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오 여전히 선두, 피오리나 바짝 뒤따라

루비오 여전히 선두, 피오리나 바짝 뒤따라

[“나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처럼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많이 다녔다. 그런데 그건 활동(activity)이지 업적(accomplishment)이 아니다. 그 차이를 안다는 게 (힐러리와) 다른 점이다. 힐러리 전 장관은 업적이 무엇인지 얘기해야 한다.” “미국의 모든 여성들이 당신이 한 말을 똑똑히 들었습니다(트럼프가 최근 피오리나의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역공에 나섰다).” 한때 ‘정보기술(IT)의 여제’로 불렸던 칼리 피오리나 전 HP 회장의 주가가 상종가로 치솟고 있다. “클린턴 대세론”과 “트럼프 돌풍”에 맞서, 공화당 경선 주자들 틈에서 거의 유일하게 ‘말이면 말, 정책이면 정책’으로 공화당내 지지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결국 CNN 주최로 열린 지난 2차 공화당 경선 주자 토론회에서 하늘로 치닫을 것 같았던 트럼프의 아성을 정면 공격하고,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과 함께 토론회의 승자로 선정되기도 한 피오리나 후보는 최근 월드지가 103명의 기독교 리더들에게 물은 설문에서도, 순식간에 2위로 수직상승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Rubio, Fiorina, and Cruz up among evangelical insiders).]

물론 월드지가 실시하고 있는 설문조사는 미 복음주의 진영 전체 의견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복음주의 진영을 실제로 이끌고 있는 리더들이 이제 성큼 다가온 ‘2016 대통령 선거에 대해 어떠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희망들을 가지고 있는 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번 설문에서 두드러진 승자는 칼리 피오리나 전 HP 회장이다. 물론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설문에 참여한 복음주의 리더들의 지지를 연거퍼 받아, 계속해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피오리나 후보가 2위로 수직 상승했기 때문이다. 피오리나 전 회장은 1999-2005년 HP의 CEO로 근무하는 동안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100대 인물’에 올랐다. 그러나 재직 시절 대규모 구조조정, 2005년 HP와 컴팩의 합병 이후 전격 경질 등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10년엔 공화당 후보로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의 상대적으로 취약한 정치경력 때문에 일부 언론은 “그의 목표는 결국 ‘러닝메이트 부통령 후보’ 자리일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측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힐러리 전 장관은 리더십이 뭔지 모르는 것 같다. 국무장관 재직 당시 ‘개인 e메일’ 사용 논란에 대한 해명을 듣다 보면 전직 장관, 상원의원,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신뢰감이 더 떨어진다”고 지적할 정도로, 힐러리 후보의 신뢰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지난달 16일 저녁,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근교 시미밸리의 로널드 레이건 기념도서관에서 진행된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 2차 TV토론회에서, 트럼프를 궁지에 몰아붙여 우세를 보였다고 평가 받은 후보로, 루비오 상원의원과 함께 그녀가 선정됐다. 미국 정치인의 인기도를 주가로 환산한 방식으로 측정하는 ‘프레딕트잇’에 따르면 이날 토론 직후 ‘2차 토론의 최대 승자가 누구인가’를 주제로 이뤄진 거래에서 피오리나의 주가(70센트)는 전날보다 16센트나 상승했다. 루비오 의원의 몸값(23센트)도 11센트 올랐다. 토론에 나선 11명 후보 가운데 주가가 전날 대비 오른 정치인은 이 두 명밖에 없었다.

워싱턴포스트도 피오리나와 루비오 의원을 토론회 승자로 평가했다. 폭스뉴스가 진행한 지난 달 토론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1부 리그’로 올라온 피오리나는 이날도 낙태와 약물 중독 등의 문제를 감성적이면서도 직설적으로 제기해 큰 박수를 받았다. 루비오 의원 역시 발언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는데도, 이란 핵 협상과 이민문제 등 당면 현안 전반에 걸쳐 핵심을 꿰뚫는 답변을 내놓았다. 공화당 잠룡 중 유일하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솔한 사과를 요구했던 루비오 의원은 이날도 한국을 중시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대통령이 된다면 전용기로 방문할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이스라엘과 한국, 일본 등 동맹국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미국 정치인들이 동맹국 호칭에서 일본을 앞세우는 것과 달리, 주저 없이 한국을 먼저 거명했다.

한편 피오리나는 트럼프가 자신의 외모를 언급한 데 대해 “이 나라 여성들이 트럼프 후보가 한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청중들의 박수와 환호를 이끌어냈다. 트럼프는 “피오리나가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다고 생각한다”고 꼬리를 내렸다. 두 사람은 경영 능력을 놓고도 말씨름을 벌였다. 트럼프가 ‘HP를 망친 경영자’라고 공격하자, 피오리나는 ‘카지노 사업으로 엄청난 빚을 진 사람이 트럼프’라고 반박했다.

보수 진영의 싱크 탱크인 헤리티지 재단 이사이자 글로스터 연구소의 회장인 케이 콜스 제임스는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 정책 입장, 무엇이 쟁점인지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 등이 공화당 진영 유권자들에게 어필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루비오 후보가 복음주의 진영의 대세로 굳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무려 57%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텍사스라는 유리한 신앙적 고지를 발판으로, 오바마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는 테드 쿠르즈 상원의원이 지지를 받고 있다.

이처럼 루비오나 쿠르즈 그리고 피오리나 등 신앙의 인물이면서도 정치나 경영에서 검증이 된 후보군들이 복음주의 진영 리더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가 있다. “맨해튼 선언(the Manhattan Declaration, 2009년 11월 기독교 진영 리더들이 오바마 정권의 진보적 정책들의 과잉에 따라 생명의 신성함, 전통적 결혼, 종교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시민불복종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선언) 사무국장, 테셀(Eric Teetsel)은 그 이유를 명료하게 말해준다.

“팻 로버슨, 마이크 허커비, 그리고 릭 센토럼의 성공은 공화당내 유력한 지지자들인 복음주의 진영의 영향을 보여주었다. 다만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러나 “루비오 후보는 생명, 결혼 그리고 종교적 자유에 대한 분명한 신앙 천명과 함께 정책 차원에서도 돋보이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카리스마와 함께 커뮤니케이션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어 차기 대선에서 승리에 목말라하는 복음주의 유권자들(44%)을 사로잡고 있다”고 루비오 의원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복음주의 리더들이 대권 주자를 결정할 때 우선순위로 여기고 있는 정책 쟁점들은 1)미국내 종교적 자유 2)낙태 3)외교 정책 4)결혼과 가정 5)대법원 판사 임명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