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모 목사 (필라델비아한인연합교회)
자유주의 신학은 17세기의 계몽주의와 함께 출발하였다. 그들은 이성의 능력을 무한히 신뢰하였다. 과학적이며 합리적 사고로 객관화된 기독교 진리를 재해석하고 비평하였다.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인간의 경험이 신학의 토대가 된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이해하는 예수는 성경의 증거와 전혀 다르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대속의 죽음, 육체적 부활, 그가 행한 기적을 허구라고 주장한다. 후대 교회가 그리스도를 대단한 신적 인물로 드러내기 위해 조작된 내용을 추가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질문: 참 하나님이시고 참 인간이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어떤 형태로 존재하였는가?
1) 교회 역사를 보면...
∎ 질문, 질문, 또 질문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325년 니케야 종교회의의 질문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것이었다. 381년에 모인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의 질문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것이었으며, 431년 에베소 회의의 통하여 그리스도의 인격이 하나님을 확립하였다.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가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한 분이셨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질문이 많다는 것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분명한 답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본체 하나님이시나 자신을 비워 인간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기독교의 진리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요구한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이시고, 인간이시다. 그는 죄가 없으나 고난을 받으셨고, 죄인을 위해 구원을 이루셨다.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믿으려면,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신 분이라는 확신을 지녀야 한다. 초대교회가 경험한 수많은 신학논쟁의 핵심에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믿음의 대상에 대한 분명한 답을 얻으려는 노력을 통해, 좀 더 분명한 기독교의 전통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질문의 내용이 좀 더 구체적이고 깊어졌다. 더욱 분명한 영적 유산을 후대 교회에게 남겨주게 된 것이다. 451년에 또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하여 칼세돈에서 네 번째 종교회의가 열렸다. 앞서 개최된 종교회의가 그리하였듯이, 그 자리에 모인 교회 대표자들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기 위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노력했다는 것이 아니다. 세계 교회가 종교회의로 모여야 했던 것은, 같은 질문에 대하여 상반되는 답을 지닌 자들이 대립되는 상황이 연출되었으며, 이로 인해 생기는 교회 내의 갈등과 분열을 종식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의견의 대립이 더욱 심화되었다. 이 과정 속에서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매우 덕스럽지 못한 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 어떤 환경에서도 기독교의 진리를 지켜야 하는 당위성과 함께 그 방법에 대한 의구심을 유발시키기도 하였다.
∎ 강도회의 이미 반복적으로 언급한대로, 초대교회의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알렉산드리아학파와 인성을 강조하는 안디옥학파 사이의 갈등 구도로 진행되었다. 5세기가 되도록 그들 사이의 신학적 갈등은 지속되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한 몸 안에 기계적으로 연합되었다는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한 381년 에베소 종교회의이후, 알렉산드리아학파는 힘을 얻었다. 이런 상황에서 알렉산드리아학파에서 유티케스(Eutyches)라는 인물이 등장하였다. 그는 네스토리우스의 사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였으며, 자신이 속한 학파의 전통을 따라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이론을 펼쳤다. 그는 단성론, 즉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의 본성을 지녔다고 주장하였다. 성육신하신 이후 그리스도의 인성이 인격적 로고스로 동화되었기에 그에게서 신성과 인성의 분명한 구분을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마치 바다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결국 바다로 완전히 흡수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였다. 그가 이해한 그리스도는 인간의 것과 분명히 구분되는 신적인 육체를 지니고 계신 분이었다. 이런 주장으로 인하여 그는 졸지에 448년부터 451년까지 지속된 '유티케스 논쟁'의 핵심인물이 되었다. 유티케스의 주장에 맞서서 안디옥학파에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두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이 하나의 위격 안에 혼합되지 않은 상태로 연합되어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488년에 모인 콘스탄티노플 지방대회에서 유티케스의 이론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그리스도는 하나의 위격 안에 두 본성으로 이뤄짐을 성경적 가르침으로 결정하였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449년 에베소에서 결코 바람지하지 못한 종교회의가 열렸다. 알렉산드리아의 디오스쿠루스(Dioscurus)가 알렉산드리아의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하여 유티케스를 지원하기 위하여 황제를 설득한 것이다. 세상적인 언어와 폭력이 난무한 이 회의를 통하여 교회 지도자들의 추한 모습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신학적으로는 유티케스의 단성론을 정통신앙으로 인정하였으며, 유티케스를 이단으로 선포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플라비아누스는 심한 폭행으로 며칠 뒤에 숨을 거두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도덕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였던 이 종교회의는 어떤 합법성을 지니지 못했다. 로마 감독은 이 회의를 '강도회의'라고 선언하였다. 기독교의 진리를 위해 싸울 때, 어떤 방법과 모습이 바람직한지에 대하여 후대 교회에게 커다란 교훈을 남긴 모임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 451년 칼세돈 종교회의 451년에 칼세돈에서 모인 종교회의는 '강도회의'의 오류를 바로 잡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중요한 정통교리를 확립하였다. 네스토리우스 '양성론'과 유티케스의 '단성론'교리를 이단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 회의에서 작성된 칼세돈 신조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교부들을 따라서 우리 모두는 한 분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 하도록 가르치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으로서 또한 사람으로서 완전하시며,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시며, 이성적인 영혼과 몸을 가지고 계신다. 그는 신성으로는 아버지와 동일본질이시고, 인성요로는 우리와 동일본질 이시다. 그는 만사에 있어서 우리와 같으시나 죄는 없으시다. 그의 신성은 시간 이전에 성부에게서 나셨고, 그의 인성은 마지막 날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하나님의 어머니이시다. 우리는 유일하신 한 분 성자시요, 주시요, 독생자이신 그리스도를 고백한다. 그는 두 본성으로 인식되지만, 두 본성은 혼합이나 변화나 분할이나 분리가 되지 않음을 인정한다. 인격적인 연합은 각 성의 특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양성은 각 본성의 특이성을 보존하면서 하나의 품성과 자질로 연합되어 있다. 두 품성은 분열되거나 분리되지 않고, 한 분이시고 유일한 독생자이신 로고스 곧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 선지자들이 이렇게 증거 하였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와 같이 가르치셨으며, 교부들이 우리에게 이와 같이 가르치셨고, 교부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신조도 우리에게 이와 같이 가르치셨다." 위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첫째,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지니신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시나, 자신을 비워서 우리와 같은 참 인간의 인성을 입으신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는 하나의 인격(person)안에 두 본성(nature)을 지니셨다. 그는 하나님이시지만, 로고스는 인간들이 공유하는 본성을 취하심으로 그 안에 신성과 인성이 함께 존재한다. 세 번째,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유티케스의 주장과 달리 혼동이 없고, 네스토리우스의 주장과 달리 변함이나 분리가 없다. 나아가서 둘 사이의 나뉨도 없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양성교리가 교회의 정통교리로 확립된 것이다.
2) 성경이 보인다 - 로마서 1:3-4; 갈라디아 4:4-5; 빌립보서 2:6-8; 히브리서 1:1-3;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초대교회로부터 시작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거부하고, 인간의 생각에 그를 가두려는 오류가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의 이성과 경험으로 그의 인성과 신성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전혀 없다. 그리스도의 양성 중 하나를 약화시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생각대로 그리스도를 그려내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성인으로 추대하거나 위대한 선생으로 인정하며 대단한 인물로 여기는 일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기독교의 모든 진리의 중심이자 기초이다. 우리에게 오신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와 같은 육체를 지닌 인간이시다.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거부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수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계몽주의 이후로 인간 중심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이해가, 20세기를 지나면서 극대화되고 있다. 포스트모던 정신의 요구에 따라 절대적인 진리를 거부하는 이 시대는, 그리스도의 정체성 자체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고 있다. 초대교회가 지녔던 많은 질문과 이에 대한 답이 후대교회에 물려준 유산을 재차 확인해 보아야 할 때이다. covenantcho@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