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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용서의 빚을 갚아라

박재호 목사 (브라질 새소망교회)

우리는 용서의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받는 자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용서의 복음’의 빚진 자들이다. 이 빚을 갚아야 한다. 마6:12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잘못된 사람을 우리가 용서해 준 것처럼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라는 뜻이다. 이는 주기도문 중에 다섯째 기도문이며 사람을 위한 둘째이다. 죄인의 사함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기도문이다. 우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할 때는 열 번이고 백번이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 막11:25에 보면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많은 죄를 용서받았기에 용서의 빚진 자로서 용서할 의무가 있다. 벤자민 호들리는 “당신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기대하는 것은 뻔뻔스러우며 헛된 일이다”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가마리엘 베일리는 “가장 많이 용서한 자가 가장 많이 용서를 받는다”고 하였다. 금번 사순절에는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모두 용서해주고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더 많은 용서를 받기 바란다.

우리가 남을 용서해야 할 이유는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할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용서의 빚을 진 자들이다. 우리는 남을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용서의 삶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의 사랑의 최고봉은 용서이다. 용서는 사랑을 가지고 타인의 허물을 사하는 것이다. 성숙한 신앙, 오래된 신앙일수록 용서하기를 즐겨 해야 한다. 용서에 3대 원칙이 있다. 그것은 ‘이해’하고, ‘잊어버리고’, 또 ‘사랑’ 하는 것이다. 남의 잘못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인격자이다. 그리고 용서할 수 있는 자는 훌륭하다. 그러나 용서한 자를 사랑할 수 있는 자는 더욱 훌륭하다. 용서(forgive)는 웹스터 사전에서는 “주장을 포기하는 것(to give up a claim)”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내가 그에게 마땅히 비난하고 정죄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용서이다.

빚진 사람에게 찾아가서 줄 것 주고 빚을 갚던가, 아니면 돈이 없어 갚을 수 없으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탕감을 받아야 한다. 이와 같이 용서해주어야 할 사람을 찾아가서 “용서합니다” 하고 분명히 말해주어야 한다. 우리에게 아직 용서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 우리는 한 때나마 가까웠던 사람, 한 교회를 섬겼던 이들, 한솥밥을 먹고 살았던 가족, 부모, 형제 등을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지금 내 앞에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라도 그들을 용서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진정한 마음의 평화와 평강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일어설 때 아직 용서하지 못한 상대가 있으면 그 기도는 무효이다. 기도는 하나님께 나의 잘못을 용서해주실 것을 비는 것인데 자기는 남을 용서하지 않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줄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섭섭하고 원망스럽고 불평불만이 나오는 사람이 있거든 당장 하나님 앞에서 “나는 ○○○를 용서합니다” 라고 고백하기 바란다. 그리고 다시는 그에 대해 비난하고 정죄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기 바란다.

“많이 용서하는 사람은 많이 용서받는다”고 하였다. 사순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용서를 생각해보고 주님께서 나를 이미 용서해 주신 것을 감사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며 나 또한 남을 용서해주는 기간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하며 죽는다고 했다. 이 세상 살면서 진 빚은 다 갚지 못해도 용서의 빚만큼은 반드시 갚고 가는 성도들 되기 바란다. nammic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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