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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대 교회 - 교리의 형성: 무엇을 믿는가?(10) - 381년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b)

조진모 목사 (필라델비아한인연합교회)

지난 호 요약: 381년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a) 381년에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가 소집되었다. 325년에 니케야에서 개최된 세계 최초의 기독교 공의회의 후속 모임이었으며, 기독교 교리의 초석을 놓는 중요한 교리를 결정하였다. ‘콘스탄티노플 신조’에는 ’니케야 신조’에 나타난 삼위일체 교리가 발전된 모습으로 기록되어있다. 삼위일체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단어이나, 자주 사용되는 신학 용어이다.

■ 신앙의 대상 삼위일체 교리는 초대교회의 출발과 함께 신앙의 규범의 위치에 있었다.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세례를 받을 자들을 교육하면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신앙을 고백하도록 가르쳤다. 예배를 마치는 시간에 ‘송영’을 부르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콘스탄티노플 신조’가 삼위일체 교리는 정리하였다는 것은, 초대교회가 ‘신앙의 대상이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었다는 것이다. 교리사의 첫 번 논쟁거리인 삼위일체 교리는 성도들에게 견고한 신앙의 토대를 제공함으로서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가 추구하는 신앙의 기본 교리들의 기초가 되었다. 다른 종교와 구별하는 분명한 진리를 요약하고 있으며,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교리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첫 걸음이다. ‘신앙의 대상이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지니는 것은 하나님 중심의 신학 체계와 신앙의 출발점이다.

동일본질 ‘니케야 신조’는 성부와 성자 사이의 ‘동일본질’을 결론지었다. 성자 안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가? 에 대한 답을 얻은 것이다. 그의 안에는 있는 것은 성부 안에 있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성부와 동일한 영원하고 불변하는 본질이 성자 안에 있다. 성자가 성부의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는 것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영원한 ‘발생(generation)’이다. 여기서 말하는 ‘발생’이란, 성부와 성자의 본질 사이에 이뤄지는 내적 과정으로서, 성자는 성부로부터 낳음을 입은 것을 가리킨다. 물론 이는 조물주와 피조물 사이에 이뤄지는 ‘창조’의 개념이 아니다. 즉, 성부가 자신과 동일한 성자를 생산한 것이 아니라, 성자와 성부가 자체적으로 하나의 본질을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한다. 이 본질은 ‘상이’하거나 ‘유사’한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의가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도 지속되었다. 아폴리나리우스(Apolinarius)의 삼분설이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다. 그는 인간의 본성이 몸, 혼, 그리고 영 3부분으로 구성되었다는 고대 철학의 개념을 그리스도의 인성 이해에 적용하였다. 그리스도의 몸과 혼은 인간이었지만, 그의 영은 신적인 로고스로 대치되어 채워졌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관심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희생시키지 않고 그의 단일성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카바도기아 교부들은 아폴나리우스의 주장을 거부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참된 구속자가 되시기 위하여 반드시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지니셔야 했다는 정통 교리를 재확인 한 것이다.

성령의 동일본질 성령의 본질은 성부와 성자가 지녔던 것과 동일하다.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는 ‘한 분의 하나님’은 정통 삼위일체 교리의 가장 결정적인 내용이다. 신적 본질은 결단코 나뉠 수 없기 때문에, 동일한 본질이 세 위격 안에 충만하게 거하신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성부와 성자에 비하여 성령에 대한 교리가 크게 발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니케야 신조’는 성령에 대해 매우 간단히 언급하였다. “또한 성령을 믿사옵나이다.” 한 문장에 불과하였다. ‘콘스탄티노플 신조’에는 성령에 대한 교리가 많이 보완되었다.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사오니, 그는 성부로부터 나오시어,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분이십니다.” 성령의 본질이 성부 또는 성자와 ‘동일’하다는 구체적 표현을 찾아볼 수 없지만, 그가 성부로부터 ‘나왔다’ 또는 ‘유출’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참고적으로, 향후 589년 톨레도 종교회의에서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유출’되었다고 결정하였다. 서방교회는 “쌍발 발출설”을 따랐고 후에 정통 교리로 자리를 잡았다. 이에 반하여 성령의 동방교회는 “단일 발출설”, 즉 오직 성부로부터의 유출을 고집하였다. 이후 동방과 서방 교회가 분열된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플 신조’에서 성령의 신성이 강조된 것이다. 이미 성자를 피조물이라고 주장하여 이단으로 정죄된 아리우스(Arius)는, 성령을 성자의 첫 피조물이라 하였다. 성령이 성자에 종속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의 신성을 부인하려 한 것이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아리우스와 신학 논쟁을 벌이며 니케야 정통 신학을 수호하였다. 그는 초대교회의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한 신학자로서, 이미 350년대 말에 그가 투무이스의 감독 세라피온(Serapion)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중에, 성령은 성부 및 성자와 ‘동일본질’이라고 기록한 내용이 있다.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이런 맥락에서 성령의 신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 신조가 성령을 "주님," "생명을 주시는 분," "예배와 영광“을 받으실 분으로 표현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성령은 분명히 성부와 성자로부터 구별하여 존재하지만, 동시에 함께 하나님이 되신 분으로 소개한 것이다. 성령의 위격은 성부와 성자에 비하여 분명히 종속적인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의 본질은 다른 위격과 동등하다. 그러므로 피조물은 성령을 포함한 삼위 하나님을 예배하여야 한다.

삼위일체

‘니케야 신조’와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하나님은 한 분이심“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그 한 분이신 하나님은 동일한 본질을 소유하셨으며, 세 위격 즉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으로 존재하신다. 세 위 모두 하나님이심에 틀림이 없지만, ‘세 하나님들’이라는 표현을 거부한다. ‘삼신론(Tri-theism)’ 즉, 주체성을 가진 세 종류의 신에 대한 언급이란 오해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은 분명 위격의 구분은 있지만, 영원히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였기에 구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일 삼위 가운데 한 분이 계시지 않는다면, 나머지 두 분도 계실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한 분이 하시는 일은 기능적으로 다른 두 분과의 관계를 전제로 가능한 것이다. 즉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삼위의 모습으로 영원히 함께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삼위일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예를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나무의 뿌리, 줄기, 그리고 가지 등 세 부분으로 한 그루의 나무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예로 삼위일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뿌리, 줄기, 그리고 가지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삼위일체를 선명하게 단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좋은 예는 없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 구조는 우리에게 신비로 남아있다.

우리는 피조물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니신 그 깊은 지혜를 전적으로 알 수 없다. 우리의 제한된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의 깊은 것을 모두 깨달아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제한된 지식이지만 삼위일체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삼위일체에 대한 증거를 성경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다. covenantch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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