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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모의 영성 가꾸기(4)

황순원 사모 (CMF사모사역원 원장)

사모의 영성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삼순영성을 들 수 있습니다. 삼순영성이란 첫째, 순결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둘째, 순종을 위해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셋째, 순교를 위해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씻기시려고 이미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신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나를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주님의 뒤를 따르기 위해 십자가 지고 시작된 사역자들의 사모들이 흘리는 눈물은 고귀합니다. 성도들을 위해 울고 남편을 위해 울고 그토록 죽지 않는 자신의 자아를 죽이기 위해 흘리는 눈물은 이제 거름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서가신 신앙의 선조들의 많은 눈물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한국 초대교회 사모들의 눈물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교회의 부흥은 맛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배고파서 울고 성도들의 시집살이가 고달파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남편을 향한 실망감에서 울고 또 울던 사모들의 눈물은 오늘 한국교회의 부흥을 낳았습니다. 많은 울음의 종류 중에 가장 건강에 좋은 울음은 회개의 눈물입니다 그 눈물은 웃음보다 몇배의 유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순결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사모들의 영성을 더욱 맑게 해줍니다. 남편 목사를 헐뜯기라도 하면 무조건 사모는 엎드려 눈물부터 흘렸습니다.

“목회자 자녀가 왜 저래?”라는 소리라도 들리면 사모들은 죄책감을 갖고 회개부터하곤 합니다. 혹여 성도의 자녀와 다툼이라도 하게 되면 무조건 목사 자녀가 핀잔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억울하고 속이 뒤집어지는 것을 느껴도 누구에게 항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주님 앞에 엎드려 통곡을 하게 됩니다 교회가 부흥을 멈추기라도 하면 사모의 책임이라고 단정 지으며 모든 책임을 사모에게 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목회자들까지도 사모의 심정을 알아주지 못한 채 조그마한 불평이라도 하면 기도하지 않아서 그런다고 핀잔을 주며 기도할 것을 촉구하기도 합니다. 사모의 업무가 너무 힘겨워 지쳐 몸살이라도 나서 남편에게 기도를 받고 싶어 하는 때도 사모들에게는 있습니다.

그런데 대장간에 칼이 없듯이 목사님들은 사모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더 서러워집니다. 다른 평신도들을 위해서는 의례껏 심방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다가도 사모가 아파 누워 있으면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오히려 핀잔을 줍니다. 어떤 사모는 심방 요청을 위해 신청서를 작성하는데 목사님 사택의 주소를 적어 올렸다고 합니다. “심방 요망”이라고 써서 제출을 할 정도였답니다. 사모들의 영성을 ‘자가 발전소’라 생각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울게 되고 더 많은 눈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현대목회자들의 경우 이제는 더 이상 울고만 있을 수 없다고 밖으로 뛰쳐나오는 경향이 많아졌습니다. 이제 나름대로 사모들의 세상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들은 사모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아직도 곳곳마다 열악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순결을 위해 십자가 밑에 엎드려 흘리는 눈물은 마르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프로그램들이 사모의 영혼을 만족시켜 줄 수는 없습니다. 위로를 위한 온갖 프로그램들이 필요하긴 하지만 진정 주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통회 자복하는 시간만큼은 그 어떤 것 앞에서도 빼앗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회개하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 사모들의 영성은 행복합니다. 맑고 맑습니다. 그들에게는 복음의 생명이 날마다 마르지 않고 흘러내립니다. 이 생명이야말로 남편인 목사에게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고 자녀들에게도 생명력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순종을 위해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한계가 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다 헤아려 알 수가 없습니다. 안타깝게 호소해오는 하나님의 간절함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순종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순종에는 이해가 필요 없습니다. 순종하는 습관을 주시려고 때로는 광야학교로 입학시키십니다. 그 학교의 커리큘럼 안에는 이해과목이 없고 대신 순종과목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이해하고 순종하려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하나님은 고통이라는 매개체를 주셔서 결국은 순종하면 하나님을 알게 되는 큰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순종의 훈련장으로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은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사랑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순종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배우자는 그 사랑이 입증이 되지 않습니다. 보이는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거짓입니다

잘나고 똑똑한 사모들이나 사역자들을 보면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헌신은 잘 하면서 남편 앞에 순종하고 복종하기는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그 이유도 확실하게 있습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면 분명 일이 틀어지고 실패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자녀들이 사춘기가 되어 부모를 거역하기 시작하면 자존심 전쟁이 시작됩니다. 자녀들 앞에 부모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그들과 싸움이 시작됩니다. 남편 앞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알량한 자존심을 죽이기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자녀들 앞에서도 부모의 권위 및 자존심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 앞에서는 거룩함을 나타낼 수 있지만 이런 자녀들 앞에서 나의 자존심을 죽이기란 너무 힘든 일입니다. 남편 앞에서 자존심을 죽이는 일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순종하기 위해서는 눈물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잘한다고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자기의 의가 강해져서 남을 가르치려 하며 자신의 이론을 가장 옳다고 주장하기 쉽습니다. 남편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한다고 하는 사모일수록 성경도 영적 체험도 더 많이 하는 사역자일수록 배우자를 가르치려 들기 쉽고 더 자녀들 앞에 군림하기 일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순종이 따라야 하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말에 순종하거라 하나님의 명령이 바로 내가 가장 하기 싫은 남편을 순종하기 입니다. 다른 것은 다 할 수 있어도 남편에게 순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부부싸움은 큰일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극히 사소한 일에 자존심이 상하게라도 되면 그냥 지나갈 수 없어 큰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도 관용을 베풀기가 쉬운데 왜 유독 남편 앞에서는 속이 상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가 되는 것일까요? 남의 자녀가 실수하는 것에는 그렇게도 너그러워 오히려 그의 부모를 위로해줄 수 있는 여유조차 있어도 내 자식이 실수하는 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야단이 나는 것일까요?

이것은 엄밀히 살펴보면 나의 욕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남편도 나의 남편이기에 내 자존심을 상하게 했기에 견딜 수가 없는 것이고 자식도 내 자식이 실수를 했기에 내 명예를 손상시켰기에 못 견디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결국 자기의 기준에서 하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철저히 자기의 자존심을 내려놓기 위해서 우리는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이 눈물은 진실 됩니다. 진정한 나의 자아가 죽는 소리입니다. 이 눈물이 거름되어 진정한 순종의 꽃이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이 땀에는 들어있습니다. 배우자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메일:hwangsun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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