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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예배?

정성구 박사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내가 처음 스위스를 가본 것은 1972년이었다. 마침 주일이 되어 취리히(Zurich)에 ‘물교회’ 즉 쯔빙글리(Zwingli)가 목회하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그 교회를 ‘물교회’라고 한 것은 교회의 기둥 절반이 쥐리히 호숫가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날따라 성찬식이 있어서 나는 스위스 개혁교회의 예배를 처음 드리게 되었다. 

쯔빙글리는 칼빈(J. Calvin)과 더불어 스위스가 낳은 위대한 종교개혁자였다. 나는 그 교회에서 예배드린 것이 그렇게도 자랑스럽고 감사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꼭 14년 후에 마침 헝가리 데브레첸에서 열린 세계 칼빈학회 참석차 취리히에 머물면서, 다시 그 교회를 찾아가서 주일예배를 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 교회 앞마당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교회 문이 열리지 않고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하도 답답해서 교회당 문을 두드리니 관리인이 대문에 달린 조그마한 창을 통해서 말하기를 “이 교회는 문이 닫혔습니다. 숫자가 줄어들어서 이웃교회와 합해 버리고 이 교회는 없어지고 지금 박물관이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순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고, 어찌하여 종교개혁의 본산지, 그것도 쯔빙글리가 목회하던 교회가 문을 닫고 박물관이 되었다니…하면서 울분이 쳐 올랐다.

그래도 나는 주일이므로 교회 마당 의자에 앉아서, 혼자 예배를 드렸다. 찬송 몇 장을 부르고 오래 동안 기도하고 성경을 암송하고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말하자면 나에게는 일인 예배였다. 이것이 내가 경험한, 서구 교회의 문 닫은 교회 앞에서 혼자 예배를 드린 나의 씁쓸한 경험이 오래 오래 가슴에 남는다.

“뭐! 비대면 예배라고?” 비대면 예배란 없다. 그거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모르지만 그건 예배가 아니다. 예배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에 만남(Ontmoeting met God en Zijn Volk)이다. 그 만남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신앙고백으로 우리의 죄악을 용서받고, 기도로 우리의 연약을 아뢰고, 주의 종의 복음적 말씀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 생명의 메시지를 듣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하고, 각자의 일터에서 소명(召命, Calling)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하는 것이다. 

예배가 없으면 교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예배가 없으면 이미 교회는 죽은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는 죽어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Institute, Ⅳ, ⅩⅦ, 44 p.14)에는 “교회의 어떤 집회도 말씀과 기도, 성만찬의 집행, 헌금을 드리는 일이 없이는 열릴 수 없다”고 했다. 여기서 예배란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집단예배(Corperate Worship) 즉, 공중예배를 의미한다. 

그러면 “개혁교회의 예배의 본질”에 대해서 몇 가지 말해보자. 

첫째,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과 더불어(With God)의 예배여야 한다.’ 즉, 예배는 하나님과 함께 할 때만이 예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의 모든 순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며, 응답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우리의 힘이 아닌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둘째, 개혁파 교회의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으로부터(of God)의 예배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지 않으셨다면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인간 자신의 방법으로 예배하는 것은 도리어 하나님께 욕을 돌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다.

셋째, 개혁파 교회의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Unto God)이다.’ 오늘날 많은 한국교회 예배들이 매우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효과를 얻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 헌금을 많이 나오도록 의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예배하고 있다면 잘못된 예배인 것이다. 예배의 목적이 자신의 위안과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화려한 쇼나 재미있는 개그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청중을 울고, 웃기는 일에 만족을 주고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예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정부에서는 아예 교회가 ‘비대면 예배만 하라!’는 행정명령을 강행하고 있다. 이 말은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것과 같다. 그러니 지금 정부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예배를 정치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을 최고의 목적으로 세운 나머지, 이른바 온라인 예배가 익숙해 있었다. 그러니 비대면 예배는 곧 온라인으로 전환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온라인 예배는 처음부터 예배가 아니었고, 그냥 예배장면을 눈으로 보는 것이었다. 예배는 보는 것도 아니요, 구경하는 것도 아니다. 예배란 “하나님께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것이다.” 예배는 온전한 헌신으로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당국에서 ‘비대면 예배’를 강요했을 때 아무 말도 못하고, 고운 새색시처럼 순종만 하고 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성경의 말씀을 오해했는지, ‘불법에 순종하는 것이 예배보다 나은 것인지!’ 지금 한국교회는 스스로 함정에 빠진 꼴이 되었다. 그렇게도 말 잘하는 목사들이 어째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는가? 신학을 잘못 배웠거나 양심불량이 아닐까?

나는 자꾸 35년 전에 종교개혁자 쯔빙글리가 섬기던 교회가 문을 닫아서, 혼자 교회 앞마당에서 예배드리던 생각이 자꾸 난다.                                                                      

skc0727@yahoo.com

09.1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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