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성실장로교회 원로)
Ⅸ. 세속화 신학 (Theology of Secularization)
(결론)
1. 세속화 신학은 신학 연구에서 하나님을 제외시켰다. 하비 콕스는 신론을 연구할 때에 존재론적으로 (본질 혹은 실체; essence or substance) 논의하기를 멈추고 기능 (function)과 행동주의 (activism)로 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론 연구의 전통적인 방법인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논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그러한 신학적인 연구는 필요 없다는 말이다.
로빈손 감독은 신론의 연구에서 “은혜로운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의 문제를 “은혜로운 이웃을 우리가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의 문제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John Robinson, Honest to God, The Westminster Press, pp. 45 이하).
폴 밴 부렌 (Paul Van Buren)은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제외되어야 한다. 하나님 없는 기독교가 재구성 되어야 한다(reconstructed without God). 예수를 인간 실존의 모범으로 가르쳐야 한다” 주장했다.
2. 세속화 신학은 교회와 세상의 구별을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속화 신학은 칸트의 영향 아래서 신학 연구에서 형이상학과 존재론 (metaphysics & ontology)을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교회의 거룩성과 교회의 본질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의 신비한 실체를 부인한다.
그들은 교회의 본질을 바르트의 용어로 재정의 하면서 단순히 교회를 세상의 봉사 기관으로 정의했다. 그들은 교회를 기능적으로만 정의했다.
교회는 세상의 정치와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 복음을 전하고 죄인들이 회개하고 영혼의 구원을 받도록 권고하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이라는 교회의 기본 의미를 제거시켰다. 이들의 교회관은 전혀 성경적이 아니다.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지만,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다. 교회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흠과 티와 주름잡힌 것이 없는 거룩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교회가 사회적인 책임이 있음은 당연하지만, 교회의 본질 자체를 포기하거나, 세상과 구별됨을 철폐하는 것은 아주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지상 교회가 존재하는 장소가 세상이기 때문에, 교회는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존재할 수는 없다. 교회와 성도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장소가 바로 세상이다.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지만, 본질상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모이기와 흩어지기의 반복한다. 동일한 교회지만 “모이는 교회”(ecclesia congregata), “흩어지는 교회”(ecclesia dispersa)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흩어지는 교회”의 특징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사명이 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생활의 모범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세상과 전혀 다른 실체이다.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나타내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에서 교회를 이렇게 정의한다. “보편적인 무형교회는 택하심을 입은 자들의 총수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모여왔고, 모여있으며, 장차 하나로 모일 것이다. 이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분의 신부요, 몸이요, 충만이다.” “고백 하는 모든 자들과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다. 이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이고, 하나님의 집과 권속” 이다.
3. 세속화 신학은 성경의 사실들을 왜곡시킨다. 로빈슨은 성경을 해석할 때에, 하나님, 세상 그리고 인간에 대한 말씀을 희화화(caricature)시켰고, 그리고 풍자적으로 다루었다. 콕스는 그의 책, <세속도시>에서 성경 해석을 하면서 성경 본문을 매우 왜곡시켰다.
4. 세속화 신학자들은 현대 과학의 업적과 세속적인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을 무비판적으로 긍정적 그리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롬 1-3장에 나타난 세상의 죄악상들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은 인간의 죄와 인간의 전적 타락성을 무시한다. 그들은 인간이 과학을 발달시켜 원자탄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한순간에 죽일 수 있는 사실들은 말하지 아니한다. 인간이 과학과 물질문명을 발달시키는 사실 보다는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 자체가 죄로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무서운 포인트이다.
성경은 무엇보다 인간의 타락과 죄악성을 강조한다. 옛날이나 지금도 동일하게 인간은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다(창 6:5). 인간의 생각, 사상, 계획 등은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로 기울어져 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렘 17:9).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과학의 발전과 현대 문명의 업적이 아니라 인간의 죄의 문제이며,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우리의 구원자, 중보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죄가 인간의 이성의 기능을 부패시켰기 때문에 (noetic effect of sin)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부패했고 타락하였으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들이다. 물론 인간의 머리에서 귀한 것들이 나올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일반은총)의 결과이다.
5. 세속화 신학은 장차 올 하나님 나라를 부인하고, 현재의 하나님 나라만 강조한다. 성경적인 하나님 나라는 현재 우리 가운데 임재한 하나님 나라와 동시에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강조한다 (Alread & Not Yet). 성도들은 이미와 아직(already & not yet)의 갈등 가운에 살아나간다.
성도들은 현재 임하신 하나님 나라 (already)를 누리면서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 (not yet)를 사모하며 산다. 하나님 나라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악과 선은 현시대에 공존하며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되지만, 그러나 주님의 재림하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성취되며 그때에 죄악은 궁극적으로 심판받는다.
6. 세속화 신학의 기초는 계몽주의 사상에 근거한 인본주의 사상이다. 세속화 신학은 인간의 자율성과 하나님의 존재를 멀리하는 인본주의 사상에 기초한다.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에 이해될 수 있고, 현대인들과 소통될 수 있는 기독교를 새롭게 설명하는 (re-statement of Christianity) 갈망은 기독교 진리와 성경을 세속화 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타협하지 아니하고 성경대로 복음과 말씀을 선포하는 일이다. 복음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시대의 사람들과 모든 민족, 인종에게 관련이 있고 (relevant) 적용되어진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듣는자의 심령에 역사하기 때문이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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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1.2024