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18역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어떤 나라일까? 내게는 미지의 세계였다. 얼른 한 영상이 스쳤다. “부르카(Burka)로 전신을 가린 체 눈만 빼꼼히 내 놓은 여자들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무섭고 경직된 사회라는 인식이었다. 나는 금년 초 주님 은혜로 이 나라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 일행은 1/14 일 출발했다. LA 공항에서 탑승을 대기하고 있었다. 내 옆에 히잡(Hijab)을 쓴 여인이 있었다. 12시 정오였다. 그녀는 일어나 기둥 옆 코너로 갔다. 이어서 메카를 향해 연거푸 절을 하며 기도를 했다. 나는 그 광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렇게 혼잡한 곳에서도 신앙행위를 한 모습에 도전이 되었다. 우리를 태운 터키쉬 항공은 북극항로를 따라 눈 덮인 그린란드를 거쳐 이스탄불에 기착했다. 출발이 지연된 관계로 뛰다시피 해 사우디 제다 행 비행기를 갈아탔다. 오랜 비행 끝에 우리는 사우디 영공에 이르렀다.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긴장이 되었다. “주님! 저희를 지키시고 여정을 평탄케 하옵소서. 볼 것을 보고 들을 것을 듣게 하옵소서. 특별히 이땅 백성들에게도 긍휼을 베푸시사 생명의 빛으로 자유케 하옵소서.”
1. 공항에서 만난 순례객들
1/15밤 7시경 기체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제다(Jeddah)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대에 섰다. 많은 순례객들이 줄지어 있었다. 속옷도 입지 않은 체 한얀 도포로 몸을 대충가린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추울 텐데 괜찮을까? 저들에게서 고난의 흔적을 보았다. 이슬람 계율에 따르면 하지(Hajj)는 다섯 기둥 중 하나로서 모든 무슬림들이 경제적, 신체적으로 가능할 경우 일생에 한 번은 메카 성지 순례를 해야 한다. 메카는 제다에서 70~80km 떨어져 있다. 그리 멀지 않기에 순례객들은 이 공항을 통한다. 따라서 제다 공항은 년 중 참배객들로 분주하다. 우리 일행은 또 다시 국내선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최종 목적지는 타북(Tabuk)이었다. 새벽 4시 정도였다. LA 집을 떠난 지 32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피곤이 엄습했다. 사우디와 미국은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다. 모든 것이 다른 두 나라! 나는 이 거리만큼이나 마음의 거리도 있었음을 느꼈다.
2. 모세의 우물과 이드로의 고향
1/16 목요일, 우리는 아침 겸 점심을 호텔에서 먹었다. 긴 비행시간 탓인지 여독이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려운 걸음 했는데 쉴 수만은 없었다. 11:45am 지프차로 나뉘어 타고 미디안 땅으로 행선했다. 오늘 방문할 곳은 모세의 우물이 있는 이드로(Jethro)의 고향이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광야는 신기했다. 사막과 광야의 차이는 무엇인가? 바로 연 평균 강수량250mm여하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이국적인 정취를 즐기며 주행했다. 타북 시에서 남쪽으로 2시간30분 쯤 달리니 이드로가 살았다 던 동네가 나왔다. 황토색의 구릉지 언덕에 듬성듬성 주거(住居) 굴들이 보였다. 시신을 매장했던 곳도 있었다. 모세가 십보라를 만났던 우물도 가 보았다. 지금은 폐쇄되어 샘 안을 볼 수 없었다. 정말 모세가 이 광야에서 40년을 살았단 말인가? 가능하다면 타임머신(Time Machine)을 타고 3,500년 전으로 가 당시의 생활상을 보고 싶었다. 그나저나 이 땅은 강우량이 적고 도회지가 아니기에 태고적 환경이 크게 변형되지 않았을 것이다. 불현듯 고려 시대대 길재가 쓴 시조가 떠올랐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찾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모세여 나오라, 십보라여, 이드로여 지금 어디 있는가? 아무리 불러 보아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
3. 르비딤 반석이 있는 곳
1/17금요일이다. 우리는 타북 시 북서쪽에 있는 르비딤 반석이 있는 곳으로 갔다. 도로 양편의 바위산들이 아름다웠다. 조각 목 나무들도 듬성듬성 보였다. 이따끔 거니는 낙타들도 있었다. 꽝 마르고 불쌍하게 보였다. 거친 광야에서 생존 자체도 쉽지 않으리라! 르비딤 반석은 두 조각으로 난 큰 바위였다. 마치 두 손을 합장하고 있는 듯하였다. 우리는 그 반석이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상당한 높이였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200만 이상의 출애굽 백성들이 이 광야에 장막을 친 광경을 연상해보았다. 물을 달라 아우성쳤던 저들의 소리가 얼마나 애절했을까? 광야에서 목마름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따라 지팡이로 바위를 쳤다. 생수가 콸콸 쏟아져 나온 것이다(출17:1-7). 야! 그 때의 함성이 들릴 것만 같았다. 이후 아말렉이 쳐들어왔다. 한 시도 평안할 날이 없는 이스라엘이여! 모세와 아론, 훌은 산꼭대기에서 기도로 나아가고 여호수아는 산 아래서 싸웠다(출17:8-16). 결국 승리했다. 모세는 제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Jehovah-nissi)”를 외쳤다. 뜻 깊은 장소에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가 바위 산에서 내려오니 사우디 가이드들이 메추라기를 구어 주었다. 광야의 텐트 안에서 먹은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에, 우리가 출애굽 때의 그 새고기를 먹어 볼 수 있다니 이 무슨 은혜인가! 만나 비슷한 것이라도 있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였을 것이다.
4. 홍해바다
1/17 오후였다. 우리는 점심 후 아카바 만(Gulf of Aqaba)으로 갔다. 모세가 출애굽한 후 바다를 가른 장소가 여기란 말인가? 여러 학설이 있지만 이 장소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모자가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었다. 바다 물은 감청색이었다. 창해(滄海)에 서니 가슴 속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넓은 모래 자갈밭은 광활했다. 맞은편은 비하히롯(Pi Hahiroth) 앞 곧 바알스본이다(출14:2). 협곡 사이의 길을 따라가면 누웨이바 (Nuweiba)해변이 나온다. 그 곳은 300만 명 이상이 머무를 수 있는 삼각주가 형성되어 있다. 홍해바다를 건넌 기념으로 솔로몬이 만든 돌기둥이 아직도 그 곳에 있다 한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1-13). 기적의 현장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그저 느끼고 묵상할 뿐이다.
5. 시내산 등정
1/18 토요일이었다.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Highlights)였다. 우리는 새벽 5시에 출발했다. 대원은 총 11명이었다. 사우디 가이드 3명이 동행했다. 지프차 3대로 어둠을 가르며 달려갔다. 산 입구에 내려 등산 장비로 무장했다. 매우 추었다. 서서 간단히 요기(療飢)했다. 아직 일출이 안 되었으나 산 정상이 어렴풋이 보였다. 사우디에 있는 시내산은 해발 2850m이다. 백두산 2744m 보다 높다. 등정하는 데만 5~6시간이 소요되는 매우 가파른 산이다. 우리는 해가 솟을 무렵 등산을 시작했다. 길이 없는 돌, 자갈, 바위 사이를 헤치며 전진했다. 조금 가니 70~80 도 이상의 경사진 곳에 맞닥뜨렸다. 상당히 위험했다. 두 손과 발 등 전신을 밀착하며 한걸음씩 나아갔다. 평상 시 운동을 않다 등산하니 숨이 혁혁 찼다. 모세는 어떻게 이 험한 곳을 8번이나 등정했을까? 사우디 청년 가이드는 제비처럼 사뿐사뿐 잘도 올라갔다. 가다 쉬고를 반복하며 마침내 12시 정오에 정상에 이르렀다. 정확히 4시간 만이었다. 우리 일행은 비록 나이 들어도 왕년의 가락들이 있었다. 시내산 윗부분은 검은 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풍화작용일까? 아니면 하늘 불이 저 곳에 임해서일까? 나는 지팡이를 든 체 제일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가 섰다. 전능자께서 모세에게 주신 시내산 언약(출19:5-6)의 말씀을 목청껏 외쳤다.
6. 나머지 일정과 수확
1/19 주일, 7:45am우리는 호텔 회의실에서 약식 예배를 드렸다. 사우디 한 복판에서 감히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며 찬양을 한 것이다. 호텔에서 준비한 Breakfast는 맛깔스러웠다. 일행은 시내산 근처12돌 재단과 금송아지 사건으로 3천명 가량이 죽었다는(출32장) 무덤 터가 있다는 곳으로 갔다. 1/20 월요일, 마지막 날이다. 모든 일행은 호텔Check out 후 9:00am에 출발했다. 목적지는 황량한 광야 가운데 있는 고고학 유적지였다. 사우디의 태양 빛은 강렬했다. 비포장 도로에서 차량 문제라도 생기면 정말 난감할 것 같았다. 외진 곳이라 화장실이 없어서 곤란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큰 차질없이 일정을 잘 소화했다. 환우도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짬을 내어 갖은 경건의 시간과 특강도 유익했다. 이렇게 귀한 Trip을 입안하고 이끌어주신 SemapoHodos 대표인 켄안 선교사님과 정성껏 섬겨주신 사우디 형제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금 번 일정의 주된 수확은 무엇인가? 첫째는 비록 일부지만 사우디 땅에 발을 딛고 이들의 생활환경과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가 사우디 맞나? 싶을 정도로 개방되어 있고 사람들이 친절했다. 둘째는 시내산, 홍해 등 모세 5경에 기록된 역사적 장소들을 직접 탐방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이재환 선교사님을 비롯하여 여러 단체장들과 함께 교제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맺음 말
1/20 오후, 우리는 타북(Tabuk) 공항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지난 1주일을 회상해보았다. 먼길 왔는데 벌써 떠난다니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나는 현지인 팀 리더인 아달랴와 악수하며 헤어졌다. 그와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바가 있었다. 이제 차도르(Chador)를 걸친 무슬림 여자들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매일 5번씩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 (Adzan)소리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사우디 대추와 홍차도 생각이 날 것 같다. 1주일 새 내가 많이 변한 것일까? 이 땅을 떠나면서 언제가 다시 와 바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도라 상자를 열듯 미지의 세계이자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나면서 나는 한 마디 탄원(歎願)을 했다. “여호와여! 주님의 눈과 마음이 여기에도 항상 있으시옵서! ”
P. S. 고고학적 논증
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시내산은 어디인가? 일반 학설로 13군데가 있다 한다. 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 이집트 시내 반도 (Sinai Peninsula)끝자락에 있는 곳이다. 근자에 들어 사우디 타북 주에 있는 곳이 회자(膾炙)되고 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건넜다는 홍해와 다른 지명들의 위치도 학자마다 이견이 있다. 하기야 3,5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뚜렷한 유적이나 자료가 없는 한 그 어떤 곳도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 위치를 추적하는 것은 고고학자들의 몫이다. 우리 개신교는 성상(聖像)을 거부한다. 자칫하면 그 것들이 성경 말씀보다 우선시 되며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던 장소 문제도 이런 맥락 가운데서 이해하면 될 같다.
Jrsong007@hanmail.net
02.22.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