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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대 교회 - 신앙의 자유와 경건 (8)

조진모 목사 (필라델비아한인연합교회)

교회는 세상을 위해 그 안에 존재한다.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교회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는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이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초대교회부터 시작된 수도원 운동은 전통 교회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을까? 교회에 대한 대안일까? 교회를 대적하는 단체일까? 모두 옳지 않다. 서방교회 수도원 운동은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정착되었다. 교회 밖의 신앙 활동은 반드시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단지 교회 역사가 진행되면서 이런 중요한 사실이 망각 또는 왜곡되었을 뿐이다. 질문: 초대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인 교부 어거스틴은 수도원 운동과 교회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였나?

1) 교회 역사를 보면... ■ 교회를 위한 수도원 히포의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은 초대교회를 대표하는 교부이다. 그는 초대교회의 끝자락에 살았던 인물로서, 초대교회의 신학을 총 정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유난히 세상의 일에 관심을 가졌던 어거스틴은 회심을 경험한 후, 방탕했던 삶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매우 긴요한 도구로 쓰임을 받았다. 그의 신학과 사상이 후대 교회에 미친 영향은 매우 지대하다. 그 중 하나가 그가 주도했던 수도원 운동이다. 이미 우리는 서방 수도원 운동의 전통을 남긴 베네딕트(480-543)의 사역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는 어거스틴보다 후대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초대교회 말기와 중세교회 초기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였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베네딕트가 어거스틴의 수도원 운동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베네딕트 수도원이 강조하였던 기도하는 일, 성경을 연구하는 일, 그리고 노동하는 일 모두 어거스틴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있었다면, 공동체에 어울려 지내는 동안 다른 멤버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하여 분명한 가르침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지 자신을 분명하게 내려놓고 인내와 사랑으로 남을 대하도록 하는 것으로서, 베데딕트의 규율서 마지막 부분에 잘 서술되어있다. 그러나 세상과 구별된 공동체를 구성한 베네딕트 수도원의 전통과 달리, 북아프리카 지역을 대표하는 어거스틴 수도원은 교회를 위한 수도원이라는 분명한 특징을 지녔다. 그는 교회의 지도자와 모든 성도들이 수도원의 전통의 교훈을 받아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가르쳤다. 경건한 삶을 위하여 교회생활을 통하여 얻을 수 없는 부분을 수도원을 통해서 얻지만, 결코 수도원이 교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수도원을 경건한 교회지도자들을 양성하는 방편으로 삼았던 것이다. 향후 서방교회는 수도원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교회를 위한 수도원"이란 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 어거스틴 수도원 어거스틴은 386년에 밀라노에서 회심하였다. 다음 해에 세례를 받은 후, 388년 자신의 출생지인 타카스테(Tagaste, 지금의 알제리 지역)로 돌아와 수도원을 창설하였다. 회심과 함께 수도사의 신분으로 경건한 태도로 진리를 습득하려는 그의 겸손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몇 명의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작은 공동체를 구성하여, 391년까지 약 3년간 그의 거주지에서 수도원을 운영하였다. 개인의 소유를 전면으로 부정하고 공동체에 속한 멤버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기도와 성경 연구, 그리고 노동에 전념하였다. 그가 처음 창설한 수도원은, 아직 교회와 연관을 맺지 못한 채 수도사들을 위한 공동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391년, 어거스틴은 히포의 사제로 임명되어 타카스테의 생활을 접고 이주하였다. 그는 이곳에서도 수도원을 창설하는데, 교회당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이 수도원은 기본적으로 평신도들에게 개방되었으며, 공동체에 속한 개인들에게 사도행전 4장에 기록된 초대교회가 건네준 기본 정신을 함양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이미 교회의 사제로 부르심을 받은 어거스틴은 교회를 마음에 품고 수도원에 친히 거주하여 이끌어갔다. 어거스틴의 명성이 확장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왔다. 그 결과, 공동체에 속한 다수의 멤버들이 주교로 세움을 받아 교회를 섬기게 되었다. 이제 확연히 교회를 위한 수도원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396년, 어거스틴은 히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교회로부터 덕망과 신뢰를 한 몸에 얻은 그로서 결코 피할 수 없었던 결과였다. 여러 가지 교회 업무로 인하여 사택에서 생활하여야 했다. 그 당시 수도원은 더욱 확장되어나갔기에, 그 전통이 지속되기를 바랐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회 안에 다른 형태의 수도원을 창설하였다. 교회에서 사역하는 사제들로 구성된 수도원이었다. 그들은 수도원의 정신을 그대로 수용하여 금욕적이며 검소한 삶을 추구하였다. 어거스틴은 이와 같이 세상과 구별된 수도원이 아닌, 교회 안에 존재하는 수도원의 특이한 전통을 남겼다. 어거스틴 수도원은 향후 '신학과 경건'의 균형 있는 발전을 통해 후대 교회에 커다란 영적 유산을 남겨주었다.

■ 두 권의 책

어거스틴이 수도원 운동과 관계되어 저작한 두 권의 책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규칙서”이다. 이 규칙서는 공동체에 속한 모두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함으로서 성경이 지시하는 첫 계명을 준수할 것을 명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나아가서 한 가족으로 화목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어떤 구체적인 모습을 취하여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가난의 정신, 겸손, 기도생활, 가난의 정신, 지상 재물에 대한 올바른 태도, 정결한 생활, 공동체 사랑, 재산의 공유와 사랑의 친교, 청결 및 건강관리, 노동에 대한 태도, 이웃 사랑 실천, 그리고 순종과 봉사 등이 있다. 마지막 부분에는 “규칙서”의 내용을 한 주 한번은 반드시 읽고 항상 마음에 새기어 실천할 것을 명령한다. 다른 하나는 “수도사들의 노동”이란 제목의 책이다. 카르타고에서 수도사들의 노동 문제로 논쟁이 벌어지게 되자, 어거스틴은 주교의 요청으로 수도사들의 노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잘 설명하였다. 수도사들 중에 노동을 기쁘게 수용하는 자들과 거부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모두 성경(살후3:6-12; 마6:26, 28)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피력하였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하였다. 사도들이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성도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으나, 신앙심이 얕아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배려하여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책임지게 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도사들 중에 노동에 참여할 수 없는 부득이한 환경에 있는 자들을 제외하고, 열심히 노동에 임함으로서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을 권장하였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게으름과 노동을 기피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만일 수도사가 노동을 할 수 없게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통하여 공급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중세시대에 들어와 여러 수도원들이 생겼다. 기본적으로 금욕이며 절제하는 삶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각 수도원마다 특징을 갖추고 발전하였다. 어거스틴 수도원 역시 다른 수도원과 구별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의 기본적인 정신, 즉 교회를 위한 수도원의 모습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2) 성경이 보인다 - 에베소서 1장; 사도행전 2:5-11, 43-44, 3:46, 4:34-35; 요한일서 1:3; 빌립보서 1:15, 2:12)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이다. 그 안에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충만하다. 하나님은 교회, 즉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를 통하여 당신의 영광과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기를 원하신다. 교회를 건물이나 제도적 조직체로 이해하고 있다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원대한 계획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교회는 몇 개인의 사조직이나 친교를 위한 장소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찾도록 하는 기복적 종교 집단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동참하는 영적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성도들이 반드시 명심할 것이 있다. 모든 성도의 모든 신앙 활동과 경건 훈련은 결국 교회를 위한 것이다. 교회 안에는 진정한 영적 교제가 있어야 한다. 교회가 교회답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실제적으로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성도의 교제란, 서로 다른 신분과 배경을 가진 자들이 모여 자신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상대를 귀한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다. 수도원의 활동이 교회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진 현대 교회의 상황이다. 교회는 어거스틴의 수도원가 후대 교회에 준 기본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천국백성의 신분을 함께 받은 공동체로서, 복음 안에서 나누는 사랑의 교제를 통하여 서로 격려하며 복음의 진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covenantch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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