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덕 목사 (미주양곡교회)
선조 대왕은 이순신 장군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지난 칠천량 해전에서 패전 결과로 해전이 불가능 할 경우에는 육지에 올라 도원수, 권율 장군을 도우라“는 것이지요. 이 어명을 받은 이순신 장군은 “금신전선(今臣戰船) 상유십이(尙有十二)” 곧 “신에게는 아직 십이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상소를 올렸다는 이야기는 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던져 주는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모두 들 희망이 없다고 하는 데 유독 이순신은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라고 응답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 여겨집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아니하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목회자인 저 역시 목회의 비전과 희망의 그림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이루어 보려고 전력투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제게 희망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는 선배 목사님들이 계시는데 그중에 한 분은 “이민 교회의 희망은 없다 너무 애를 쓰지 말라. 희망을 포기하고 편안히 살라”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젠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즈음에 이순신 장군의 상소문의 내용을 다시 되새겨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지금까지의 전력이 괄목할 할 만한 곳이 못 되어도 다시 한번 더 희망을 갖고 성취의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의 나의 처지가 빈약 하고 주변의 상황이 절망스러울지라도 다시 희망의 끈을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야는 갈멜산 위에서의 대승리를 이룬 이후에 왕후 이세벨의 위협에 겁을 먹고 광야로 도망을 가서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립니다. 그리고 절망하며 죽기를 청하고 자기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절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우리는 종종 주변의 상황을 보면서 엘리야 같은 심경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더 늦기 전에 희망의 끈을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아직 희망이 있다는 신념과 신앙으로 다시 일어나서 더 늦기 전에 희망의 성취를 위하여 전심전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직 희망을 포기하기엔 너무 이릅니다. 너무 일찍 희망을 포기하면 더 이상 길이 없게 됩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은 길이 없는 사람에게 희망의 길을 가이드 하십니다. 절망적인 인생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십니다.
아직 희망을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것이지요.
더 늦기 전에 다시 한번 더 희망의 연을 하늘 높이 날려 봅시다.
팬데믹 이후에 사람들은 매우 의기소침하여진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희망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기 능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의 한계를 인식함으로 너무 쉽게 희망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반면에 소시민적인 안락한 생활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듯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나약한 인간이 가지는 피할 수 없는 생각과 인식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기울어져 가는 인생의 후반에 아직 남아 있는, 살아 있음의 소중성을 깨닫게 된다면 희망을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다시 한번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자는 외침을 세상을 향하여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다.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cyd777@hotmail.com
03.01.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