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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초년 (2)

엄규서 목사 (월셔크리스천교회)

시내 중심지에서 벗어나 변두리에 교회를 개척하여 첫 겨울을 맞게 되었습니다. 김장철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교회 가족들과 식사를 같이 하는 터이라 김장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뒤늦게나마 김장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읍으로 나갔습니다. 이미 김장철은 지나 온전한 배추를 구할 수가 없고 꽁꽁 언 배추뿐이었습니다. 그해 따라 고추를 금추라고 할 정도로 고춧가루가 비싸서 삼등품(고추씨와 고추 꼭지를 섞어서 만든) 고추가루로 김치를 담았습니다. 보관할 장독도 없어서 커다란 고무 통을 땅에 묶고 김치를 담아놓았습니다. 한 달 쯤 지나 크리스마스가 되었습니다. 김치 몇 포기를 꺼내어 먹으려니 배추는 배추대로 양념은 양념대로 겉도는 것이었습니다.

먹을 것이라고는 김치가 고작이니 커다란 솥에 밥을 하여 김치 윗부분을 자른 후 교우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자 곰삭은 김치의 맛은 진미였습니다. 별난 김장 김치를 교우들과 나누었던 그 시절 그 밥상을 떠올려 봅니다.

다락방으로는 더 이상 교우들을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궁리 끝에 농사를 지으시는 분을 통해 비닐하우스를 앞마당에 설치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 강단을 꾸미고 강대상과 의자, 풍금도 놓아 제법 예배당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여름이 되자 비닐하우스 안은 찜통으로 변했습니다. 겨울이 되자 문제는 더욱 심각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 난로를 설치하자 천장에 이슬이 맺혀 예배 시간 동안 교우들 머리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면 학생 둘이서 이인 일조가 되어 교대로 대 걸레를 들고 한 학생은 앞에서 뒤로 다른 한 학생은 뒤에서 앞으로 닦고 다녀야 할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주일학교 아이들이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우리 예배당 지어요!” 난감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애들아 우리 교회는 아직 돈이 없어서....” 그러자 아이들은 합창을 하듯 말했습니다. “목사님, 교회는 돈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짓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아이들에 말에 할 말이 잃었습니다.

교회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결혼할 때 아내에게 해준 폐물이며, 괜찮은 살림살이, 아이 돌 반지 등 돈 될 만한 것은 모두 팔았습니다. 교우들도 한 가지로 어려운 살림이지만 마음과 힘을 다하여 건축에 동참했습니다. 건축을 위해 가가호호 방문하며 벽돌 한 장 값 모금을 하였었습니다. 한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마침 그 집 어머니의 환갑잔치였습니다. 모금의 경위를 설명하자 교회주소를 묻더니 알았으니 돌아가 계시면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시며 정중히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 후 몇 날 지나 검정 세단을 타고 점잖은 신사 한 분이 교회를 방문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잔치 축의금으로 들어온 전액을 교회 건축에 써달라고 전하여 주셨습니다.

그 후 건축비용을 마련코자 낡은 미니밴(일명 봉고차)을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낮에는 일군들과 함께 일을 하고 새벽과 저녁에는 기도를 했습니다. 피고한 몸을 이끌고 핸들을 잡았습니다. 피곤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졸린 눈으로 앞을 보니 5km이라는 휴게소 사인보드가 보였습니다. 휴게소에서 눈을 붙이고 가리라는 순간 ‘꽝’ 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차에서 내려 보니 옆은 수십 길 낭떠러지인데 저의 차를 커다란 트럭이 받치고 있었습니다. 차를 서서히 이동시켜 휴게소로 들어왔습니다.

그 트럭 운전사는 부산에서 서울로 빵(콘티방)을 배달하는 집사님이셨습니다. 그분 말씀이 앞서 가는 미니밴이 흔들거리더니 낭떠러지로 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운전자가 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생각하여 옆을 살짝 들이받아 차를 멈추게 했다는 것입니다. 감사를 표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중 서울에 올라가는 이유를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근무하시는 ‘콘티 빵’ 회사는 기독교 회사이어서 믿음 있는 분들이 모여 신우회를 조직하고 매주 수요일에 직장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셨습니다. 몇 주후 수요예배에 초청을 받아 말씀을 인도하였습니다. 예배 후 신우회 회장님께서 그동안 모아두었던 헌금이라 하시며 건축금으로 써달라고 전해주셨습니다.

그 시절 우리 모두는 순수했고 해맑은 신앙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도우며 어려운 형편이지만 사랑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던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좁은 방에서 맛없는 김치를 함께 나누던 교우들, 축의금을 아낌없이 주셨던 이름조차 모르는 권사님, 위험가운데서 구해주시고 건축에 도움을 주셨던 콘티 집사님의 베푸신 사랑과 은혜에 늦게나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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