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엽 목사 (나침반교회)
이번 성탄절을 앞두고 대형 문구점들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곳에는 아예 크리스마스카드나 편지지 자체가 없었고, 다른 곳에는 카드가 있긴 있는데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어디에도 없었고 “해피 홀리데이”라는 말로 된 카드만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미국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자체를 부인하려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미국은 지금 청교도 정신에 의해 세워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청교도 정신을 온 나라의 구석구석에서 지우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의 분위기도 비슷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초림은 철저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관심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오심을 맞은 사람들은 종교나 학문과는 거리가 먼 미천한 목동들과 이스라엘과는 혈통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으면서도 먼 이방 땅에서 찾아온 동방 박사들뿐이었습니다. 앞으로 오실 참 왕이신 메시아를 누구보다 영접했어야 할 유대 왕 헤롯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나심을 전해 듣고 죽여 없애려 하였습니다. 참 제사장이신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맞았어야 할 제사장들이나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가르쳐 백성들로 하여금 오실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게 해야 할 서기관들은 이방인 박사들의 말을 듣고서야 부랴부랴 성경을 살펴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나실 것이라는 예언을 찾아냈을 정도였습니다. 참으로 당시 이스라엘은 깊은 영적인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지만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안락에 젖어서, 또 세상 살기가 너무 바쁘고 고되어서 정작 그들의 영원한 죽음과 생명을 좌우하실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들 중에 메시아의 오심을 바라는 자들이 있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메시아를 기다리고 기대하였던 것은 대부분 세속적인 영광과 풍부함과 안락함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저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극소수에 해당되지만 메시아가 오신다는 약속을 믿고 기대하고 사모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들이 시므온이라는 사람과 안나라는 여선지자였습니다. 이제 시므온이라는 사람을 통해 성탄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시므온이라는 사람
예수님은 태어나신 이후 8일 만에 다른 남자 아이들처럼 할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모들은 당시의 남자 아이들이 정결예식을 거행한 것처럼 아기가 태어난 지 40일 만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이 드리는 예물인 비둘기 한 쌍으로 제사를 지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하자마자 시므온이라는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그는 세 가지 특징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첫째로, 그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은혜에 합당한 믿음대로 사는 신실한 자라는 뜻입니다. 전형적인 구약 시대의 의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메시아가 오시면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사40:1,2). 시므온은 이 위로의 말씀이 죄를 사하시는 구원의 메시아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두가 깊은 영적인 잠에 빠져 있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자들을 남기고 보존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오랜 세월 동안 좌절하거나 낙심치 않고 여전히 하나님의 위로를 믿음과 소망 가운데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므온은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의 약속하신 바를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성령으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을 붙드시며 주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의롭고 경건한 자로, 주위의 불신앙과 패역에 물들지 않고 자신을 지켜 하나님 앞에 성별되게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시므온은 자신이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을 성령을 통해 알았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이 약속을 잊지 않고 이루어질 날을 기다려온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전에 들어갔다가 예수님의 부모님이 성전에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아이를 받아 품에 안고 찬양하였습니다. 시대를 탓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다 타락의 길을 간다 해도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여전히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운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시므온과 같이 의롭고 경건하며,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 그리고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시므온의 찬양
시므온은 그 어리신 아기 예수님을 가슴에 안고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메시아를 죽기 전에 볼 것이라고 하신 사명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28-32절). 그는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음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눈으로 본 바요 손으로 만진 바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영적인 암흑 가운데 헤매던 인류는 길 되시고 진리 되시고 생명 되신 구세주로 인해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구원의 축복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만민에게 예비된 것이며 이방에 비추는 빛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주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큰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자기 나라, 자기 백성이 메시아를 낳은 백성이어서 만민에게, 그리고 이방에게 빛을 비추는 민족이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영광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 그 어떤 복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을 가장 큰 축복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합니다.
3. 시므온의 예언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에 대한 세 가지 예언을 하였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34절). 패함과 흥함이라는 표현은 원래 넘어짐과 일어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쉬운 성경도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할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넘어지게도 되고 또 많은 사람들은 일어서게도 된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판도가 달라질 것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태도가 바로 우리의 구원을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는 구원을 받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요3:16-18). 이제 세상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구원받을 기회를 주셨는데도 믿지 않는다면 이제 확실히 넘어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아무리 비천하고 작은 자라 하더라도, 아무리 큰 죄악을 저지른 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일으켜 세우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로, 그는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십니다(34절).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보내신 하나님의 외아들이십니다. 그러나 그 백성들은 주님을 영접하고 찬양하기보다는 오히려 주님을 공격하고 비방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하였습니다(요1:11).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비방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귀신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시니까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능력을 힘입었다고 비방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환자를 고쳐주시니까 안식일을 범했다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는 순간에도 그들은 이렇게 비방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습니다.
셋째로, 그는 깊은 고통을 안겨주십니다(35절). 시므온은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주신 예언입니다. 예수님은 장차 칼이 마리아의 마음을 찌르듯 하는 아들이 되실 거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칼은 골리앗이 사용했던 것과 같은 커다란 칼이고 야만인들이 휘두르는 칼입니다. 또한 여기 마음을 찌른다는 말은 칼로 계속해서 도려낸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 아기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가슴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게 되는 아들이 될 것이라는 뜻이며, 그것은 곧 십자가에서 죽으실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죽으시기 위해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이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요19:25). 마리아는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서서 칼이 그 마음을 찌르는 고통을 고스란히 당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비방을 당해야 십자가 구원의 길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탄절에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겸손하게 맞아들여야 합니다.
4. 시므온을 통해 배울 교훈들
무엇보다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시므온이 처음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렸다면 이제 우리는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부인하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먹고 마시고 흥청망청 삽니다. 아무도 예수님이 다시 오실 거라고 믿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처음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면서 반드시, 속히 다시 온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하나님 없는 지옥이 되어 가면 갈수록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은 가까워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가치를 역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과 충돌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기대하십니다.
또한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탄의 주님을 증거해야 합니다(고전1:18). 원래부터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도라는 미련한 것으로 자꾸만 이 복음을 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화가 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예수님은 이 땅에 살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이 땅에 죽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오늘도 이 죽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 때문에 삶의 의미를 찾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름다운 성탄의 계절에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그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이 땅에 산다는 믿음을 굳게 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