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모 목사 (필라델비아한인연합교회)
[지난 회 요약] 누르시아의 베네딕트(Benedictus of Nursia, 480-543)는 서방교회 수도생활의 전통을 확고히 세운 인물이다. 로마에서 공부를 포기하고 수도사가 되어 3년 동안 동굴에서 지내면서 고행의 시간을 보냈다. 명성을 얻으면서 비코바로 수도원의 원장으로 사역을 하면서, 수도사들에게 경건에 대한 열망이 그리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베네딕트는 몬테카시노에 영구적으로 정착하여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베네딕트 규칙서”를 작성하여 모든 수도사들이 경건에 대한 열망에 대한 좀 더 분명한 목적을 가지길 원했다. 공동기도, 성경읽기, 그리고 노동이다. 이 세 가지는 향후 서방교회 수도원운동의 핵심사항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성도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경건한 삶에 대한 기본정신이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 공동기도 베네딕트가 수도사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기도하는 일이었다. 과거 광야 수도사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기도와 명상으로 지내던 경험을 지녔던 그였기에, 하루 24시간 중에 8시간을 기도에 할애한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가 수도사들에게 기도의 삶을 강조했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베네딕트가 중시했던 것은 기도하는 시간의 길이가 아니었다. 그는 올바른 기도를 드리도록 요구하였다. 공동기도가 포함되어있는 “베네딕트 규칙서”의 8장부터 20장의 앞부분을 살펴보면, 이미 수도사들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겸손한 태도이다. 수도원에 규칙이 제정된 이유와 수도사들이 반드시 순종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한 채 수도원에서 생활을 하기로 작정하였다면, 반드시 질서를 지킴으로서 공동체 생활의 목적을 함께 이루도록 하라는 것이다.
대수도원장은 반드시 삶으로 모범이 되며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수도원들은 대수도원장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수도사들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는 행동을 하는 것도 철저하게 금하였다. 베네딕트는 자신의 생각보다 성경에 근거하여 규율을 제정하려하였으며, 중요한 부분에는 성경구절을 제시함으로서 그 뜻을 좀 더 분명하게 하려하였다. 특히 5장부터 7장은 본격적으로 성경에 근거한 겸손한 태도가 어떠한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순종을 최고의 겸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수도사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완수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삶이 주님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도사들은 주님께서 제시하시는 12개 단계로 구성된 "겸손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첫 단계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마지막 단계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이로 인해 아파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 놓여진 10단계 모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보고 내어놓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참된 겸손이란, 지속적으로 참회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갖게 하는 도구이다. 개인적으로 드리는 기도와 함께 드리는 기도를 포함한다. 베네딕트는 이 시간에 수도사들이 무엇을 하느냐에 관심을 기울였기에, 개인의 의사에 맡기지 않고 일종의 '기도의 규율'을 정한 것이다. '공동기도'라 함은 공동으로 기도할 때는 물론,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에도 모두에게 적용되는 규율이란 뜻이다. 그 내용을 보면 매우 구체적이다. 주중과 주일의 내용이 다르다. 낮과 밤의 내용이 다르다. 평일과 성일의 내용이 다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수도사들은 시편 내용을 중심으로 기도를 실천하였다는 것이다. 기도 시간은 곧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의 연장이라는 개념을 가졌음에 틀림이 없다.
■ 성경읽기 수도원 생활에서 성경읽기는 반드시 지켜야 할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였다. 성경 자체는 물론 교부들의 성경연구에 대한 글을 함께 읽도록 하였다. 모든 수도사들은 매일 다른 일을 멈추고 약 2-3시간 동안 성경을 읽어야 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수도사의 모습은 무엇인가 깊이 묵상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수도사들은 성경의 진리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중시 하였다. 그러나 베네딕트는 수도사들에게 집중하여 성경을 읽을 것을 권하였다. 여기에는 본인이 직접 글을 읽는 것과, 타인이 읽을 때에 그 내용을 경청하는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성경읽기를 통하여 개인의 경건이 함양되고 성경적 체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세시대를 지나면서, 교회가 제 역할을 담당하지 못할 때에 수도원의 존재는 독보적이었다. 중세시대에 유명한 신학자는 대부분 수도원 출신이었다. 성경연구를 통한 신학의 발전하였던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 노동 베네딕트 수도원운동의 기도와 성경읽기를 하나의 단위로 이해하는 학자들은, 그의 사상을 "기도하고 일하라!"로 간단히 정의한다. 수도사들에게 영적인 일이 중요한 것이 사실이나, 육체적 노동을 이와 버금가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수도사들은 노동을 멀리 하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에, 노동이 수도원에서 중요한 자리를 잡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흥미로운 것은 “베네딕트 규칙서”에 성경읽기를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한 48장에, 노동에 대한 기본적인 규율도 함께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노동하는 일과 성경 읽는 일이 수도사의 삶에서 결코 구분이 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48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게으름은 정신의 원수이다." 게으른 사람은 누군가 나를 먹여줄 것을 생각한다. 24시간을 철저하게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결코 한가한 시간을 가질 수 없다. 베네딕트는 영적인 훈련과 함께 육체적 노동을 통하여 건전한 정신을 소유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나아가서 수도사들에게 노동은 문자 그대로 먹고사는 수단이 되었다. 그 당시 그 누구도 수도원 운동이나 수도사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없었다. 아직 그들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하여야 했다. 수도원이 훈련의 장소였다는 점을 감한한다면, 베네딕트의 의도를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영적인 일과 육체적인 일을 병행하면서 바쁜 삶을 살게 함으로서, 수도사들이 허탄한 곳에 마음을 뺏기지 않도록 한 것이다. 우리는 향후 수도사들에게 물질을 기부하는 손길이 생겨나면서, 중세 수도원 역시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알고 있다. 아무튼 물질의 힘은 대단하다. 건설적인 면보다, 파괴적인 면이 더욱 강한 것이 사실이다.
2) 성경이 보인다 - 마태복음 11:29, 16:24, 디모데전서 4:7-11, 디모데후서 2:1-13, 신앙의 길을 걸어하는 것은 끝없는 도전과 겨루어 싸워하는 힘든 과정이다. 원수 마귀는 주의 자녀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기 때문이다. 24시간 영적전쟁을 싸워야 하는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싸움을 싸울 준비를 취하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인정해야 할 사실은 우리 원수가 우리가 지닌 약점을 너무도 잘 안다는 것이다. 창조 이래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바로 이 부분에 준비가 되지 않아 크게 넘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다름 아닌 나태함이다. 영적으로 나태해지면 더욱 편안한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하여 반드시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데, 도리어 신앙이란 수단을 통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우려는 태도를 가지려 한다. 주님의 가르침과 정반대로, 십자가를 등지고 세상을 바라보려한다. 나태함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영적인 무장을 해체하려는 본성을 거부하고 감출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강한 훈련이 필요하다. 매일의 삶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을 향하려하는 자아를 쳐서 복종시킬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무엇으로 가능할까?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오랜 세월을 두고 발전해온 수도원의 전통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베네딕트의 기본정신을 우리의 경건한 삶에 좋은 참고사항으로 삼는 것은 어떨까? 말씀 자체와 내용 있는 기도에 전념하며 나를 돌아보는 영적인 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허탄한 곳에 뜻을 두지 않도록, 특히 물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자신을 복종시키는 실천적 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결국 이 모든 훈련의 목적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통회하는 겸손한 태도를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작고 연약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경건의 모습이다. covenantcho@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