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신 애 박사 (시카고 트리니티크리스천칼리지 교수)
오늘의 이야기에서는 가치론 중에서도 윤리학(Ethics)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윤리학(Ethics)이란 간단히 말해서 옳고 그름 및 선과 악에 대한 판단과 그 판단의 근거에 대해 탐구하는 철학적 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옳음과 선함의 원리, 기원, 발달, 및 본질을 상고하며, 윤리학은 우리 삶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 판단의 이슈들 중에서(가치론), 특별히 “어떠한 삶의 상황들, 행위들, 사고방식들, 및 삶의 방식들 등이 개인적으로 또한 공동체적으로 옳은가? 그렇지 않은가? 왜 그러한가?”를 묻고 해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형성됩니다. 그래서 윤리학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행해야 할 올바른 행동은 무엇이며 인간이 마땅히 살아야 할 선한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왔습니다.
이에 구체적으로 인간의 개인적 및 사회적 삶에 있어서 무엇이 바람직한 모습인지, 옳고 그름,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이에 따른 행동 규범들은 어떻게 세워 나가야 하는지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어왔습니다. 윤리학은 따라서 인간의 행위에 관한 여러 가지 이슈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특히 인간간 관계 맺음에 있어서의 다양한 규범, 의미, 선택, 및 가치를 규명하는 일이 윤리학에 있어서 화두라 할 수 있습니다.
윤리학과 관련해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 단지 옳고 그름, 선과 악을 따지는 일반적인 통념, 즉 흔히 우리가 “도덕”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도덕과 윤리가 반드시 언제나 상치되는 것이 아니며 많은 경우 상당 부분 교집합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의 상식선에서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 옳고 그름 및 선과 악의 기준들인 도덕은 사실은 사회적 관습이며, 이에 많은 부분 상대적이거나 상황적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 우리가 위에서 살핀 바 “윤리(학)”는 상대적이거나 상황적인 사회적 관습이 아닌, 이를 초월하는 보다 상위의 보편적 가치에 관한 것입니다. 특정 장소, 사회, 상황, 시간 등에서만 옳고 선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어느 상황에서나, 어느 때나 변함없이 보편적으로 옳고 선한 것에 관한 담론이 바로 윤리학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다음세대와 새로운 신자들을 보편적으로 옳고 선한 삶을 살도록 교육함에 있어서, 그들이 올바른 윤리관(윤리학)을 정립하도록 돕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그러한 삶을 추구하고 또한 실행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며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코람데오(Coram Deo)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윤리관(윤리학)을 정립하도록 돕는 일은 옳고 그름 및 선과 악을 분별하는 불변의 보편적 기준을 제시하는 일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말씀으로부터 옵니다. 이에 우리가 우리 다음세대들과 새신자들에게(물론 기존신자들에게도) 교육하고 내면화 시켜야 하는 윤리관(윤리학)은 바로 성경적 윤리관(윤리학)이라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 및 선과 악에 대한 보편적 판단의 근거가 바로 성경에 있으며, 따라서 성경말씀에 의거해서 옳고 그름 및 선과 악에 대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적 윤리관(윤리학)의 기본 틀이며, 성경으로부터 나온 다양한 구체적인 보편윤리들이 성경적 윤리관(윤리학)의 내용이 될 것입니다(때때로 이는 “기독교적 윤리관/윤리학” 혹은 “기독교 윤리” 라고도 표현이 되는데, 해석상의 스펙트럼이 넓은 관계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성경이 증거 하듯이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그 형상대로 평등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평등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시대와 장소와 상황과 사회를 막론하고 변함없는,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옳고 그름 및 선과 악에 대한 보편적 가치 판단 기준, 즉 인간관계에 대한 성경적 윤리관(윤리학)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조선시대나, 혹은 노예해방 이전의 미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보편적인 성경적 윤리관(윤리학)이 통용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상과 그 사상을 바탕으로 한 삶의 모습 저변의 도덕은, 오히려 사람들 간에는 각자의 사회적 및 문화적 자리가 고정되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질서가 유지되므로 인간에 대한 차별이 합당하며 이에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이를 따르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관습의 잔재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겉으로는 “인간 평등”의 가치를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옳고 그름 및 선과 악에 대한 보편적 가치 판단 기준이라 말하지만, 여전히 속으로는 이를 부정하고 있는 자들이 많고, 따라서 여전히 계급 및 인종차별이 특히나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횡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일을 행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 옳은지 그른지, 선한지 악한지 성경에 비추어 고민하고 평가하는 일 없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 한인들 및 한인 기독교인들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입니다.
우리 한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을 교묘하게 혹은 드러나게 인종차별을 당해왔으며, 우리 또한 흑인들과 히스패닉들에 대해 동일한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는 한인이건 백인이건 흑인이건 히스패닉이건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옳고 그름 및 선과 악에 대한 성경적인 보편적 가치 판단 기준은 인간평등임을 충분히 내면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교회교육에서 이를 책임 있게 정립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며, 심지어 우리 사역자들 자신도 이를 제대로 내면화하고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뿐 아니라 윤리적 타락 및 둔감성, 그리고 인면수심의 범죄들까지 가장 상위의 성경적 보편 윤리의 잣대는커녕 일반 성도들 및 심지어 비신자들도 준수하는 최소한의 도덕 및 법률의 잣대로도 이해하고 용서하기 힘든 일들에 목회자들이 연루되어있다는 소식들이 너무 많이 들려오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렇듯 성경적 윤리관(윤리학)의 내면화 및 정립이 큰 의미를 지니는 만큼, 또한 한인교회 기독교 교육—모든 기독교 교육—은 이를 공고히 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만큼, 성경적 윤리관(윤리학)은 한인교회 기독교교육(모든 기독교 교육)을 위한 철학적 기초로서 단단히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sinaichung@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