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칼럼니스트)
World Share USA 대표
1950년 1월 10일에 루이스에게 W. L. 그레셤(Gresham)이라는 미국 여성이 그의 글에 감화되었다며 편지를 보냈다. 그녀(본명 조이 데이빗맨)의 편지를 받고 루이스는 답장했고, 그녀는 또 편지를 보냈다. 둘은 서신으로 인생, 문학 그리고 신앙상담을 나누며 신뢰를 쌓았고, 그녀가 1952년 9월 24일 영국을 방문했다. 루이스는 이때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다. 루이스는 당당하고 저돌적이며 몇 편의 시를 발표해 시인이었던 그녀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1953년 12월 알코올과 쾌락에 빠진 남편과 지속적인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느끼고 두 아들 데이빗(David)과 더글라스(Douglas)과 함께 영국으로 왔다. 조이가 영국에 있는 동안 그녀 남편은 더 망가졌다. 그는 조이의 사촌과 불륜에 빠지고 폭음에 빠졌다. 조이는 다음 해 8월에 이혼했다.
조이가 영국에서 정착하려는 데 비자 갱신이 안 되었다. 루이스는 이 모자에게 도움을 주어 영국에서 살게 하려고 서류상 결혼(법정 결혼)을 조이에게 제안했다. 둘은 1856년 4월 23일, 옥스포드 호적등기소에서 결혼식을 했다. 호적등기소 결혼식 후 두 사람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조이는 셋집에서 살았고 루이스는 자기 집에 살았다. 루이스는 우정과 크리스천 사랑으로 그녀를 도왔다.
루이스에게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느 날 조이가 옥스퍼드의 졸업식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졸업식을 마친 후 루이스는 처음으로 그녀를 자신의 연구실로 초대했다. 그녀는 언제나 절제하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사무적으로 대하는 루이스에게 화를 내며 연구실을 나섰다. 루이스는 그녀의 행동을 다소 당황하면서도 정작 '고통의 경험 없이' 고통을 말하고 '진정한 사랑의 경험 없이' 사랑을 설명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런던의 조이 가족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조이가 넘어지면서 다리뼈가 부러졌는데 병원에 실려 가서 대퇴부암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암이 상당히 진행되어 온몸에 전이가 이루어진 후였다. 일련의 수술 후에도 그녀는 몇 주에서 몇 달 정도만 살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충격적 소식을 듣고 혼란스러워하는 루이스에게 그의 형이 찾아와 격려했다. “아우야! 네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전해 보렴…” 루이스는 비로소 자신이 그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이스는 법적 요건을 위한 결혼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서로의 사랑과 성실을 서약하는 진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1957년 3월 21일 호적등기소 결혼식 후 약 10개월 만에 두 사람은 조이 병상에서 결혼식을 했다. 간호하던 수녀 한 사람과 루이스의 형이 증인이 되어 루이스의 제자였던 성공회 피터 바이드(Peter Bide)신부 주례로 정식 결혼식을 했다. 이제야 그들은 서류상의 형식적 부부가 아닌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다 늦은 나이에 만난 아내가 암 환자였다. 루이스는 암으로 투병 중이던 조이를 만나 결혼해 아주 짧은 시간에 찐한 사랑을 나누다 아내를 잃었다. 루이스가 아내를 잃은 비통한 심정을 적나라하게 토로한 책이 <헤아려 본 슬픔(A Grief Observed)>이다. 60이 넘은 대(大)학자요 저명한 작가요 대학교수였던 기독 지성인 루이스는 자신이 직면한 고통에 흔들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통을 겪는 과정에서 무신론자와 회의론자들의 탁월한 변증가요 전도자로 존경받던 루이스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마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아가 아내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기도했지만, 기도가 응답 되지 않자 하나님께서 아내를 회복시켜 주시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하나님 사랑을 의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루이스는 흔들림과 갈등을 곧 정리하고 후 당당하게 회복했다.
루이스는 고통에 관해 두 권의 책을 썼습니다. 먼저 고통의 문제에 관해 이론적이고 객관적이고 신앙적인 논의를 담은 <고통의 문제 (The Problem of Pain)>라는 책이다.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에서, 고통은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이 스스로 저지른 죄의 결과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치료하시는 과정 중 발생하는 필연적 현상이라고 명쾌하게 해석했다.
루이스는 <헤아려 본 슬픔(A Grief Observed)>에서 자신의 주관적 고통을 철저하게 객관화시키고 객관적 시선으로 자신을 관찰했다. 이 책은 처음에는 N. W. 클러크(N. W. Clerk)라는 가명으로 출판했다. 훗날 비평가들은 너무 솔직하게 자기감정을 드러낸 루이스가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발간하기가 조심스러웠던 것으로 이해한다.
루이스는 <헤아려 본 슬픔>에서 자신이 느끼는 비탄, 회의, 분노 등등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루이스는 믿음이 있어도 아픔은 아프고 고통은 고통스럽다는 것을 여과없이 공개한다. 루이스는 <헤아려본 슬픔>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도 고통을 당할 때 신음 소리를 내기도 하고 절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루이스의 <헤아려 본 슬픔>을 읽으며 하박국을 생각했다. 하박국 3장 16절에서 하박국은 적군의 침략 소식을 듣고 당황했다. 그가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그는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 것과 같고 몸이 썩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고백한다. 1장과 2장에서 기도하며 응답받고 하나님의 개입을 사모했던 하박국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진솔함이 그의 믿음의 고백과 기도였다.
하박국 선지자가 하박국 3장 17절 이하에서 자신의 고통을 넘어선 감사와 찬양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픔이 없고 의지와 이성이 나를 지배하는 평상시에 나도 이렇게 감사하며 찬양하리라 하지만 고통의 현장에서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신음하고 절규하고 고통을 토하는 것이 하나님 자녀의 참모습이라 믿는다. 루이스가 하박국처럼 고난에 아파하고 극복하는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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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