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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야성을 키우라 (열왕기하 18:3-8)

김경열 목사 (뉴욕영안교회)
김경열 목사

( 뉴욕영안교회)

풍산개와 셰퍼드가 싸우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셰퍼드는 풍산개보다 덩치가 1.5배 이상 차이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셰퍼드가 공격을 계속하면, 풍산개는 이리저리 피해 다녔습니다. 잠시 셰퍼드가 집중력이 흐려진 틈을 타서 갑자기 한 번에 목을 물고 늘어져서 이겼습니다. 덩치 큰 셰퍼드가 작은 풍산개를 이기지 못하는 까닭은 길들여짐이 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셰퍼드는 지키는 개, 혹은 수색견으로 훈련되고 사용되어 집니다. 그러나 풍산개는 사냥견입니다. 지키고 수색하는 셰퍼드는 야성을 잃었고, 싸움을 위한 사냥견인 풍산개는 야성이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크리스천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감성이 잘 발달 되어 교회에서 예배는 잘 드리고 기도도 잘합니다. 지성이 발달 되어 말씀의 원리를 삶에 적용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영성이 사라졌습니다. 바로 야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야성인 밧데리가 완전히 방전되었는데도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치열한 싸움의 현장이 없어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기독교 복음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신앙생활 하는 데 고통이 많았습니다. 기독인들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고, 신앙을 방해하고 비아냥거림이 아주 심했습니다. 마귀 사탄들이 그냥 보고 있지 않고, 환란과 핍박을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제사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로 많이 걸리기도 하고, 외세 종교라는 편협된 오해도 많았습니다. 그러할 때는 오히려 신앙에 야성이 살아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매 맞는 것은 예사고, 집에서 쫓겨날 각오를 하면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때로 직장도 잃었고, 재산상의 피해를 보면서도, 죽어도 믿겠다는 고집과 당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숫자가 늘어나고 사회적으로 문화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신앙에 어느 정도의 보호막이 쳐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야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혈통은 여전히 좋습니다. 덩치도 더 커졌습니다. 울타리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정작 세상 권세와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싸움에 나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그런 신앙인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야성을 잃어버린 크리스천은 타협하고 타락하게 됩니다.

다윗은 감성이 뛰어나지만, 야성을 잃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두 번 실패한 일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밧세바의 사건 때이고, 다음은 노년에 인구 조사 한때입니다. 늘 하나님께 기도로 여쭙는 다윗이, 두 사건을 두고는 기도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혹독한 채찍을 가하셨습니다. 안일에 빠지게 되면, 반드시 고난이 다가옵니다. 아니, 고난 당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다행입니다.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배부르고 등 따습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낄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조지 바나가 지적한 것처럼 주전자 속의 개구리가 물이 점점 뜨거워지는 데도 알지 못하고 잠들어 있다가 죽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어둠의 영과 싸워야 할 십자가의 군병들입니다. 싸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군인은 군인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의 영성에 야성을 키워야 합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싸워야 합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좋은 멘토를 만나야 합니다. 처음 믿을 때 믿음이 좋은 사람 만나면 좋은 신앙을 배웁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믿음이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주일도 바쁘면 빠지고, 십일조도 적당하게 드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런 신앙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 좋은 신앙의 멘토를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히스기야는 다윗 왕을 멘토로 삼았습니다. 그는 25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왕이 되어 나라를 잘 다스려 볼까 고민하며, 조상 중 어떤 왕이 정치를 잘했나를 알아보니, 다윗 왕이었습니다. 3절에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소개합니다. 다윗 왕이 걸어간 길을 히스기야도 걸어가려고 힘썼습니다. 히스기야는 영성과 야성이 강한 다윗을 신앙의 멘토로 삼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마자, 산당을 부숴버리고 목상을 찍어내는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히스기야와 함께 하시며 가는 길을 형통하게 축복하셨습니다. 이런 신앙의 야성을 가질 때,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크리스천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히스기야를 통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사는 것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스기야의 야성을 본받아, 우리 신앙의 야성을 키우고자 합니다.

 

1.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했습니다.

 

히스기야는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3절)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살았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면서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사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 가는 더 중요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중심’을 보시고, ‘나의 말’을 들으시고, ‘나의 행동’을 보신다는 코람데오의 신앙, 즉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중요합니다. 실수가 많고 허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돌아올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버리지 않고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다윗이 그러했고, 베드로가 그러했습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음은 하나님과 성령이 거하는 전이라고 했습니다. 몸이 성전이요, 마음이 예배라야 합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무의 뿌리와 같습니다. 뿌리가 튼튼해야 좋은 열매를 맺듯이,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성경에 쓰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마음이 정직했습니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뽑는 첫 번째 기준을 마음 중심에 두셨습니다. 사실 다윗은 허물도 실수도 많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이 바로 된 것을 보시고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정직하게 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성경에는 드리나 마나 한 예배, 또 드리고도 화를 입은 예배도 있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신령과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길 원합니다. 기도를 드려도 정직한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거짓된 기도는 마귀가 듣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는 위선적이고 형식적이라서 관심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감히 하늘을 우러러볼 수 없노라고 고백할 때 주님은 이런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헌금도 정직한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리차드 포스트는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가 거듭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거듭나야 하고. 또 하나는 돈주머니가 거듭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돈에 대한 태도를 보면, 하나님께 대한 태도를 알 수가 있습니다. ‘돈은 영성의 척도가 된다’고도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드리느냐 보다 드리는 마음이 더 중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직한 예배, 정직한 기도, 정직한 헌금을 드리세요. 하나님이 받으시고 축복하십니다.

정직할 때 신앙의 야성이 회복됩니다. (4절) 정직하게 살면 담대해집니다. 떳떳하기 때문에 담대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에, 과감하게 그 시대 개혁을 단행 할 수 있었습니다. 산당을 부수고, 주상을 깨트리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렸습니다. 그 시대에 우상을 제거하는 엄청난 종교개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과감하게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이런 용기와 담력이 어디서 나옵니까?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정직하면 담대해집니다. 강한 신앙의 야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 때 세상에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반면에 거짓되게 살면 늘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풍산개와 같은 신앙의 야성이 죽어버리고, 힘없는 세퍼트처럼 되어 버립니다. 여호와 앞에 정직한 히스기야의 야성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2. 히스기야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5절)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향해 과거에도 미래에도 히스기야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한 왕이 없었다고 인정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먼저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신앙은 먼저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히스기야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과 연합했습니다.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고, 모세에게 명령했던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6절) 여러분도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과 연합하시길 바랍니다. 연합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나 혼자는 약합니다, 넘어지고 찢어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힘의 근원이요. 하나님께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여러분도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연합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히스기야에게 두 가지를 축복하셨습니다.(7절) 첫째,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둘째,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습니다. 형통이란 막힘이 없는 삶을 의미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항상 형통해야 합니다. 더 확실한 멘토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야성이 살아납니다. 예수 이름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으로 충만할 때 야성이 살아납니다. 바로 여호와 앞에 정직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히스기야의 앞날에 이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도 히스기야처럼 신앙의 야성을 키우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하나님만 의지하세요. 히스기야를 축복하신 하나님이 여러분도 반드시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wom10004@naver.com

03.01.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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