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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 C. S. 루이스(1)

강태광 목사 (월드쉐어USA대표)
강태광 목사

 (시인, 칼럼니스트)

           World Share USA 대표

다면적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는 많은 영혼을 전도한 전도자였다. 휘튼 칼리지 총장을 지낸 필립 G. 롸이컨(Philip G. Ryken) 박사는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잡지인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가 창간 50주년을 기념하며 복음주의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서적 50권을 선정하여 발표한 것을 언급하며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C.S 루이스를 언급한다. 필립 롸이컨 박사는 통상 유명세와 영향력은 다르기 마련인데, 루이스의 경우는 영향력과 유명세가 같다고 했다. 루이스의 영향력은 전도의 열매다. C.S.루이스는 회심한 직후부터 전도를 소원했다. C.S. 루이스는 자신의 대표작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이래, 믿지 않는 이웃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봉사, 그리고 아마도 유일한 봉사는 모든 시대에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공통으로 믿어 온 바를 설명하고 수호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라고 밝힌다. C. S. 루이스가 전도자에 충실했다는 것은 다양한 자료에서 발견된다. 그는 우선 몇 번에 걸쳐서 대중 전도 활동을 했다. 제2차 대전 초기에 영국 공군 부대들을 순회하며 강연을 통해 전도했다. 또 1941년부터 1944년까지 BBC 방송국에서 방송 강연을 했다. 기독교를 소개하는 강연이었고 이 기회를 통해 루이스는 당시 영국인들에게 복음을 제시하는 기회가 되었다. 루이스의 펜을 통한 전도 활동은 그 효과가 어마어마하다. 도르셋(Dorsett)은 C.S. 루이스는 문학적 전도자(Literary evangelist)라고 주장했다. 루이스는 자신이 저작한 책들 대부분이 전도를 위한 책이라고 말했고, 이런 점에서는 루이스 자신은 기독교의 진리를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가라는 주장을 했다. 또 루이스는 <기독교와 문학(Christianity and Literature)>이라는 소논문에서 “그리스도인은 거듭나는 순간부터 한 영혼의 구원이 세상의 모든 문학작품의 발표와 관리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된다.”라고 말하며 전도의 가치를 강조했다. C.S. 루이스의 오랜 친구요 개인 변호사였던 오웬 바필드(Owen Barfield)는 “루이스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굳게 믿었다”라고 전한다. 루이스는 <기독교와 문화(Christianity and Culture)>라는 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유일한 일이 영혼을 구하는 일이고, 이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업이다.”라고 말했다. C.S. 루이스의 개인전도 활동에 대하여는 상반된 견해가 공존한다. 루이스가 자신의 학생들에게 전혀 복음을 전하지 않았고, 학생들에게 자신이 기독교 신자인 것을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C.S.루이스의 개인 지도를 받았던 존 웨인(John Wain)은 “루이스가 구세군의 윌리엄 부스가 키플링에게 했던 말-젊은이 내가 한 영혼을 구할 수만 있다면 내가 발가락으로 탬버린을 치겠소-을 종종 인용하면서 옥스퍼드 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난 많은 지성인을 루이스가 전도했다.”라고 전한다. 루이스는 전도에 관한 자신의 열망과 전도의 방법론에 충실하게 쓴 책이 <순전한 기독교>라고 밝힌다. 이 책의 출생 과정을 살피면 루이스의 이 말이 더욱 분명해진다. 루이스는 원래 책을 출판하려고 펜을 들어 <순전한 기독교>를 완성하지 않았다. 2차 대전 전쟁 중에 BBC 방송국 요청으로 진행한 방송 강연 원고를 바탕으로 완성된 책이다. BBC 방송 강연은 원래 전쟁의 공포와 피로감으로 힘든 영국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전쟁 중에 라디오 방송으로 기독교 복음을 소개하며 소망과 위로를 시민에게 전하기 위해 준비된 강연이었다. 그러므로 강연의 목표는 신앙인에게는 확신을 강화하고 불신자에게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복음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방송 강연도 대성공이었고, 강연 원고를 다듬어 출판한 <순전한 기독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우리가 잘 아는 명사들이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중의 한 사람이 닉슨 전 미국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 일하다가 워터게이트사건에 연루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던 찰스 콜슨이다. 그는 순전한 기독교를 읽고 회심하였다. 그는 출소 후 교도소선교회(Prison Ministry)를 만들어 전 세계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평생 헌신하였다. 나아가 미국의 게놈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는 <신의 언어>에서 자신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데 C.S. 루이스가 큰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현재 대표적인 복음주의 진영의 기독교 변증가인 오스 기니스(Os Guiness)박사도 루이스의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로드맨 프리들랜드(Rodman Fridland)가 1958년 당시 미국 장로교 선교사 4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며 그 결과를 소개했다. 설문조사에서 “당신이 선교사가 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구입니까?”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이 질문에 응답한 415명의 현장 선교사 중에 50%가 ‘C. S. 루이스의 영향으로 선교사가 되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는 루이스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C.S. 루이스는 미국 땅을 밟아본 적이 없지만 수많은 미국인에게 복음을 전했다. 1986년 휘튼 대학교의 메리온 웨이드(Marion Wade) 센터에서 “당신, 혹은 당신이 아는 사람이 C. S. 루이스와 그의 책에 의해 영향을 받아 인생의 큰 변화를 경험했다면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라는 광고를 미국의 기독교 신문과 잡지에 게재했다. 이 광고를 본 미국과 전 세계에서 많은 “간증들”이 속속 도착했다. 기독교 신앙을 갖는 데 루이스가 큰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들은 넘쳐났으며, 특히 순전한 기독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르렀다는 고백이 많았다. 또한, 신앙을 유지하고 지속하는 데에도 루이스가 큰 도움을 주었다는 응답들도 많았다. Kangtg1207@gmail.com 08.2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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