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맥 선교사 (문화동원연구소 대표)
얄팍한 것은 비췬다. 얄팍한 마음은 얼굴에 비취고 얄팍한 지식은 문장에 비취고 얄팍한 인격은 언행에 비췬다. 얄팍하면 본색을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천지만물이 창조된 이후부터 마귀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거짓뿐이었다.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관리를 맡기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주신 뒤 마귀와 사람이 대면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 바로 거짓(속임수)이었다. 그 마귀의 거짓이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동기(動機)가 된 것이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 마귀의 거짓에 속은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교만이 생겨 죄를 짓고만 것이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닮은 특별한 은혜로 창조된 사람은 마귀에게 있어 가장 미운 존재였을 수 있다. 그래서 마귀는 차마 하나님께는 직접 대적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닮은 사람을 넘어뜨림으로 대리만족을 이루고자 했고 지금도 그 마귀의 거짓으로 인한 사람의 넘어짐은 반복되고 있는 중이다.
의도(意圖)가 없이 베풀어지는 호의는 하나님의 사랑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제외한 모든 것에는 의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마귀가 다가와 속삭이는 의도를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선악과를 따서 먹으면 하나님처럼 되는데 왜 마귀가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지 않고 그 거룩하고 위대한 것(?)을 사람에게 넘기려 했겠는가? 안 되려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거나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귀가 하와를 유혹할 그 때 아담은 어디에 있었을까? 왜 그 기뻐하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을 혼자 놔뒀을까? 마귀의 거짓은 시세말로하면 세 살배기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뻔하고 치졸하며 얄팍한 것에 불과하다. 너무도 뻔해 그 거짓에 넘어갔다는 사실이 조롱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죄가 없던 때이기에 순진한 화와나 아담은 마귀의 속임수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닳고 닳아 뺀돌이처럼 되어버린 지금도 아담과 화와의 후손인 사람은 마귀의 밥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어떤 원인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지 않는 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그대로 지켜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항저우로 가기 위해 베이징 남쪽 역에 갔다. 시간이 좀 일러 맥도널드에 들려 커피와 푸짐해 보이는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싸게 느껴지는 사진을 보고서 음식을 주문했다. 잠시 후 직원이 내주는 음식은 아무리 좋게 봐도 사진의 음식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게 얄팍했다. 잘은 모르나 미국의 어떤 맥도널드 매장에도 그토록 사진과 다른 메뉴의 음식은 없을 것이다. 한국에도 없을 듯하다.
중국은 명실상부한 대국이다. 땅도 넓고 자원도 많고 인구도 많다. 세계의 어떤 나라, 어떤 사람도 이를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하는 행태를 보면 참 쪼잔하고 얄팍한 것들이 많다.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는 억지를 대국이라는 힘으로 밀어붙인다. 남중국해(이도 중국이 붙인 명칭)는 아무리 양보하고 이해해도 중국과는 너무 멀다. 그럼에도 중국 바다라고 우기며 무력행사를 한다. 중국은 인권, 종교 등의 불편부당한 행위를 다른 나라가 거론하면 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그러면서도 남의 나라(한국)의 정당한 방위를 비난하다 못해 보복까지 서슴지 않는다. 한국에 배치하려는 사드와 서해상에서의 불법어획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은 이런 엄중한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뿐 아니라 국민이 치를 떠는 밥그릇 싸움으로 국격(國格)이 훼손되고 대내외적으로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그리 잘 보면서도 제 마음과 몸에 똥칠한 것은 의식조차 하지 않을 만큼 무뎌져 있다. 불행한 일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거나 눈을 가리고 아옹 하는 얄팍함과 파렴치에서 비롯되었다.
죄 된 사람이니 겨뤄봐야 거기서 거기고 회칠한 무덤과 같으니 벗겨내면 냄새가 진동할 것이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이 너무도 불쌍한 것이다. 관을 보지 않고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말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르쇠를 겨냥하는 말이나 사람에게 필연으로 죽음이 임하듯 심판도 따른다는 사실은 불쌍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이 세상을 주장하는 것은 거짓이다. 그 거짓이 여러 가지 탈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그 얄팍한 속임수에 번번이 넘어간다. 넘어가주는 것인지 실제로 그렇게 속는 것인지가 의심스러울 만큼 얄팍한 속임수가 통하고 있다. 정치는 원래부터 술수가 난무하는 거짓으로 가득하고 역사는 힘과 편의에 의해 만들어지며 심지어는 종교조차 이단과 사이비가 판을 치고 있다. 의인은 없나니 단 하나도 없으며, 진리가 자유케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이 안심케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눈이 하나밖에 없는 세상에서는 두 눈을 가진 자가 병신인 것이다. hanmac@cmi153.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