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배 목사 (임마누엘장로교회)
우리 교회 건물은 서편 큰 로비와 동편 작은 로비를 긴 복도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편에 있는 저의 사무실에서 본당을 오가려면 이 긴 복도를 지나야 합니다. 서로 눈길을 피할 수 없는 좁은 복도입니다. 주일에는 특히 이 복도에서 많은 성도님들을 만납니다. 이 복도는 어린 시절 시골 장터처럼 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장소입니다. “아! 네가 이렇게 컸구나!” 늘 유모차에서 누워있던 갓난아기가 벌써 커서 꾸벅 인사를 하며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손을 잡고 걸어오던 젊은 부부가 슬쩍 손을 놓고 인사를 합니다. 세월과 함께 점점 느려지는 권사님들의 걸음에 신경이 쓰입니다. 그러나 연세 드신 권사님들의 마음은 여전히 파릇파릇한 소녀입니다.
제 곁을 지나는 분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마주칠 때마다 환히 웃어주고 지나가시는 분들이 계시고, 웃음 없이 정중히 인사만 하고 서둘러 지나가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언뜻 보면 이 두 부류의 분들에게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관찰을 해보면 실상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여유’라는 것입니다. 마주칠 때 사람들에게 환히 웃어주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 분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삶에 여유가 있습니다. 윤활유가 말라서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기계처럼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이 여유는 참 소중한 존재입니다. 탁하고 거친 세상에서 우리가 한숨을 내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환한 웃음 속에서 우리는 정체모를 평안을 느낍니다. 지친 생활 속에서도 바쁜 걸음을 자제하지 못하고 서둘러가는 사람들에게 안식을 가져다줍니다.
이제부터는 복도에서 사람들을 마주칠 때, 서둘러 지나치지 말고, 환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합시다. 내 마음에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기쁨이 솟아날 것입니다. 바로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던 주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집에 들어설 때 얼굴에 큰 웃음을 머금고 평소보다 크게 “여보” 하며 불러봅시다. 가정이 갑자기 신기하게 환해질 것입니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웃으면 사람들이 신기하게 거울처럼 따라 웃습니다. 그러나 내가 웃지 않으면, 웃던 사람들도 얼굴이 곧 굳어집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합시다. 하루를 지내며 짜증이 날 때, 심호흡을 세 번하고, 크게 웃어봅시다.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항상 기뻐하라” 하셨던 주님이 내 안에서, 우리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나를 통해 세상에서 놀라운 일을 진행하실 것입니다. 사실인지 실습을 해보세요. 뜻밖의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