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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프로젝트를 시작합시다

이 희 갑 목사 (아주사퍼시픽 대학교 교수)

자녀를 다니엘처럼 양육합시다 필자가 기독교 교육의 미래를 위하여 고민한 이래로 늘 한결 같이 떠오르는 한 사람의 이미지가 있었다. 바로 다니엘이다. 필자가 다니엘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 같다. 정말 그랬다. 그는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었다. 믿음이 변질되지 않은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영웅들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처음 믿음을 버린 사람도 있었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말년에 겨우 믿음을 찾은 사람도 있었다(므낫세 왕의 경우). 거짓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살인자도, 간음한 사람도 있었고, 주님을 세 번 부인한 사람도 있었는가 하면, 온갖 향락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 했다가 나중에 돌아왔던 삼손과 같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달랐다. 시종여일, 일편단심, 표리부동의 사람이었다. 그러고도 그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 지위에 오른 사람이었다. 이민자가 다른 나라에 가서 그것도 여러 왕조를 통하여 중용 받았던 전대미문의 사람이었다.

무엇이 그를 다르게 했을까? 다니엘 6장에서 보면 그의 인간적 면모, 그의 됨됨이의 형태를 알 수 있게 한다. 먼저 그는 당대에 최고의 실력을 갖춘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다니엘 6장3절에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distinguished himself),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났다(exceptional)고 기록하고 있다. 교수 중에서 최고의 지식과 학식을 갖춘 사람을 석좌교수(distinguished professor)라고 부른다. 바로 다니엘이 그렇다는 얘기다.

하긴 그는 바벨론에서 느브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해 준 이래로 그는 박사(지혜자)로 불렸을 뿐 아니라(단2:48), 그는 그러한 박사 그룹의 대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벨사살왕이 그를 ‘박수장 벨드사살(벨드사실은 다니엘의 바벨론식 이름)아’ 라고 불렀던 것(단4:9)을 기억해보라. 그의 전문적 지식과 학식, 인품과 태도는 당시 어떤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났다는 의미이다.

통상 세상 학문에 뛰어난 사람일 경우 신앙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다니엘은 달랐다. 오히려 그는 무엇보다도 신앙적으로 신실했던 사람이었다. 다니엘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자 시기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다니엘의 뒷조사를 하고 다니며 혹시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다니엘의 비리와 부정을 캐서 고소할 틈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의 장부를 조사하고 그가 돈을 사용하는 문제들을 일일이 살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니엘의 부정과 비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의 개인 생활, 경제적인 부분을 조사할수록 그의 정직성과 깨끗한 생활태도가 그대로 드러났던 것이다. 다니엘 6장4절 “아무 허물도 없음이니라” 다니엘은 모든 것에서 흠잡을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략을 바꾸게 된다. 다니엘의 신앙을 타깃으로 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법률을 개정하고(단6:7에 보면 총리인 다니엘 없이 그들끼리만 논의한 것을 보라), 이를 왕에게 보고한다. 즉 향후 30일간 어느 신에게도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위반하는 자(물론 다니엘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는 사자굴에 처해진다는 법령이 선포된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다니엘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다니엘 6장10절을 보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세 부분에 주목하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감사하였더라’ 바로 다니엘의 신앙자세이다. 그는 이 사실을 알았다. 곧 자기를 향하는 계략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변함이 없었다. ‘전에 하던 대로’ 그리고 그는 집에 까지 따라온 정탐꾼들에게 보란 듯이 창문을 열고 공개적으로 기도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상황에 부딪치면 빠져나오려는 합리화 핑계를 댄다. 그러나 다니엘은 달랐다. 환경이 내게 불리하더라도 아무리 어려운 조건이 나에게 임한다 해도 그는 원칙을 바꾸지 않았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는 감사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성경은 증거한다. 그의 하나님께 감사했다.

다니엘은 자신을 에워싼 불리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켜낸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는 그의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사람이며 그의 믿음을 통해 불신자였던 최고 통치자인 왕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던 사람이다. 다리오 왕이 하나님을 높인 다니엘 6장26절을 읽어보라. “그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다니엘 프로젝트를 시작합시다

필자는 우리 자녀들이 바로 다니엘과 같이 지식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는 전문적으로 뛰어났을 뿐 아니라 (단 4:3), 개인적 성품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 사람이었다 (단 6:4). 그뿐인가? 그는 신앙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열정과 믿음에 뛰어난 사람이기도 했다 (단 6:5). 그래서 다니엘은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왕과 페르시아의 다리오왕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독교인으로 전도하였던 사람이기도 했다. 우리 자녀들이 교회 차세대 아이들이 모두 다니엘처럼 지식적으로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탁월한 사람이 되어 그들의 때가 오면 마음껏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를 위하여 필자는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다니엘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싶다. 다니엘과 같은 자녀를 키우기 위해 교회에서 교사들, 가정에서 부모들은 어떠한 생각과 신념을 가지고 그들의 자녀/학생을 양육해야 할 것인가? 필자는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갖는 아이로 키워라! 무슨 말인가?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확고한 자기 정체감이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라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 간 때가 기원전 606년이었으므로 대략 그의 나이가 15세 쯤 되었을 것으로 성경학자들은 판단한다. 그가 포로로 바벨론 궁중에 지내게 되면서 바벨론 교육을 받았고 바벨론 문화를 익혔지만 그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당시 바벨론 우상에게 먼저 바쳐진 고기는 이후 바벨론 왕의 식탁에 놓여지게 되었는데 바로 이 점 때문에 다니엘은 고기를 먹지 않겠노라고 선언하게 된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바로 그의 정체감이다. 다니엘이란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의미이다. 비록 바벨론이 당시 가장 강력한 국가이기는 했어도 그는 주눅 들지 않았다. 왜 그런가? 바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운행하심을 그는 믿었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세상의 운행자시며 심판자심을 그는 일찍이 알았다. 성경에는 다니엘의 부모에 대해서 기록이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경건한 왕족 혹은 귀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단1:3). 그들은 다니엘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준 것으로 보아 하나님께 헌신된 부모였음에 틀림없으며 어릴 때부터 다니엘을 철저하게 영적 교육을 시켰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마치 모세의 어머니가 애굽의 왕궁에 데려다 주기 전 그의 정체감에 대해 교육을 시켰듯이 다니엘의 부모님도 어렸을 때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감을 철저하게 심어 주었으리라. 아마도 이렇게 교육시키지 않았을까? “다니엘아! 하나님은 너의 심판자가 되시는 분이란다! 늘 너를 인도하고 너와 함께 계시는 분이지. 명심 하거라! 오직 하나님만이 너를 심판하시는 분이란다. 세상 어느 것도 하나님을 절대 앞설 수 없는 거라는 사실을! 그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란다.” 다니엘은 이러한 믿음의 정체감은 그의 삶의 원칙이 되었고 흔들리지 않는 좌표가 되었다. 모든 환란과 시험 속에서 우뚝 서게 만드는 무기가 되었던 것이다. 자녀에게 올바른 영적 정체감을 확실하게 교육시켜라. 그래서 그들의 삶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되도록 하라! 마치 다니엘이 그랬던 것처럼.

둘째로 그가 어렸을 때 포로로 붙잡혀 가서 모든 것이 다른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믿음을 지켰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바로 어릴 때 그가 받았던 철저한 신앙교육 때문이다. 어렸을 때 그는 요시아 왕의 율법 낭독 소리를 듣고 당시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님께 회개하며 눈물의 기도 소리를 듣고 자라났다. 열왕기하 22-23장에 나오는 요시아 왕의 철저한 종교개혁의 내용을 다시 한번 읽어보라. 또한 그는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보고 들으면서 자라났고(단9:2) 그래서 하나님이 70년간을 포로 생활을 하게 하신 후에 고국으로 돌려보내신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믿음의 뿌리가 온갖 힘든 포로생활에서 승리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으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믿음을 지키는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어릴 때 신앙 경험이 이처럼 중요하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남겨줄 중요한 유산이 무엇인가? 바로 신앙이다. 기독교 교육이 오늘날 힘없어진 이유가 바로 신앙교육에 우선을 두지 않고 세상의 가치와 문화에 순종하려 했었던 것에 기인한다. 다니엘은 세상의 가치를 가다듬어 세상을 이기려 하지 않았다. 그는 얄팍한 술책과 꾀로 다른 사람을 앞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했었던 사람이었다. 바로 그러한 것을 우리는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 부모는 자녀와 얼마나 믿음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가?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가? 같이 기도하고 있는가? 자녀가 어릴 때 10년을 믿음으로 무장시키면 이후 하나님은 자녀를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으로 무장시키신다. 처음에는 작게, 그리고 점점 더 크게 하나님은 다니엘을 그렇게 사용하셨다.

셋째, 하루 세 번씩 기도하자. 다니엘의 하루 세 번 기도는 그가 평생 해왔던 습관적인 하나님과의 대화시간 이었음을 기억하자. 전에 하던 대로(단6:10)라는 말은 그가 평소에 그렇게 계속 하고 있었음을 말한다. 다니엘 6장은 그가 대략 82세 때 일어난 일이다. 다니엘이 뛰어난 지식, 탁월한 두뇌가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꿈을 해석하고, 손가락으로 쓴 글씨를 읽고,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와도 담대한 신앙을 견지하였던 것은 바로 그가 하루 세 번씩 기도했던 데에서 기인한다. 부모님들, 그리고 교사들에게 제안한다.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라. 기도가 습관이 되게 하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각각 20분씩 기도하라. 그리고 자녀들도 이러한 운동에 동참하게 하라. 자녀들이 믿음의 거목으로 자라날 뿐 아니라 지적, 영적, 사회적 면에서 탁월한 사람이 되어져 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은 미래에 대한 소망과 하나님의 비전의 씨를 뿌린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 역시 다니엘처럼 미래 세대를 연결시키는 믿음의 연결고리가 되도록 하자. 다니엘은 꿈을 꾸었고 비전과 환상을 통해 다가오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는 선견을 가졌다. 그는 그가 본 환상을 기록하였고 그 기록을 본 후세들은 바로 메시아를 고대하고 만난 기적을 체험했던 것이다. 우리는 마태복음 2장에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동방은 요즘의 이란, 시리아 지역을 말하는데, 그들은 어떻게 그 먼 길에서 오게 되었을까?

동방박사들은 바벨론, 페르시아 후예들로 다니엘이 85세 때 환상을 보고(단9:25-26) 다가올 메시아를 생생하게 기록하게 되고 동방박사들은 그런 다니엘의 예언을 믿고 있었고 민수기 24장17절에서 발람이 한 예언, 즉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동방박사들은 점성술을 연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다니엘이 죽은 뒤 18대 이후 그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별을 보고 알았고 하나님은 이방인들이었던 동방의 박사들의 고백을 통해 메시아 탄생을 세상에 알렸고 그들은 아기 예수께 온 맘을 다해 경배함으로 예수님이 왕이심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이방 땅에서 쓸쓸히 죽어간 다니엘은 그러나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믿음의 연결자로서 귀한 역할을 수행했던 다니엘! 참으로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 아니었던가? 우리는 어떤가? 우리 자녀들을 다니엘로 양육하려는 의지에 앞서 우리 역시 다니엘이 보여준 믿음의 행적대로 우리 자손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신실하고 변함없는 다니엘의 삶의 자세,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도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던 그의 철저한 신앙관, 그리고 그가 받았던 환상과 비전을 그의 후손에 전해주었던 철저한 교육자적 사명, 바로 그것을 우리 역시 실천하고 삶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선조로부터 받은 믿음을 우리 후손세대에 잘 전해주는 것이다. 마라톤 경주에서 바톤을 우리 앞에서 뛰었던 사람으로부터 받아서 다음 사람에게 전해 주듯이 바로 우리가 다니엘처럼 그런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시78:4).

글을 마치며

교육이 하나님의 비전이라고 필자는 생각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한 교육이 교회 안에서, 가정 안에서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 왕성하게 실천되는 것을 소망한다. 그동안 필자의 부족한 부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귀한 기회를 주신 미주크리스천신문사에 큰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격려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도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우리의 2세들, 자녀들, 그리고 우리 후손들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계속되기를 기도하면서 주님 오실 때까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함께 가기를 소망한다(눅13:33). <끝> hlee04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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