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칼럼니스트)
World Share USA 대표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모두 공감하는 사실이다. 건축학에서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 철학을 넘어 현대인의 생활 전반에 영향력을 끼친다. 신국원 박사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오늘날 문화 전체의 성격을 규정짓는 지시어가 되었다’라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에 신학과 목회의 영역에도 넘실대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엘롤 헐스(Erroll Hulse)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해체주의(Deconstructionism), 상대주의(Relativism), 다원주의(Pluralism), 실존주의(Existentialism) 등 네 가지 사상으로 정리했다. 이 네 사상의 공통점은 절대적인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엘롤 헐스(Eroll Hulse)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저서의 부제를 ‘성경적 기독교를 공격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 표기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기독교 복음에 미치는 악영향을 보여주는 정확한 표현이다. 복음주의 신학자인 스탠리 그랜츠 박사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교회가 다음 세대들에게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거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라고 했다.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절대적 진리를 전하는 것은 큰 도전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신학과 교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이유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기독교 후기 시대와 연동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신학자 스테판 파스(Stefan Pass)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기독교 후기 시대(Post Christianity or Post Christendom)와 동의어라고 주장한다. 현대를 설명하는 세 단어(Post modernism, Post Christianity, Post Christendom)는 기원과 의미가 다르지만, 현재 기독교가 직면한 어려움을 설명할 때는 같은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
복음증거가 위협받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효과적인 전도자 C.S. 루이스를 생각한다. C.S. 루이스는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시대에 절대적 진리인 복음을 성공적으로 전한 유능한 전도자다.
CS 루이스의 전기를 쓴 신학자 알리스트 맥그래스 박사는 C. S. 루이스가 활동했던 20세기 후반의 영국 사회는 종교가 지적 사회의 견인력을 상실한 시대였고, 세속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던 시대였다고 주장한다. C.S. 루이스의 기독교 변증학 서적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고 복음 전도에 활용되었던 1960년대 영국의 지식인 사회는 이미 포스트모더니즘 문화가 지배했던 사회다.
고전과 문학으로 준비된 C.S. 루이스의 기독교 인문학적 전도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극복해야 하는 현대 전도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된다. 데이빗 다우닝은 루이스가 근대에 가장 다재다능했던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한다. 루이스는 분명하고 명쾌하게 논지를 전개하는 탁월한 작가였다. 루이스는 다양한 강연, 글과 서적을 통해 복음을 전함으로 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였다.
루이스는 생전에 40여 권의 책을 썼다. 회심한 이후에 C.S. 루이스가 쓴 모든 책의 목적은 전도였다. 그의 삶을 되돌아보면 C.S. 루이스가 이렇게 많은 책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선 C.S. 루이스는 개인적으로 분주했다. 옥스퍼드의 튜터 교수(Don)로 C.S.루이스는 빡빡한 스케쥴을 소화해야 했다.
C.S. 루이스 동료 교수들은 C.S. 루이스 공개 전도 활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사회에서는 교수가 공개적으로 신앙문제를 논하거나 전도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학교 분위기였다. 이런 점에서 루이스는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C.S. 루이스가 전공 서적도 아닌 신앙 서적이나 소설을 출판하는 것은 가까운 R.R. 톨킨 교수 등의 반대가 심했다.
C.S. 루이스는 이런 악조건을 극복하고 전도를 위한 글을 쉬지 않고 썼던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의 사명감이다. 그는 회심 전도를 결심했고 쉬지 않고 전도 활동을 했다. 둘째는 믿지 않는 영혼을 향한 긍휼과 뜨거운 애정이다. 긴 시간(15년)을 통해 회심했던 루이스는 회심을 갈망했지만 믿어지지 않았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영혼을 사랑했다. 셋째는 겸손한 맘으로 영혼을 섬기는 글을 썼다. 영혼을 섬기는 글쓰기는 루이스의 사명이요 사역이었다.
C.S. 루이스의 신실한 글쓰기 사례를 볼 수 있는 것이 그의 편지 쓰기에서 나타난다. 루이스는 독자나 라디오 청취자들이 보내는 편지에 성실히 답장을 보냈다. 라일 도싯(Lyle W. Dorsett)은 <C.S. 루이스의 영성>에서 서신으로 양육과 돌봄을 실천한 루이스를 소개한다. 루이스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편지를 썼다. 심지어 24시간 휠체어 생활을 하면서도 답신을 썼다.
영혼을 돌보는 사역자의 마음으로 썼던 루이스의 글은 많은 영혼을 살리는 도구가 되었다. 영국의 복음주의 진영을 대표한 신학자 제임스 패커는 C.S. 루이스의 글을 읽고 루이스를 인정하였다. 제임스 패커는 “오늘날 루이스처럼 깊이 사고하는 그리스도인을 발견할 수가 없다.”라며 루이스를 극찬했다. 루이스는 독자들을 소중히 여겼고, 배려했으며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작가였다.
루이스는 탁월한 독서가였고, 탁월한 작가였다. 루이스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열심히 읽었다. 이때 쌓은 독서 습관을 루이스는 평생 유지했다. 루이스는 평생 책을 사서 읽고 모으는 습관을 지녔다. 아울러 C.S. 루이스는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실천했고 각 학교의 교사들로부터 글쓰기에 대한 칭찬을 들었다. 루이스는 평생 글쓰기를 실천했고 수많은 편지, 에세이, 논문 등을 남겼다.
급속하게 세속화되는 영미 사회에 C.S. 루이스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루이스는 ‘지성인의 전도자’로 손색이 없다.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성실하게 글을 썼고 많은 영혼을 섬겼다. C.S 루이스의 뜨거운 영성과 냉철한 지성을 닮아 냉랭한 포드스모더니즘 시대를 이겨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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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