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신 애 박사 (시카고 트리니티크리스천칼리지 교수)
지난 이야기들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깨어지고 불의하고 불건전한 부분들 중 먼저 “물질만능주의(Mammonism)”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현재 한인기독교교육 안에 있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해 어떻게 비평적으로 관여해야 할지와, 또한 사회 교육적 사명감과 유기체적 인식을 바탕으로, 미국 및 한인 사회의 물질만능주의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이야기에서는 미국 및 한인 사회의 물질만능주의의 영향들은 무엇이며, 한인기독교교육은 이를 향해 어떠한 교육내용을 가질 수 있는지, 즉 한인기독교교육이 물질만능주의로 가득한 이 사회를 향해 대안적 설득력을 가지려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해 보려고 합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밝힌 바대로, 미국사회 및 한인사회의 왜곡된 자본주의의 행사가 오늘날 교회와 사회에 공히 물질만능주의의 팽배를 가지고 왔다면, 이것이 한인교회를 비롯한 한인사회와 미국사회에 가져온 문제점들, 즉 이것의 악영향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한 번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어느 중견 한인교회의 장로님 한 분이 오랫동안 운영해오던 사업이 미국사회의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이제 잘 되지 않았고 그래서 그 사업을 중단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액수의 빚을 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도 수개월간 전혀 수입은 없었고 빚은 점점 더 늘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장로님께서 섬기던 교회에서는 사업을 접기 전 후 그 오랜 동안 전혀 그 사정을 몰랐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장로님은 사업에서 수익이 전혀 없고 또한 빚이 그렇게도 많았지만, 또 별도로 빚을 내서 이전에 내던 만큼의 십일조를 1년 수개월간 꼬박꼬박 내왔기 때문입니다. 자고로 십일조라함은 수입의 십분의 일을 헌금하는 것인데, 수입도 전혀 없이 형편이 그렇게 어려웠건만, 그 장로님은 십일조를 내기 위해 빚을 또 지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그 오랜 기간 해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그 장로님의 가치가 그 장로님의 헌금액수로 매겨졌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교회에서 실제로 벌어져 온 일이건 그 장로님 혼자만의 판단이건 간에 이러한 풍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특히 한인교회는 모국에서의 사회적 지위를 잃고 보다 낮은 사회적 지위에 처하게 되는 다수의 한인들에게(downward mobility) 새롭게 사회적 지위를(“장로”라는 “치리”의 지위는 특히) 부여하는 사회로서의 역할을 해왔는데, 이 사회적 지위는 통상 재정적 기여도(많은 액수의 “헌금”)에 따라 주어지기 때문에, 그 장로님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무리하게 빚을 내어서라도 기존과 같은 액수의 헌금을 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가치가 물질적인 것으로 매겨지는 것은 참으로 한인교회, 한인사회, 그리고 미국사회 및 모든 사회에서 이제는 이상하지도 않을 만큼 팽배해 있는 물질만능주의의 대표적인 악영향 중에 하나입니다.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인간의 가치가 물질적인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는 것, 이러한 것들의 결론이 되는 인간성 말살의 현상, 나보다 물질적 재화 및 그것을 갖게 할 능력이 적은 사람을 무시하는 것, 물질적 재화 및 능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간의 지나친 불평등과 비인격적 관계(소위 가진 자들의 갑질 행태), 실질적 빈부의 격차 및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 이러한 고리를 깨뜨리고자 하는 뒤틀린 노력들로 인한 부정부패, 이로 인한 도덕성 및 윤리성의 파괴 등등의 물질만능주의의 악영향이 우리 교회와 사회 안에 너무나 팽배해 있어서 이제는 오히려 그러려니 하고 체념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아닌가 싶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게다가 이러한 것들은 극단적 계발주의로 인한 자연 및 생태계 파괴까지 가져왔고 또한 지속되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이러한 물질만능주의의 악영향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기독교인들을 포함해서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주의의 악영향들이 하나님의 뜻에 거스르는, 옳지 못한, 고쳐야만 하는 부정의한 일들이라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 또한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기독교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에 반대할 기독교인 또한 아무도 없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이렇듯 심각한 물질만능주의의 악영향 앞에, 도대체 기독교 교육은 어떻게 이에 대응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사회에 대해 기독교 교육이 비평적 사회학적으로 관여할 수 있기 위해서, 이들에 대해 기독교교육이 펼칠 수 있는 대안적 기능과 역할이 무엇일까요?
기독교교육의 대안적 담론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담론은 창조에서부터 드러나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수호하고, 자연과 생태계를 존중하고 소중히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담론은 십계명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나는 물질적 가치를 뛰어넘는 하나님께의 헌신의 가치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 우주적 권위와 그가 가르쳐주신 인간관과 인간관계에서의 가치 등이 잘 드러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새 언약은 이러한 것들을 강화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가르침 말입니다. 이러한 진리들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이 사회를 향해 우리 기독교교육이 반드시 담보하고 가르쳐야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종래에는 반드시 가르쳐져야 할 내용임에 틀림없지만 이 시대의 악함은 이러한 담론들을 사회 속의 비기독교인들에게 설득력이 없도록 만들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말살된 인간성, 그 가치와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교육함에 있어서 우리 기독교교육이 이 사회에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담론의 전달에 앞서, 그 담론들을 실천하는 것에서 찾아야만 할 것입니다.
보다 효과적인 것은 바로 물질과 재화를 실천적으로 나누는 교회의 활동들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올바른 관계성에 대해 이 사회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인격은 존중 받아야 하며, 나눔이 가치 있는 일이며, 생명을 돌보는 일이 복된 일이며, 물질적 재화와 능력에 상관없이 서로서로 돕고 세우는 일이 참으로 정의로운 일임을, 참으로 고등하고 고상한 인간의 활동임을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주며 대안적 기능과 역할을 다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내 사회내 매머니즘이 얼마나 인간의 존엄성을 갉아먹고 윤리를 파괴하는지 그 심각성을 깨닫고 행동할 때가 이미 지났습니다. 서둘러 이러한 닐들을 실천하는 한인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sinaichung@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