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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정치 평론가가 아니다

정치 평론은 사실상 제로섬 게임이다
이동진 목사

(성화장로교회)

23년 전 목회를 시작했을 때, 나는 존 파이퍼가 쓴 나의 목회자 형제들에게(We Are Not Professionals)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내 속의 모든 것이 목사는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하고 속임수, 오락, 세상의 비위를 맞추는 필사적인 시도에 기초한 목회 모델을 피하라는, 파이퍼의 절절한 호소에 공감했다. 지금 20년 전 나처럼, 열심과 간절함은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무식함을 모르는 상태에서 온갖 것에 무지한 그런 청년들이 지금 있다면, 이제는 중년이 된 목사로서 그대들에게 간청한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고 학자도 아니다.”

하지만 케빈, 세상만사가 다 정치적인 문제 아닌가?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

그럼 당신은 지금 목사가 오늘날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니다.

 

물론 목사들은 오늘날 당면한 큰 문제에 성경적 진리를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먼저 큰 문제들, 성경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들에 집중해 보자. 그건 교부들과 중세 학자들, 권위 있는 종교 개혁자들과 청교도들, 그리고 지난 300년 동안 최고의 기독교 지성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주제들이다. 이런 내용이 24시간 뉴스 사이클이나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에서 생기지는 않는다. 우리 대부분은 아마도 5년 전에 당시 뉴스에 대해서 내뱉은 섣부른 예측과 의견을 되돌아보는 것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실들도 많았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속보”가 얼마나 일시적인지를 고려하면 말이다.

오해하지 말라. 죄 없는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논평의 소용돌이에 참여할 그리스도인도 없어서는 안 된다(물론 지금처럼 많이는 필요 없다). 정치 평론도 합법적인 소명이다. 하지만 그건 목사의 소명이 아니다. “모두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쉬지 않고 논평하는 사람이 성경이 가장 전하고 싶어 하는 주제,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기서는 “쉬지 않고”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언제 싸움에 뛰어들어야 하는지를 아는 데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목사가 Daily Wire나 New York Times에서 만나는 기사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의 평론이나 읊조리는 모습으로 전락해야 할 이유가 없다.

 

목사의 권위를 희석시키지 말라

 

목사는 모든 것에 대해 논평하도록 부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럴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형제들이여, 복음을 전하는 목사로서 말할 권리도 또 전문성도 없는 주제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지금 논란이 되는 문제에 대한 즉각적인 분석을 드러내기 전에 자문하라. 목사로서 받은 훈련 또는 목회 관련 분야에서 힘들게 얻은 전문성에 비추어서, 지금 내 속에서 근질거리는 이 내용을 말하는 게 맞을까? 물론 그리스도는 만물의 주인이시다. 모든 창조물에서 단 한 평도 그리스도께서 “이것은 내 땅이다!” 외치지 않는 건 없다. 하지만 동역자들이여,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영역이라고 해서 당신과 내가 다 말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다.

정치적으로 나보다 “왼쪽” 또는 “오른쪽”에 있는 동역자들과 지인들이 태양 아래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견해를 제시하고 또 사람들을 점점 더 불경건하게 만드는 “불경스러운 수다”(딤후 2:16)와 놀라울 정도로 닮은 소셜 미디어 주도권 싸움에 빠져드는 모습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리석고 무지한 논쟁을 피해야 한다(딤후 2:23). “주님의 종은 다투지 말라”(딤후 2:24)는 단순한 시대정신에 따르는 게 아니다. 성경의 명령이다.

솔직히 말해서, 목사에게는 정치에 대해 특별히 독특하거나 통찰력 있는 말을 할 만한 게 거의 없다. 고작해야 “예언적으로 말한다” 하거나, 그리스도의 주권을 모든 삶에 적용하자는 식이다. 이건 사실상 엉성한 비판과 하나마나한 소리에 불과하다. 뉴스에 대해서 뭔가 말할 필요성을 느낀다면, 일단 속도를 늦추고, 로그오프하고, 폭넓게 읽고, 고전 읽기에 빠져들라. 최소한 몇 달에서 몇 년 동안은 성찰에 몰두하라. 그러고 나면, 뭔가 말할 게 생길 것이다. 이미 떠들고 있는 수백 명의 목소리에서는 들을 수 없는 무언가가 말이다.

(공적 및 사적 기도를 통해서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 외에) 어떤 정치적 문제에 대한 목사들의 즉각적인 의견 표명은 별 가치가 없다. 내가 낙태, 트랜스젠더, 인종 또는 동성애와 같은 주제를 다룬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들이 “정치적” 주제라고 불린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최신 뉴스에 지나치게 빨리 뛰어들거나 개별 정치인에 대한 의견을 너무 자유롭게 표현했던 것은 후회한다.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일단 자신을 “항상 사건에 대해 논평하는 사람”이라고 설정하고 나면, 사람들이 왜 어떤 사건과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논평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하지 않는지 궁금해 하는 게 당연하다.

우리가 끊임없이 정치적 논평과 디지털 논쟁을 한다면, 사람들은 앞으로도 우리에게서 같은 것을 더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일어난 어떤 일에 대해서 3개월 후에 하는 논평이 너무 늦는 게 된다면, 그건 우리가 가진 제한된 시간과 관심을 받을 만한 주제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구(舊) 프린스턴의 신학자 J. A. 알렉산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써도 종교적 진리의 위대한 주제를 다루는 데에는 모자란다. 정치는 그 자체로 하나의 과학이다. 따라서 설교자가 그 분야에서 뛰어나다면, 그는 결국 하나님의 진리에 써야 할 시간 중 일부를 희생해야만 한다”(Thoughts on Preaching, 30)

더 공개적으로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기로 결정한 목사들의 경우에, 그게 그들의 통찰력과 신중함에 플러스가 된 경우는 거의 없다. 백인들의 인종차별이나 이웃 사랑의 시금석으로서의 코로나 프로토콜에 대해 “용감하게” 말한 좌파 목사들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에 대해 너무나 교조적이고 복음에 끼워 맞춰서 말했다. 친구들과 인터넷의 일부 계층에서 환호를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결국 목사로서의 권위를 낭비했다. 그 결과 더 이상 사상가이자 기독교 지도자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힘들게 되었다. 내 오른쪽에 있는 과격한 친구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우파가 바라는 소리를 앵무새처럼 용감하게 따라한다면 똑같은 실수를 할 가능성이 크다.

 

훈련받은 일을 하라

 

다양한 관심사를 갖는 게 목사에게 문제될 건 전혀 없다. 나도 삶과 책,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때로는 시사와 정치도 포함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열정을 쏟는 것은 신학과 교회 역사에 대해 가르치고, 주일마다 말씀을 설교하는 지역 교회 목사가 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가장 열정을 쏟는 것이 무엇인지 겉으로 분명히 드러나길 바란다. 그것이 나의 진정한 우선순위가 아니라면, 예들 들어서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팟캐스트 사역, 집회 사역, 정치 행동 사역, 보수적 싱크탱크 사역이라면, 나는 지금 당장 교회를 사임하고 그런 일을 해야 한다. 세상에는 중요한 직업이 많고 주님과 그의 백성을 섬길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하다. 하지만 목사라면 목사가 되어야 한다. 훈련받은 대로 하라. 성경을 공부하고, 설교를 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교회를 인도하라.

그렇다, 우리는 사랑에도 질서를 잡을 수 있다. 결코 모 아니면 도가 아니다. 얼마든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에 참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알렉산더가 옳다.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목사가 자신의 소명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로 널리 알려지는 것은 옳지 않다. 아무리 그 일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더라도 말이다.” 우리의 공적 사역을 생각하자. 우리는 목사이다. 공공장소에서 들리는 우리의 목소리라는 측면에서 사람들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무엇인지를 고려할 때, 목사에게 정치 평론은 사실상 제로섬 게임이다. 우리는 결국 정치 논평을 “예언적으로” 하는 목사로 알려지거나 또는 신중한 본문 주해와 성경적 풍부함 그리고 신학적으로 깊고, 교회에 초점을 맞추는 복음 사역자로 알려질 것이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평론가가 될 수도 있고, 목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둘 다 될 수는 없다.

by Kevin DeYoung, TGC

 

03.15.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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