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갤럽 2015년 1월 발표 자료에 의하면 90년대 이후 개신교의 증가율은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개신교 신자 수는 1984년 17%에서 19%, 20%, 2004년 21%로 증가하다가 2014년 21%로 정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는 또한 낮은 교회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비종교인을 대상으로 종교 호감도에 대한 조사에서도 개신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불교 25%, 천주교 18%, 개신교 10%). 이것은 앞으로 교회 안으로 들어올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한국갤럽의 자료는 아울러 높은 이탈률을 말하고 있다. 종교간 이동을 조사해본 결과 과거 종교 중 개신교 비율이 66.7%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는 개신교 안에 들어온 사람마저도 바로 붙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그들이 교회 안에 몸을 담고 있는 동안 바로 배우지 못했고,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확실하게 신앙이 성숙되도록 돕는 역할을 교회 교육이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보고서 가운데서도 필자의 관심을 끄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영접한 사람들 가운데 46%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청소년 이하의 시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예수님을 아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교회의 이탈률을 막아야 하는 것과 어린 시절 예수님을 알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은 교회교육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지적하는 대목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교회교육을 담당하는 자들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교회교육이 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교육 현주소를 보면 실망스럽다. 기존 교회에서 장년들을 위한 교육은 일부 대교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 상태이고, 주일학교에 있는 학생들은 교회교육의 변화와 발전이 없어서 실증을 느낀 지 오래되었고, 선생님들마저도 어찌할 줄 몰라 방황해 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이제 교회 교육은 어디로 가야 할 지 그 방향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21세기를 살면서 교회교육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일까? 기존의 교회교육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음은 교회교육의 인식 전환을 필요로 하는 몇 가지 영역에 대한 언급이다. 새로운 교회교육을 기획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교회교육의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위한 일, 첫째는 교회교육에 참여하는 자는 기독교 교육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하고 교육에 관한 입장을 바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기초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가르치는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어떤 교육 활동을 디자인 하느냐가 관건이다. 많은 기독교 교육자는 스스로 성경을 가르치고 교회나 미션스쿨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자신은 바른 기독교 교육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적이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즉 다른 일반 교육자들과 그 생각이나 태도에서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독교 교육자로서의 입장을 분명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어떤 방법론 보다 앞선다. 먼저 교회 교육자는 기독교 인식론
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프랭크 게버라인(Frank Gabelein)은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말을 했다. 이는 곧 이 땅에서 발견되는 어떤 진리도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플라토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언급된 말인데 기독교 인식론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 되신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계시하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라고 한다. 일반계시는 자연을 말하고 특별계시는 곧 성경을 가리킨다. 일반 학문이나 일반 사회 교육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무엇인가? 일반계시와 관계된 것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발견하도록 하는데 있어서 일반 계시만을 주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별 계시를 주셨다. 그것이 곧 성경인데, 왜 하나님이 특별계시를 주시게 되었는가? 그것은 일반계시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교육이란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특별계시에 기초한 교육활동을 말하지만 그러나 이 특별 계시만을 내용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은 일반 계시까지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시의 범주 속에 들어선 것이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이것을 연구하고 탐구해서 그 안에서도 진리를 발견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 교육을 다룰 때 이 모든 진리의 영역들을 전부 다 포함시켜야 한다. 기독교 교육은 성경과 더불어 일반 학문의 모든 영역도 연구의 영역으로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 일반 학문, 또한 삶의 경험 모두를 기독교 교육을 위한 자료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면 기독교 교육의 독특한 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일반계시에서 발견된 진리를 다시 성경의 조명을 통해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기독교 교육의 궁극적인 차이점은 교육의 내용으로 성경을 다루느냐 아니면 일반 계시에 기초한 여러 학문을 다루느냐에 차이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물을 보면서 또한 모든 진리를 이해하면서 그것들을 성경적인 관점으로 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교육하는 자가 성경에 기초한 관점(Perspective)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교회 안에서 성경 내용을 가르칠 때 이 ‘관’이 없이 가르친다면 그것은 비기독교적일 수 있다.
또한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우리는 학습자를 볼 때도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먼저는 ‘모든 학습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유한 무한한 가능성 있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학습자는 타락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다음은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알아야 될 필요가 있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그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그를 구주로 영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는 ‘달란트를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비록 배우는 자들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했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 형상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갖고 있고 그것을 사용하여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존재라는 의미이다.
학습자를 볼 때,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를 우리가 좀 유념할 필요가 있는데 그들을 단순히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을 자로만 보아 넘겨버리면 안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학생들을 가르칠 때 우리는 그들의 영적 구원만 돕는데 관심을 두어 그 곳에 머무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우리가 주의해야 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독교 교육자로써 우리에게 맡겨진 중요한 책무 중의 하나인데 곧 학생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 앞에서 받은 달란트와 은사를 보고 그것을 개발해서 그것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데까지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기독교 교육자, 교사의 역할 을 이야기 할 때 에베소서 4장 16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
배우는 자로 인격적인 온전함뿐만이 아니라 그가 행하는 일까지 온전토록 하기 위해서 세움을 받은 사람이 곧 교사라는 것이다.
가르치는 자로서의 정체성도 분명히 해야 한다.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가르치는 일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이후 좀더 성숙해서 좀 덜 성숙한 사람들을 돕는 행위를 가리킨다. 기독교 교육에서는 가르치는 일이 영적 성숙의 개념에서 상호 돕는 일로 언급되고 있다. 단순히 어떤 정보를 많이 알아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자로서 연약한 자를 도와주는 것, 그것이 곧 가르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가 스스로를 보면서 “나는 이만큼 성숙한 자로서 이보다 덜 성숙한 사람을 도와서 내 수준으로 까지 끌어 올릴 책임과 의무가 하나님으로부터 내게 주어져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가르치는 일에서 제외될 사람이 없다. 우리 모두는 다 연약한 어린 심령들, 연약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도와야 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기독교 교육을 행함에 있어서 가르치는 자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서도 일반 교육자와는 달라야 한다.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르치는 자의 태도에 관해서는 성육신 하신 예수님에게서 잘 나타나 있다. 이 성육신은 예수님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리를 포기하셨음을 의미한다. 그는 자기가 누릴 수 있는 영광을 포기 하셨다. 자기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포기 하셨다. 그리고 사람과 같이 사람의 모양을 입으셨다.
청소년 사역의 디딤돌을 놓은 사람으로 알려진 짐 레이번(Jim Rayburn)이라는 미국의 영 라이프(Young Life)사역을 시작한 분이 있다. 그가 청소년 사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성육신의 모델을 사역에 접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 사역이 잘되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는데 담임목사가 하는 말이 “교회에 있는 학생들은 내가 돌 볼테니 당신은 학교로 가라”는 것이었다. 그는 학생들이 교회로 오기를 기대하지 않고 학교로 갔다. 이것은 1930년대에는 전혀 새로운 접근이었다. 그는 이렇게 해서 청소년 사역의 철학과 방법론의 기초를 놓았다. 우리는 청소년을 접할 때 그들의 입장에 내려가서 그들을 이해하는 쪽에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우리는 기독교 교육을 위한 목표도 선명해야 한다. 기독교 교육의 목표를 이해하려면 세 가지의 성경구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 에베소서 4장 13절과 골로새서 1장 28절이다. 먼저 디모데후서는 성경의 목표를 말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교육의 목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가르침의 중요한 사역이 성경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본문은 성경이 교훈과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하는 기능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는 일과 선한 일을 하게 하는 데 사용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결국 성경을 가지고 사역하는 사람은 바로 사람을 인격적으로 온전케 하고 그들로 봉사의 일을 하도록 하는 열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 완전한 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이는 곧 영적으로 성숙한 자를 지칭한다. 영적으로 성숙한 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과의 개인적 만남의 경험과 그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는 곧 지, 정, 의 세 영역에서 균형 있게 성장한 사람을 말한다. 기독교 교육을 통해서 우리는 배우는 자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의 뜻을 잘 알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며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되고 또한 머리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하며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이웃을 부요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기독교 교육의 독특성은 바로 이 가르치는 영이신 성령의 사역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일하시는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영적인 역동성을 일으키는 존재이다. 교사로서 성령은 하나님의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고, 이해하도록 하며, 상담을 해 주고, 강하게도 하고, 지식과 진리를 제공하고, 또 모든 학습 상황에 있어서 도움을 주고, 영적인 지혜를 제공해 주며, 또 하나님과 관계된 지식을 깨닫도록 한다. 또한 성령은 도움을 주는 자로서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상황 속에서 크리스천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전을 주며, 또 격려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자들은 그 앞에서 겸손해야 되고 날마다 교육적인 실제 속에서 성령이 일하실 수 있도록 늘 민감해져야만 한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