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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화 사회 선교에 준비된 바울과 C.S. 루이스(1)

강태광 목사 (월드쉐어USA대표)
강태광 목사

 (시인, 칼럼니스트)

           World Share USA 대표

프랑스의 신학자 자크 엘륄(Jacques Ellul)은 프랑스 기독교(Protestant)를 대표할 만한 기독교 사상가다. 그는 사회학자요 법학자이면서도 비중 있는 신학 서적을 출판한 신학자다. 자크 엘륄은 풍부하고 방대한 신학 사상으로 20세기 교회를 깨운 신학자다. 특히 그는 현대 교회가 직면한 위기 상황과 선교적 한계를 지적하고 통찰력 있는 대안을 제시한 학자다.

자크 엘륄은 복음의 침투력을 잃어버린 현대의 상황을 지적한다. 사회학자인 그는 “복음이 전투력을 상실했다(The Gospel no longer penetrates).”라며 현실을 아파한다. 아울러 그는 복음이 세상에 침투하여 세상을 변혁시키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한다. 자크 엘륄은 복음이 벽에 부딪히는 이런 상황이 기독교 후기(Post Christianity) 사회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지적하면서 복음주의 교회가 기독교 후기 사회의 특징을 간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 우리는 소위 “후기 기독교 세계(Post-Christendom) 혹은 기독교 후기 시대(Post Christianity)”를 지나고 있다. 둘다 같은 말이다. 기독교 세계(Christendom)란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를 뜻한다. 313년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칙령 이후 기독교는 서구 문명을 지배해 왔다. 그런데 20세기를 보내며 기독교는 그 영향력을 현저하게 상실해 버렸다.

현대 사회, 즉 후기 기독교 세계는 다원화 사회다. 다문화, 다종교의 문화적 현상이 현실이다. 절대적 가치를 거부하는 이 시대는 절대적 가치를 주장하는 기독교 진리를 근본적으로 거부한다. 현대 젊은이들과 지성인들이 기독교를 떠나거나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기독교 문명국의 일반적 현상이다. 현대 기독교가 위기를 맞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다원화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런 상황을 극복한 경험을 가진 사람의 지혜와 경험이 필요하다. 다문화, 다종교 사회에서 성공적인 선교를 했던 사람이 많지만, 사도 바울과 C.S. 루이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다원화 상황에서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 두 사람의 연구가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설명이 필요 없는 다문화 다종교 사회 선교사였다. 갈릴리 변방의 소수 유대인이 따랐던 기독교가 세계를 지배하는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된 것은 사도 바울의 절대적인 영향력 때문이다. 바울은 그의 서신서를 통해 아직도 복음을 전한다. 기독교 선교역사에 있어서 사도 바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의 선교전략과 메시지는 현대 선교의 원리요 전거(典據)다.

반면에 C.S. 루이스는 이미 기독교 후기 시대에 돌입한 영국에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루이스가 BBC 방송국에서 방송 강연을 시작할 때 영국 공군 신병 중에 부활절의 개념을 이해하는 젊은이가 23%에 불과했다. 전쟁중임을 고려하면 너무 낮은 신자율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등장과 1차 대전을 겪으며 영국을 포함한 유럽 사회는 이미 후기 기독교 사회로 진입했다.

탁월한 전도자요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는 후기 기독교 사회 돌입한 영국과 유럽 사회를 복음으로 흔들었다. 회의주의자들과 젊은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는 당대에 많은 지성인과 젊은이들을 복음으로 인도했고 그의 영향력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의 사후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루이스는 여전히 전 세계를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후기 기독교 시대(Post Christianity)의 속성을 강화하는 사조가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 상대주의다. 절대적으로 절대적 가치를 거부한다. 모든 생각과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 시대다. 너도 옳고 나도 옳고 모두 옳다는 사조다. 기독교도 좋고 불교도 좋고 이슬람도 좋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예수를 유일한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다.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 예수를 인정하지 않으니, 전도가 심각한 어려움을 만난 것이다.

이런 상대주의 사상이 팽배했던 현장이 바울이 방문했던 아테네였다. 아테네 정신의 요람이요 새로운 학문의 발표 현장이었던 아레오바고에 바울이 서서 복음을 전했다. 아레오바고의 원칙이 새로운 견해를 가진 사람의 새 견해를 듣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당시 아테네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에게 유일하신 하나님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다.

바울의 아테네 선교를 살피면 선교를 위해 철저하게 준비된 사도 바울을 볼 수 있다. 교육도시요 스토아 철학의 요람인 다소(Tarsus)에서 성장한 바울은 스토아 철학과 헬라 수사학을 습득했다. 그리고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성경을 공부했던 바울은 구약을 습득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1세기 다문화 다종교 사회 선교사로 온전하게 구비(具備)하였다.

C.S 루이스 생애를 살피면 준비된 선교사 사도 바울과 겹친다. C.S. 루이스는 절묘한 시점에 성장하고 활동했다. 그 시기는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시기였다. 아울러 1차 대전에 이어 유럽 사회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유행성 독감의 등장으로 패배감과 회의주의 사상이 지성인과 젊은이들을 장악했다. 절대 가치를 거부하는 상대주의 사상이 팽배했다. 서구사회를 지배했던 기독교 영향력이 급격히 하락해 다종교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C.S. 루이스는 인생, 사회 그리고 신앙에 대한 회의로 신음하던 유럽이 2차 대전의 발발로 더 좌절하던 시기에 복음을 전했다. 루이스를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와 전도자로 인정받게 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나 <순전한 기독교>가 2차 대전 중에 출판되거나 방송되었다. 루이스는 2차 대전 후에 더욱 냉소적으로 바뀐 영국과 유럽 사회에 인생과 천국의 소망을 전했다.

C.S. 루이스는 평생 열심히 독서했고 많은 글을 남겼다. C.S. 루이스의 모든 활동은 기독교를 변증하고 복음을 전도였다. 이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했던 바울을 닮았다. 틈만 나면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을 활용해 13개 서신을 기록해 복음을 전한 바울의 얼굴에서 틈만 나면 글을 쓰고 출판해서 40여 권의 저서로 복음을 전한 C.S. 루이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Kangtg1207@gmail.com

 

12.2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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