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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아메리칸

엄규서 목사 (월셔크리스천교회)

1월 13일은 ‘미주 한인의 날’을 맞아 이를 감사하며 여러 행사에 앞서 1월 10일 먼저 하나님께 기념예배를 드렸습니다. 1492년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위기 상황에 처한 청교도들은 콜럼버스가 발견했다는 신대륙 지도를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102명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620년 프리머드 항에 상륙함으로 미국이 건설되었던 것처럼 우리 한민족 코리안아메리칸의 역사도 이와 유사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02년 갤릭호를 타고 한인 102명이 하와이의 사탕수수농장에 노무자로 정착하면서 한인 이민역사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민 역사가 시작되어 113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조국은 세계 인류의 상위 3%-5%에 속하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런 조국의 발전과 번영의 기초에는 초기 이민자들이 흘린 땀과 노력의 결과이며 희생의 열매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본국의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마음과 물질을 다해 본국을 위해 헌신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렇게 본국의 건국과 발전에 이민자들의 관심과 협력의 결과는 조국의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고 봅니다.

제1기의 하와이 이민은 한국내의 미국계 개신교 교회에 의해서 조직되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따라서 이민자 중에는 개신교 신자가 많았고 사탕수수 농원에서 일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당시 선교사들이 미국 농장주의 요청으로 교인에게 하와이 이민을 권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우리 민족은 현재 전 세계에 선교를 통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초기 이민자들과 교회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기 이민자들은 신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을 예배당에 보내어 종교적인 교육을 받게 하였습니다. 교회마다 국어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 문화교육, 영어교육을 시켰습니다. 하와이 사탕농장에서 출발한 이민자들의 일부는 미국 대륙으로 건너와 역시 오렌지 및 포도밭과 논에서 일하면서 학업에 힘을 다하였고 강한 민족의식으로 곳곳에 있는 한인교회를 중심 삼아 공동체 생활을 하였습니다.

선배 목사님들께서 교회를 섬기시면서 제일 힘든 부분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동일하게 대답하는 것은 초기 이민자들에게 겪는 배신감이라고 말을 하십니다. 초기 이민자들이 교회에 오시면 선배 목사님들은 그들을 공항에서 라이드 해서 아이들 학교, 집 렌트, 직장, 운전면허 등 사소한 일을 봐주고 안정된 삶을 누릴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그들이 미국을 알아가고 삶의 방향을 잡을 때쯤이면 아이들 교육문제를 핑계로 학군이 좋은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교회를 등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된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일들을 오래 겪다보니 LA에 있는 작은 교회 목회자님들과 사모님들은 못자리 역할을 담당하느라 힘겨워 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물론 자신들이 사랑하는 교인들이 잘되어 좋은 곳으로 이사하고 성공적으로 미국을 사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그래도 그런 선배, 동료 목사님들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최근 한국에서 이민을 오는 대부분의 한인들은 인터넷과 매스컴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어 어떻게 보면 현지에 사는 우리들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옵니다. 아이들 학교와 직장, 사업과 교회까지도 결정하고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이민을 오는 실정입니다. 그러다보니 도움을 청하기 위해 교회에 첫발을 딛었던 초기 이민자의 풍속도도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목회자를 힘들게 했던 그러나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그 때의 모습이 그리울 정도입니다.

이런 이민자들의 흐름이 달라지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 미주사회에 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교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인교회의 단결과 연합이 그리고 사회 참여와 봉사가 이민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113주년의 이민역사 속에서 오늘 까지 코리안아메리칸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새해를 맞아 교회와 한인 사회가 연대하여 타 민족의 모범이 되는 자랑스런 코리안아메리칸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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