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신 애 박사 (시카고 트리니티크리스천칼리지 교수)
지난 이야기에서는 미국 교육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미국 교육의 실패를 가져온 원인을 “기독교 색채를 배제한 공립학교의 등장과 공교육제도의 확립”이라는 말과 그 안에 내재된 교육 철학적 역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으며, 해당 교육 철학적 역동의 중심에는 존 듀이(John Dewey)의 인본주의적 교육철학인 실용주의 교육철학(Pragmatism) 혹은 진보주의 교육철학(Progressivism)이 있었음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미국 교육의 모습을 진단하고 대안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존 듀이의 교육철학 등장 배경 및 교육 철학의 내용, 또한 존 듀이 이후의 미국 교육계의 철학적 동향을 살펴보아야 하며, 이를 통해서 실패한 미국 교육의 문제에 대해 우리 한인 기독교교육이 어떠한 대안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오늘 이야기에서는 먼저 존 듀이의 실용주의적 교육철학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아우구스트 콩트(Auguste Comte)는 자연주의 철학(Naturalism)의 영향을 받아 모든 학문의 영역에서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위 “사회과학”의 태동을 견인했습니다. 이러한 콩트의 주장을 교육에 적용하여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초 즈음 교육을 사회과학적으로 해석하고 연구하고, 교육을 사회과학의 한 영역으로 편입시킨 사람이 바로 존 듀이(1859-1952; John Dewey)였습니다. 여기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자연주의 철학을 기반으로 하고 과학적 인본주의를 추구한 듀이의 교육철학에는 그 첫 발단부터 하나님에 대한 부분, 기독교적 신비에 관한 부분이 배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죄성을 부인하고 인간의 잠재성과 능력에 대한 무한 자긍, 무한 신뢰를 중심으로 그 교육관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이론적, 철학적 토대를 이미 가지고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교육철학은 잘 알려진 바와 실용주의(pragmatism)라고 불립니다. 실용주의는 미국 버전의 자연주의(Naturalism)라 할 수 있으며, 실용적인 것이 곧 진리라는 것이 그 골자입니다. 이를 중심으로 듀이는 교육에 있어서 하나님과 성경을 포함하여 자연현상으로, 자연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모든 것을 매우 열심히 거부했던 것입니다. 듀이의 교육철학은 또한 진보주의(Progressivism) 교육의 효시로서 진보주의 교육의 내용적 뼈대를 세웠습니다. 진보주의 교육은 학생들의 학습적 능력에 대한 무한 긍정 및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연적, 경험적 학습방법을 강조하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이론입니다. 이를 중심으로 듀이의 교육철학은 성경적 인간이해와 상치된 인간이해를 전개하였는데, 이는 학생들의 도덕성 훈련 및 기본적 학습력을 길러내는 것을 담보할 수 없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듀이의 교육이론이 소개되었을 때는, 기독교 국가라고 불리는 미국사회였지만 일부의 기독교 교회들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20세기 중엽(1944), 당시 시카고 대학(The University of Chicago)의 교수였던 듀이가 발의하고 진행했던 획기적인 프로젝트인 “시카고 대학 부설 실험실 학교(Laboratory School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프로젝트의 성공 때문이었던 듯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진보주의적 교육이론의 효과를 직접 학교를 운영하면서 증명해 보려고 한 시도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학생들을 교육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고자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전 교육현장에서는 학생들이 수동적인 관망자였다면, 진보주의 교육을 바탕으로 한 실험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를 학습과정에 능동적으로 관여하는 참여자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교육에서는 학생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에 집중하고, 학업 기술 및 내용을 협동 경험을 통해 얻도록 하는 프로젝트 수업들을 위주로 하고, 공동의 합의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결정을 하는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고, 또한 학교 밖 생활에서의 기능들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교육적으로 매우 훌륭해 보이는 이러한 학교는 오직 하나만, 시카고 대학의 실험실 안에서만 가능하지, 그 외의 세상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실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어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진보주의 교육에 잘 적응할 만한 학생들을 뽑아서, 소규모 학급에서, 매우 능력 있고 열정적인 교사들과, 학생대비 많은 교사 수와, 풍부한 교육 자원과, 좋은 시설과, 특별한 교육을 받고 있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자긍심까지,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진행된 교육이 성공적이지 못하다면 그것이 이상할 만큼 어드벤티지를 안고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실험실 학교 프로젝트를 통해 가장 잘 구현된 진보주의 교육은 학생들의 잠재성을 키워주고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교육을 추구하였고, 이와 같은 교육을 통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을 그 목표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한때 미국 교육계를 풍미했던 진보주의 교육은 1950년대에 이르러서 그 영향력이 쇠퇴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진보주의 교육은 어린 아이들에 대한 어른의 통제 및 훈련의 의미를 없애버렸다는 비판을 들었으며, 학생들의 입맛에 좌지우지되는 학교교육, 소소한 일상적 주제에 관심을 두려다 기본적인 학업력을 담보하지 못한 학교교육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학생을 중심에 두고, 삶과 관련된 주제들을 중요하게 다루고, 다양한 교육방법론을 제시하고, 협동학습의 장점을 발견해내고, 학생들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학습자로 세우는 등의 장점도 분명히 제시하고 있기에, 실용주의 및 진보주의 교육이 교육적으로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실용주의, 진보주의 교육은 확실히 미국의 교육 역사에서 기본적 학업력 성취에 실패하였으며, 목표로 삼은 사회적 변화를 일구어 내는 일에도 실패하였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듀이의 실용주의, 진보주의 교육은 인간의 선성 및 무한 가능성을 마치 절대가치인 양 주창하고, 진보의 불가피성, 실용의 필연성 등을 마치 진리인 듯 강하게 내세우면서, 기독교적 가치, 전통적 도덕성, 초월적 진리를 적대시함으로써, 사회의 불의하고 깨어진 부분들을 변화시킬 거시적 대안적 동력을 제시하는 일에 실패하였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바로 그 “사회의 불의하고 깨어진 부분들을 변화시킬 거시적 대안적 동력”이 될 수 있는 교육의 모습에 대하여 논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sinaichung@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