전개와 시도 만인제사장(Priesthood of all believers)이란 신자는 누구나 그리스도를 고백할 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인간 중보자 없이(without requiring a human mediator) 거룩한 성도이며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말한다. 신학적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께 직접 예배하고 교통할 수 있다는 기독교의 교리로, 한마디로, 중세시대의 성직자 계급을 거부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장 4-8절에 따르면 사제들만이 제사장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제사장이다. 이 교리를 따르는 서방교회의 여러 제도와 성례는 급변했다. 오직 성직자만이 제사장이 아니라 성찬과 예배의 사역자(루터의 표현 minister)가 됐고, 성례인 성찬식에서 모든 성도가 16세기까지 제한됐던 떡과 포도주를 함께 마시게 됐고, 제한됐던 찬송도 모든 성도들이 함께 부르는 찬송으로 변화했으며, 성찬시 성직자가 신자들을 바라보는 소통의 성찬식으로 변화했다.
이는 성도의 평등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누구나 성직자가 될 수 있으며, 성직자인 목사는 죄를 사하는 구약성경의 제사장적인 절대적 계급이 아니라 성직 그 자체로 예배를 인도하며 성례전을 책임지는 자로 변화했다. 성직자 즉 개신교 목사는 죄를 사하고,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으로서가 아니라 전통적 기독교 교회의 5가지 요소(예배, 친교, 교육, 선포, 봉사)를 책임지고, 신앙을 가르치고 수호하는 이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구교의 교종(교황)과 성인과 마리아의 절대성과 중개는 부정된다. 그러나 만인제사장설이 성직자든 성도든 아무나 성찬을 행하고 세례를 베풀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마틴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은 당시 로마가톨릭교회가 성직자가 하는 일은 성직으로, 신자가 하는 일은 세속적인 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반대하는 것이었다. 만인제사장설은 성직자와 성도의 역할에 구별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역할에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일은 성직자가 하는 일인 설교, 성례전, 예배 집례 등의 목회만이 아니라, 성도들이 종사하는 그들의 올바른 직업들도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일이라는 뜻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성직자이든, 일반 신자이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그들의 직업에 의해 거룩한 하나님의 일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3. 성례전의 회복 중세의 예배에 대한 신학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의 반복 혹은 재현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로마가톨릭 미사에서는 성찬 성례전을 미사의 절대적인 구심점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이러한 가톨릭교회의 예배신학에 종교개혁가들은 기독교 예배는 원래부터 말씀의 예전과 성찬 예전이 두 축이 돼있었기에 모두가 동의를 하지 않았다. 특별히 가톨릭교회가 지켜온 화체설이 집중적으로 비판을 받았다. 이것은 봉헌된 성물(Bread and Cup)을 앞에 두고 성령임재를 위한 기도(Epiclesis)를 드리면 성물이 거룩한 변화를 일으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교리다. 그 당시 화체설의 영향을 받은 교인들은 성찬을 받는 사람들의 믿음이 없이도 집례한 성물을 보기만 해도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결국 루터에 이어 칼빈과 쯔빙글리, 요한웨슬리와 같은 종교 개혁가들은 가톨릭교회 안의 균형을 잃어버린 예전의 회복을 위해 말씀선포에 무게를 두고 성찬에 있어서 성체공재설(Consubstantiation), 영적임재설(Spiritual presence)을 가르치고 회중중심의 교회를 세우게 된다. 특별히 우리가 먹는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님의 몸과 피라고 믿는 가톨릭의 화체설과는 비교적으로 마틴 루터는 천주교교리에 대해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며 예수님의 육체가 빵 속에 있고 예수님의 피가 포도주 속에 있는 것이지 빵과 포도주가 변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후에 쯔빙글리와 요한 웨슬리는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임재 하는 것이지 빵과 포도주의 본체가 변화된 것이 아니라는 영적임재설(Spiritual Presence)을 믿게 된다. 요한 웨슬리는 성찬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죄를 거부하고 그의 형상대로 우리의 영혼을 재생시키도록 돕기 위해 그의 은총을 보내주는 방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개혁자들은 말씀의 선포인 설교의 위치를 초대교회부터 가지고 있던 본래 위치로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씀회복을 위해 성경이 라틴어로만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돼야 하고 설교가 회중들의 언어로 전달돼야 함을 강조하고 실천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예전의식과 제도에 신학을 반영함으로 종교개혁이후 예전의식과 더불어 예배당양식에도 변화가 오게 된다. 특별히 개신교 예배당에서는 강단이 중심에 위치하게 됐고 성찬대는 그 밑에 두게 된다. 즉 의식 중심에서 말씀중심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4. 다양성 안에서 일치 추구, 복음으로! 무엇이 교회를 일치되게 만드는가? 그것은 구조가 아니라 복음이다. 그것은 전통과 심지어 죽은 교리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복음이다. 그것은 로마가톨릭교회로 하여금 이미 하나됨 속에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개신교로 하여금 존재하고 있는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보일 수 있는 역량을 갖도록 북돋운다. 교회 개혁의 핵심 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를 되찾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일치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교회 일치의 중요성은 그것이 모든 인류를 포함하는 하나님나라의 미래 친교, 즉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 새롭게 된 인류를 나타냄을 의미한다.
울프하르트 판넨베르그(Wolfhart Pannenberg)는 “기독교 에큐메니컬 운동은 다른 종교와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세속사회(정치 세계) 안에서도 다양성과 일치의 양립 가능성을 위한 모델을 동 시대에 만들어내지 않으면 이 미션을 성취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더 나아가 “만약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다원주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성공했다면, 그들은 정치적인 삶에도 유효할 수 있는 다원주의와 광의의 도덕적 일치가 결합된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교회는 하나의 하나님 아래에서 모든 사람들이 일치에 이르게 하는 하나의 표시이기 때문에, 교회의 분열과 타락은 예수 말씀의 진리를 가리는 것이다. 루터의 삶은 절대로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예배 안에서 그리고 이웃에 대한 봉사에서 기독교인들을 일치시키는 복음을 설명하고 있다. 현대 교회는 개혁의 유산과 함께 용감하고 겸손하게 개혁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